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國際.經濟 關係

"묶여지 흰수건이 살렸다" 라싸에선 무슨 일이…

鶴山 徐 仁 2008. 3. 21. 16:24
라싸에선 무슨 일이…英'이코노미스트' 기자 목격담
경찰의 승려 구타가 발단… 군중들 상점·택시 공격
실탄도 쐈지만 절제된 진압… 한족 "늑장대응" 격분
사흘 지나 무차별 검색·체포나서 사실상 계엄상태

전병근 기자 bkjeon@chosun.com 

 

독립 시위에 이은 소요 사태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중국 티베트(시짱·西藏)자치구의 라싸(拉薩)에 있었던 영국 이코노미스트지(誌) 기자 제임스 마일스(Miles)가 자신이 겪은 소요사태를 정리했다. 시위 시작 전 취재 허가를 받아 현지에 가 있었던 그는 취재 허가 만기일인 19일 티베트를 떠났다. 다음은 그의 '티베트에서의 1주일' 요약.

"취재 허가가 난 것은 지난 10~11일 승려 수백명이 시위를 시작하기 전이었다. 중국 당국은 시위가 시작된 후에도 충분히 통제 가능하다고 여겼던 듯 12일부터 예정된 현장 취재를 허용했다. 폭동은 14일 오후 라싸 도심 베이징로(路) 인근 사원 밖에서 승려 2명이 경찰에게 구타당한 후 시작됐다(당국은 승려가 먼저 경찰에게 돌을 던졌다고 주장). 주민 수십명이 모여들었다. 일부는 한족 상점과 지나가는 택시(운전사 대부분이 한족)에 돌을 던졌다. 폭동은 곧 한족과 후이(回)족 소점포들이 밀집한 구티베트 구역으로 번졌다. 곳곳에서 모여든 군중은 상점 물건들을 길에 내던져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티베트인 상점들은 셔터 손잡이에 흰 수건을 묶어 표시함으로써 파괴를 면했다. 상점 위층에 사는 한족들은 도망갔고 남은 일부는 들킬까 봐 불도 끄고 말소리도 죽였다. 밤 사이 화재 진압을 위해 소방차가 출동한 데 이어 다음날 새벽에야 전투경찰이 출동해 구티베트 구역을 봉쇄했다. 하지만 골목 안에선 폭동이 계속됐다. 한족들은 당국의 늑장 대응에 격분했다. 당국은 1989년 천안문(天安門)사태와 라싸 소요 때처럼 무력 진압에 나설 경우 올림픽 보이콧 사태를 부를 수 있다는 정치적 부담 때문에 무력해져 있었다.

15일 돌을 던지는 시위대에 최루가스가 발사되면서 거리가 진정돼 갔다. 전경이 골목까지 들어갔다. 이따금 실탄도 발사됐다. 난사가 아니라 단발이었고, 사살보다는 경고성이 강했다. 폭동 초기엔 여기저기 티베트인들이 경찰에 의해 숨졌다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막바지 단계에는 그런 소문이 없었다. 중국 기준에서 볼 때 이번 진압 과정은 상대적으로 절제된 것처럼 보였다. 15일 오후부터 골목도 조용해졌다.

그 후 당국이 폭동 주모자 색출에 나서면서 무차별 체포와 함께 공포가 확산됐다. 도시는 사실상 계엄령하에 놓였다. 구티베트 구역은 총을 든 부대에 의해 봉쇄됐다. 거리엔 번호판을 가린, 군용으로 보이는 차량들이 많았다. 외국 관광객은 떠나라는 '권고'를 받았다. 18일 군·경은 남아 있던 관광객 100여명을 폭동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호텔로 옮기기 시작했다."

▲ 중국 티베트 수도 라싸에서 지난 10일부터 시작된 승려들의 시위는 14일 티베트 주민들의 과격시위로 변하면서 한족 상점들을 겨냥한 방화(가운데 사진)와 경찰차 공격(위) 등이 잇따랐다. 아래쪽 사진은 소요 사태가 진정되고 난 19일 불탄 건물을 둘러보는 주민들 모습. /AP 뉴시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3/21/200803210001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