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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際.經濟 關係

[특파원 칼럼] 적도 동지도 없는 월스트리트

鶴山 徐 仁 2007. 12. 24. 23:10

김기훈 뉴욕 특파원

 

 

적도 동지도 없다’는 말은 국제정치에서 보편화되어 있지만 요즘 월스트리트를 보면 국제경제계에서는 그 정도가 더 심한 것 같다. 수퍼파워 미국의 경제적 토대인 월스트리트의 초대형 금융기관들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면서 ‘경쟁자’들에게 주저없이 손을 내밀고 있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가 중국 정부의 외환보유고로 운영되는 국부(國富)펀드에 지분 9.9%의 2대 주주 자리를 내주면서 50억 달러를 긴급 수혈 받기로 했다. 메릴린치도 싱가포르 국영펀드인 테마섹에서 50억 달러를 지원 받을 예정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부실채권이 누적되고 자본금이 줄어들자 부랴부랴 외국의 구원자에게 손을 벌린 것이다.

구조 요청은 아시아뿐 아니라 중동으로도 향하고 있다. 지난달 아부다비 투자청은 씨티그룹의 지분 4.9%를 75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또 테마섹이 스위스계 UBS 지분 9%를 인수하고, 중국개발은행이 지난 7월 영국 바클레이즈에 30억 달러를 투자해 지분 6.7%를 인수하는 등 전 세계 금융시장은 세력재편 중이다. 인터넷 경제 매체인 ‘마켓워치’는 “월스트리트의 많은 은행들이 본사를 베이징이나 두바이로 옮겨야 할 것”이라고 비꼰다. 마치 진주만 폭격을 연상시키듯 각 국가 타이틀을 단 국부펀드들이 월스트리트를 대공습하는 양상이다.

공습의 선봉에는 막대한 외환보유고로 무장한 중국과 오일머니의 중동이 서 있다. 하지만 이 둘은 그동안 미국이 가장 손잡기 꺼려하던 상대였다. 미국 의회는 날로 커지는 중국의 위세를 막기 위해 각종 무역보복 법안까지 마련해 가며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중동은 9·11 테러의 진원지로서, 언제 다시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지 모른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실제로 이 두 지역 기업이 미국 기업을 인수하려다 의회의 ‘안보논리’에 걸려 좌절 당한 사례도 많다.

하지만 이번은 사정이 다르다. 어제의 적에게 먼저 손을 벌린 것은 미국이다. 그래서 경제전문가들은 “앵글로색슨식의 금융자본주의 모델이 신뢰를 잃었다” “백인들의 떼거리 자본주의가 갖는 무능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중국과 중동계는 서브프라임 위기로 국제금융계가 세력 재편에 접어들자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고 있다. 100여년 전 유대인들이 세계 팽창의 교두보로 삼았던 월스트리트에서 세대교체를 노리고 약진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가 바뀌면 사람이 바뀌고 정치도 바뀐다. 이미 월스트리트에서는 중국과 중동계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한 한국 담당자는 “중국계에 밀려 견디기가 점점 힘들어진다”고 털어놓았다. 중국 국영투자공사는 월스트리트 경험이 있는 중국인들을 본토로 불러들여 새 전투를 준비 중이다.

금융은 자본주의의 꽃이다. 국부와 고용을 창출하는 서비스산업의 핵심이기도 하다. 중국이 제조업을 넘어 금융업 장악에 나서고, 세계 각국이 국부펀드를 내세워 ‘글로벌 쩐의 전쟁’을 벌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향후 3년간 세계 국부펀드가 지금보다 4배 가량 몸집을 불릴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우리에게 금융은 ‘BBK 사건’ ‘삼성 비자금 사건’ 등으로 아직 어두운 이미지를 드리우고 있다. 외환·금융위기 이후 10년간 금융산업이 거의 국내에 머물러 온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세계열강들의 금융패권 쟁탈전은 우리에게 더 큰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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