"세계 자동차시장에 100여년 만의 대격변이 벌어지고 있어요.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입니다."
지난주 만난 한 자동차 전문가가 "GM의 파산 신청 후
'포스트 GM시대'가 오히려 더 살벌한 위기"라며 한 말이다.
그가 바짝 더 긴장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먼저 76년 동안 세계 1등이던 GM의 추락이나 매년 1조~2조엔의 순이익을 내던
도요타가 지난해 4000억엔이 넘는 적자를 내는 등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또 이탈리아 피아트의 미국 크라이슬러 인수, 폴크스바겐의 포르셰 합병,
도요타와 GM의 제휴 같은 적(敵)과의 동맹이나 인수·합병(M&A)이 잇달아 불확실성이
극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차의 강점인 소형차는 환율효과 소멸과 피아트·크라이슬러그룹 등의 공세로
입지가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요."(A자동차사 임원)
이런 상황에서 동북아의 경쟁자인 일본과 중국 자동차업계의 발 빠른 움직임은
한층 위협적이라는 진단이다. 특히 기술 고도화와 미래형 자동차 개발 등에 총력을 쏟는
중국 업체들의 공세는 '경계 대상'으로 꼽힌다.
단적으로 세계 2위의 리튬이온 배터리업체이자 중국 3대 자동차회사 중 하나인 비야디(BYD)는
최근 세계 최초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집에서 전기 충전 후 단거리는 전기모터로,
장거리는 가솔린 엔진을 사용하는 친환경차)인 'F3DM'을 출시했다.
'F3DM'은 1회 충전(充電)으로 100㎞나 주행할 수 있어 이 분야에서 걸음마
수준인 한국 업체를 압도한다.
폴크스바겐은 지난달 말 BYD와 하이브리드 및 전기자동차의 기술개발·생산협력 계약을 체결해
BYD의 독자 기술력을 인정했다. 2000년부터 작년까지 연평균 성장률만 39%에 이르는
체리·지리·비야디 등 3대 중국차 업체들은 올 들어 중국 내 누적 판매 순위에서
모두 10위권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기술력과 디자인에서 중국차는 한국보다 몇 수 아래였지만 해외 M&A까지 가시화되면
한·중 역전은 시간문제일 것입니다."(자동차 담당 B애널리스트)
이미 세계 최강인 일본 업체들은 혹독한 구조조정으로 대반격에 나섰다.
정규·비정규직 등 7000명을 최근 감원한 도요타는 올해 고정비 원가 절감 목표를 8000억엔으로
늘리는 한편 연간 생산량이 300만대 정도 줄더라도 1조엔(약 13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낸다는
방침이다. 혼다는 한국 업체의 상승세를 꺾기 위해 현대차의 베르나보다 더 싼 1만달러 안팎의
소형차를 올 하반기 미국 시장에 내놓는다.
'친환경·고연비차' 분야에서는 격차가 더 확연하다.
도요타가 1997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하이브리드카(모터와 엔진을 번갈아 사용하는 차)인
'프리우스'는 누적 판매량이 150만대를 넘었고, 지난달 출시한 제3세대 프리우스는
예약 주문량이 13만대에 달한다. 미쓰비시는 다음달부터 가정용 전원으로 충전해
최대 시속 130㎞를 달리는 전기차인 '아이미브'를 시판한다.
반면 현대·기아차는 다음달 아반떼 등의 하이브리드카를 내놓지만 내년까지
생산 계획이 3만대에 그쳐 일본차 추월은 꿈도 꾸기 어렵다.
이런 상황이라면 동북아 3국 간의 미래 자동차 전쟁에서 승패는 불을 보듯 뻔해 보인다.
사정이 이런데도 국내 자동차업계에는 기술 개발, 생산성 향상을 위한
의기투합이나 분발은 고사하고 임·단협과 구조조정을 둘러싼 불협화음이 여전하다.
GM의 몰락은 아무리 세계 1등도 실수나 방심하면 반드시 망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차 업체와 종업원들이 이런 교훈은 애써 외면하고 구습(舊習)의
'덫'에 빠져 있지 않은지 걱정된다.
- 송의달·산업부 차장대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