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대국과 '도산 공포증'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누구나 창업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겠다"고 했다. 현실은 정반대다. 우리나라만큼 창업하기 어려운 나라도 드물다.
월드뱅크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창업환경은 178개국 중 110위다. 기업을 만드는 데 필요한 행정절차만 10단계, 회사를 설립하고 등록하는 데 22일이 걸린다. 상업 등기하는 데 4일, 사업자 등록하는 데 7일이 소요된다. 행정 절차가 꼼꼼한 일본의 평균 등록 기간은 3일이다.
등록하는 데 필요한 서류를 구비하는 데 287만원이 든다. 공장 인허가 비용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의 2배가 넘고, 사업자등록을 위한 예치금은 소득 수준을 감안하면 OECD 평균의 10배에 달한다.
그러나 복잡하고 비싼 행정 절차만 창업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다. 이보다 사업하겠다고 결심하면, 가족이나 친구들이 필사적으로 말리는 분위기가 더 문제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업 실패에 따른 후유증은 창업에 도전하려는 젊은이들의 기업가 정신에 찬물을 끼얹기 일쑤다. 이른바 도산(倒産) 공포증이다. 대출을 받아 시작한 사업이 부도날 경우, 보증을 선 부모나 형제, 처가까지 함께 망한다. 결국 이 도산 공포증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가 대통령이 말하는 '창업 환경 조성'의 핵심 과제인 셈이다.
중소기업 창업을 위한 대출 지원 제도가 있지만, 이자를 꼬박꼬박 물어가며 사업 첫해부터 수익을 내는 사업을 찾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이보다는 미국처럼 벤처캐피털을 활성화, 아이디어가 좋은 신생 기업에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지금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마이크로소프트, HP, 이베이, 구글 등은 큰돈을 대출 받아 성공한 기업이 아니다. 벤처캐피털이 아이디어만 믿고 장기간 투자한 끝에 성공한 예다. 지금이라도 창업 지원 제도를 대출 중심에서 투자 위주로 전환해야 한다.
또 실패한 사람들에게 재기(再起)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한번 실패한 패자(敗者)에 너무 가혹하다.
세계 최대자동차 회사인 GM의 창업자 윌리엄 듀란트는 사업 실적이 나빠져 회사에서 해고당했다. 그 후 하는 사업마다 실패, 개인파산을 신청할 만큼 철저하게 망했다. 그러나 80세 나이에 다시 햄버거 체인점에 도전, 결국 성공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단 한번이라도 대출 이자를 연체하면 즉각 신용 불량이라는 블랙리스트에 오른다.
현재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거절당해 대부업체 등을 찾는 사람은 600만 명에 달한다. 대부업체마저 버린 신용불량자도 약 300만 명에 이른다. 우리나라 경제인구 중 7분의 1이 정상적인 대출을 못 받는 상황이다. 이들 중에 조금이라도 일을 해서 빚을 갚으려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도와주어야 한다.
이 점에서 새 정부는 소외계층 창업을 지원하는 마이크로 크레디트(무담보 소액신용 대출) 뱅크를 관심 있게 지켜볼 만하다. 마이크로 크레디트 뱅크란 신용 불량자들이 재기하도록 도와주기 위해 아이디어와 사업 타당성을 심사, 1인당 5000만원에서 3억원까지 담보 없이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저명한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1909~2005)는 생전에 저서 '넥스트 소사이어티(Next Society)'에서 가장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국가 중 하나로 한국을 꼽았다. 그러나 드러커가 지금껏 살아있다면 '한국의 기업가 정신은 죽었다'고 고쳐 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새 정부가 우리나라에서 창업의 열기가 다시 넘치도록 사회적 분위기와 각종 시스템을 혁명적으로 바꿀 것으로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김영수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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