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싸안은 인종·문화… 관용과 도전이 미(美)역사 창조
체감온도 영하 10도가 넘는 추위에 떨며 새벽 5시에 워싱턴 광장에 도착한 한 미국 기자는 이미 운집한 대군중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취임식 7시간 전이었다. 그는 "이것은 정권 교체가 아니라 역사 교체"라고 했다. 지금까지 55번의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으나 이런 취임식은 없었다.
불과 40여 년 전,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고 흑인 여성을 감옥에 보냈던 나라가 2009년 1월 20일 흑인을 대통령으로 맞아들였다. 40여 년 전까지도 온갖 방법으로 흑인의 투표를 막았던 나라, 이 차별에 항의했던 흑인 목사를 암살하고 흑인민권법을 만들려던 대통령을 암살하고 그 동생까지 암살했던 그 나라가 오늘 흑인을 국가 최고사령관으로 맞아들였다. 백화점에서 흑인 여자 아이는 옷을 입어보지도 못하게 했던 나라가 오늘 흑인 여성을 나라의 퍼스트 레이디로 맞아들였다. 주립대학에 합격한 흑인 여학생을 오물 투척과 욕설, 퇴학으로 짓밟았던 그 나라가 이 흑인 부부의 어린 두 딸을 首都의 가장 유명한 학생들로 맞아들였다. 암살된 흑인 목사는 여기 워싱턴 광장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다"고 절규했었다. 그때 두 살이었던 흑인 아이가 46년 뒤 오늘, 바로 이곳에서 노예 해방자 링컨의 성경에 손을 얹고 대통령으로서 헌법 수호를 맹세했다. 꿈을 현실로 만든 것은 암살당한 마틴 루터 킹 목사도 아니고,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한 오바마도 아니고, 인구의 13%밖에 안 되는 흑인 표도 아니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흑인을 자신들의 지도자로 받아들인 절대 다수 백인 유권자들의 결단과 그 선택을 대세로 만들어 간 이 나라의 관용과 포용력이고,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 않는 용기이고, 언제나 새 시대로 과감하게 걸어 들어간 개척 정신이다.
이 나라는 지금 전쟁에서 상처받고 불황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이 나라의 치세(治世)는 끝났다는 얘기가 세계를 떠돌고 있다. 이 나라가 지난 대선에서 꿈을 현실로 만드는 기적을 행하지 못하고, 지친 나라에 새로운 기풍을 불어넣지 못했다면 실제로 이 나라는 무너지는 길로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세계 GDP의 5분의 1을 혼자서 생산하는 이 나라의 경제력 때문도 아니고, 세계 주요국들의 군사력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큰 이 나라의 군사력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이 나라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날과 같은 역사를 만들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워싱턴 광장에 모인 수백만 명이 세계에 보여준 것처럼 남, 녀, 노, 소, 흑, 백, 아시안, 라티노, 크리스천, 이슬람, 게이, 進步, 保守, 無黨派, 富者, 貧者가 모두 모여 "우리는 하나"라고 외칠 수 있는 나라가 이 나라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나라만큼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을 가진 가치를 알고, 존중하는 나라가 없는 것은 세계의 현실이자 사실이다. 이 나라만큼 민주와 법치를 끈질기게 추구하는 나라 역시 찾기 어렵다. 관타나모 수용소와 이라크 포로 학대는 이 나라의 도덕성에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9·11 테러와 같은 공격을 당하고서도 그 혐의자들의 인권 보장 문제를 놓고 이토록 치열하게 논쟁하고, 전쟁 중에 자기 나라 군대의 치부를 이렇게 백일하에 드러낼 수 있는 나라는 이 나라 밖에는 없다. 오바마가 취임 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가 대법원에 나가 미국에 잠입한 명백한 테러혐의자를 구금한 조치가 합법적이었는지 여부를 증언하는 일이다. 이 나라가 가진 너무나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되는 나라가 유럽과 중국·러시아·일본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흘 전 오바마를 태운 워싱턴행 열차가 볼티모어에 도착했을 때 흑·백 두 여성이 머리를 맞대고 우는 장면을 보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취임식에 가느냐"를 인사로 삼았다. 이틀 전 75만 명이 모인 취임 축하 콘서트에선 흑인보다 더 많은 백인, 라티노, 아시아인들이 환호했다. 아무나 열 명, 스무 명씩 모여 "오늘 우리가 여기에 있었다"고 사진을 찍었다. 어린 자식을 무동 태운 아버지들은 헤아릴 수도 없었다. 여성 교통경찰관은 길 건너는 인파에 몸을 던져 사람들과 손을 맞부딪쳤다. 46년 전 킹 목사는 "미국이 진정 위대해질 수 있느냐"고 물었다. 오늘은 미국이 그 물음에 자신 있게 대답한 날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역사는 미국의 편이었다. 미국인들이 이날 새로이 만든 역사를 보며 앞으로도 상당 기간 역사는 이 나라의 편일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역사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관용하고 하나의 깃발 아래 단결하는 나라의 편이었다. 워싱턴 광장에 서서 눈으로는 미국을 보면서도 가슴 속에선 우리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조선일보 양상훈(워싱턴 지국장)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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