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시대의 불확실성
자동차의 운전석에 버락 오바마(Obama) 대통령 당선자가 핸들을 잡고 있다.
그 옆의 조수석엔 힐러리 클린턴(Clinton) 국무장관 내정자가 타고 있다.
클린턴 내정자는 몸을 왼쪽으로 숙여 자신이 핸들을 잡고 운전을 하려고 한다.
오바마 당선자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오바마 당선자가 내년 1월 20일 취임 후, 처할 수 있는 상황을 풍자한 미국 신문의 만평이다.
사상 유례 없는 경제위기 속에서 출범하는 '오바마 시대'가 직면할 수 있는
혼돈과 불확실성을 단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장면이다.
지난달 4일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된 오바마에게 일방적으로 쏟아지던 찬사가
잦아들면서 그의 시대를 냉정하게 조망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최근 워싱턴 포스트,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언론은 그의 내각 인선(人選)을 집중 분석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언론매체가 오바마 내각은 '실용주의 성향'을 띠고 있다고 평가했다.
노동부 장관에 친(親)노조 인사인 힐다 솔리스(Solis) 하원의원이 지명된 것은 노동정책의 변화를
바라는 '리버럴(진보주의자)'을 충족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켄 살라자르(Salazar) 내무장관,
톰 빌색( Vilsack) 농무장관, 아른 덩컨(Duncan) 교육장관 지명자는 "보수와 리버럴 양측에 양다리를
걸쳤다"는 비판을 받는다.
한국의 이명박 정부도 그렇지만 실용주의를 내세운 정부의 최대 약점은 정체성이다.
정책방향을 파악하기 어려운 '불확실성(uncertainty)'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부시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낸 피터 웨너(Wehner)가 "누군가 오바마 정부의 정치 철학을
분명히 내게 말해줄 수 있다면 아무에게라도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살 것"이라고
비꼰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오바마 차기 행정부의 불확실성은 남북한과 관련한 사안에서 두드러진다.
그는 대선 기간에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포함, "적국의 지도자를 아무런 조건 없이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차기 백악관 법률고문에 내정된 그레고리 크레이그(Craig)는
북핵 해결을 위해 신정부 출범 후 100일 내에 대북 특사를 파견하자는 제안도 했다.
하지만 오바마 당선자 측의 관계자들 중에서 "대선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당장 북한 문제에서 급진전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오바마 당선자 측이 "6자회담을 계속하겠다"는 원칙만 갖고 있을 뿐,
구체적인 정책이 없다는 비판도 나오기 시작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마찬가지다. 오바마 당선자는 그동안 자동차 문제를 거론하며
한미 FTA 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이와는 반대로 그의 주변에서는
"오바마 당선자가 재협상을 주장하는 것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일 뿐"이라며
한미 FTA는 원칙적으로 반대하지 않으니 기다려 달라는 메시지도 나오고 있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 엇갈린 신호들이 동시에 나와 오바마 차기 정부의 구체적인 입장을
파악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내년에 심화될 가능성이 큰 경제위기와 맞물려 더 큰 불확실성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출범을 한 달도 남겨 두지 않은 '오바마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과 정책 마련이 시급한데도
국회 의사당이 무법천지가 될 정도로 정치권이 대치하는 모습은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우리가 먼저 단합해서 확실한 정책과 전략을 갖고 있어도 대응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말이다.
- 이하원·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