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不渡) 국가'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는 세상 가장 북쪽에 있는 '불과 얼음의 나라'다. 작가 톨킨은 국토 대부분이
화산지대와 빙하지대로 뒤덮인 이 나라에 갔다가 '반지의 제왕'의 영감을 얻었다.
악의 제왕 샤우론이 다스리는 죽음의 땅 모르도르로 나오는 곳이 바로 아이슬란드다.
소설가 쥘 베른이 '지구 속 여행'에서 '지옥으로 가는 관문'으로 묘사한 불모의 땅이기도 하다.
▶ 20년 전만 해도 아이슬란드의 주 산업은 대구잡이였다. 농사를 지을 수도, 소와 양을 키울 수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먹고살 길은 바다로 나가는 것뿐이었다. 대구 어장을 놓고 영국과 세 차례나
충돌하며 전쟁 직전까지 갔던 것도 워낙 어업 비중이 컸기 때문이다.
년대 중반까지도 어획철만 되면 아이슬란드 무장 헬기와 영국 전함이 총격전을 벌이기 일쑤였다.
▶ 아이슬란드는 2007년 유엔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이기도 하다.
1인당 국민소득은 6만6500달러로 세계 5위다. 지옥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사람 살 곳 못 된다던
땅이 어느새 지상 낙원으로 바뀐 것이다. 1990년대 초부터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외국 자본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것이 극적 반전을 가져왔다.
▶ 아이슬란드는 인구가 30만밖에 안 돼 조금만 돈이 들어와도 물가가 불안해지곤 했다.
그래서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자 고수익을 노린 외국자본이 더 쏟아져 들어왔다.
덕분에 금융산업이 급성장했고 산업구조도 완전히 달라졌다. 대구잡이 나라가 언제부턴가
'북구의 금융허브'로 불리기 시작했다. 아이슬란드 은행들은 넘쳐나는 외화를 들고 나가
외국기업 사냥에 나섰다. 국민들은 집값의 100%까지 외화 대출을 받아 새집을 샀다.
▶ 물론 공짜가 아니었다. 작년 2분기 아이슬란드의 대외채무는 1205억달러로 GDP의 7배가 넘는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 금융회사들이 일제히 대출 회수에 나서자 아이슬란드는 곧바로 국가 부도
빠져들었다. 작년 11월 가장 먼저 IMF로부터 21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물가가 치솟고 실업자가 쏟아지자 국민의 항의 시위로 연립정권이 무너지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다고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
아이슬란드가 '부도 국가'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20년 이상 걸릴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빚으로 흥청망청 잔치를 벌였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셈이다.
- 김기천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