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한미 양국
2009년은 미국이 기로에 놓인 한 해가 될 것이다. 세계 초일류 강대국으로 남을 것인지,
여러 강대국 가운데 하나로 추락하는 시점이 될 것인지, 갈림길에 서 있다.
우선 1월 20일 버락 오바마(Obama) 대통령 취임 이후, 미 의회는 1조달러에 육박하는
경기부양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또 3월 31일까지 오바마 행정부는 파산 직전인
GM과 크라이슬러 등 자동차 빅3의 추가 구제 금융 지원 여부를 결정지어야 한다.
미 경제가 사느냐 죽느냐는 경기부양책과 빅3 회생 여부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2월 내내 힐러리 클린턴(Clinton) 국무장관 지명자 등 장관급 상원 인준 청문회가 열린다.
3월에는 각 부처 부장관, 4~5월에는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등 차관보급 인사 청문회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전 세계가 청문회를 통해 미국의 리더십을 주목할 것이다.
2009년이 다른 해와 다른 점은 또 있다. 세계 경제 위기가 도래하면서
세계 경제의 중심지가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옮겨왔다.
기업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미 공무원들은 요즘 기업들이 흥청망청거리는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본다고 한다. 이 때문에 기업들의 연말 파티로 특수를 이루던
남부 플로리다 고급 휴양지들은 지난 연말 파리만 날렸다는 것이다.
세계적 기업들의 경영 방침이 뉴욕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워싱턴에서 결정된다는 건
시장 경제를 신봉하는 미국으로서는 정말 큰 아이러니다.
미국만 기로에 놓인 게 아니다. 2009년은 한미 동맹의 분수령이 되는 해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3월 31일 이전에는 우리나라 통화 스와프 연장 및 증액 여부를 놓고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행정부 간에 협상이 이뤄져야 한다.
만약 통화 스와프 연장이나 증액이 안 되면 환율을 비롯,
한국 경제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4월 초에는 영국 런던에서 G20 회의가 열린다.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이 처음 대면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한미 관계를 조금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다.
각 부처 인선이 마무리되는 5~6월쯤이면 한국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들이 하나둘씩 나온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할 시점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북핵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평화가 좌우된다.
또 한국의 아프가니스탄 지원에 대한 미국의 압력이 거세질 수 있다.
조만간 오바마 행정부에 들어갈 민주당 지인들은 공공연하게
"한국의 지원을 기대한다"고 말하고 있다.
9월부터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무역대표부(USTR)는 이르면 올 9월부터 한미FTA 재협상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미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수입한다는 조항을 추가했던
2차 한미 쇠고기 협상처럼, 본문은 놔두고 부속서를 추가하는 '명료화'(clarification)
작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말은 '명료화'지만, 사실상 재협상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우리 정부는 "재협상은 없다"지만, 미국이 요구하는
'명료화' 작업, 즉 추가 협상에는 임해야 할 것이다.
쇠고기 협상 때처럼 온 나라가 또 한 번 떠들썩해질지 걱정이 앞선다.
이처럼 2009년은 결코 만만한 한 해가 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 해가 될지, 그저 그렇고 그런 삼류 국가로 전락하는
시발점이 될지는 전적으로 우리 하기 나름이라는 점이다.
- 최우석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