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유럽 아프리카

(8) 파렌지! 안드 브르를 조심하세요

鶴山 徐 仁 2007. 2. 24. 16:57

- 에티오피아 경찰서 견학

에티오피아 북부에 있는 메켈레(Mekelle)라는 곳을 여행하다 디지털 카메라를 도난 당했다. 메켈레는 유물유적이 많아 유명한 곳이라기 보다는 현재 정치적인 실권을 잡고 있는 사람들의 출신지라는 이유로 유명해진 곳이다. 아디스아바바에서 비행기로 1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곳이라 수도에서 돈을 벌어 이곳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외국 정부에서도 학교를 세워주거나 인력을 파견해 지원해 주는 등 이곳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 최근 ‘메켈레 힐즈’라고 부르는 고급주택가가 들어서는 등 온 도시가 지금 ‘공사중’이다.

일군의 꼬마들이 ‘파렌지(현지어로 ‘외국인’)’를 외치며 모이더니 ‘안드 브르, 안드 브르(’안드’는 하나를 의미하고 ‘브르’는 현지 돈의 단위(birr), 100원이 조금 넘는 금액)를 연호하는 통에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꼬마들이 사라지자 주머니에 있던 디지털 카메라도 동시에 사라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도난 장소에서 많이 떨어져 있는 경찰서를 물어물어 찾아 갔다. 어디서 왔느냐, 무슨 카메라냐, 이런 것도 묻지 않고 경찰관 두 명이 잃어버린 장소를 가 보자는 것이었다. 경찰관과 동행하는 ‘파렌지’에게 ‘안드 브르’를 외치는 에티오피아인들은 그곳에 없었다. 한참을 걸어 카메라를 잃어버린 장소에 도착한 경찰관은 이곳은 관할 구역이 아니라면서 다른 경찰서를 알려주는 게 아닌가.

▲ Policestation_aksum
악숨(Aksum)에 있는 경찰서 입구. 메켈레의 경찰서도 골목 주택가에 저런 모습으로 있었다. 벽에 매달려 있는 통은 초인종 역할도 하고 신문고 역할도 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카메라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다시 물어물어 관할 구역의 경찰서를 찾아 갔다. 골목을 몇 군데나 돌아 주택가 안에 자리잡고 있는 경찰서 안에는 달랑 책상 하나에 걸상이 몇 개 있고 조사중인 경찰들이 몇 명 있을 뿐이었다. 이 사람들이 카메라를 찾아 줄 수 있을까 의심이 들 정도로 경찰서는 아주 많이 초라했다.

이 경찰서에서도 역시 신상이나 도난 물품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대뜸 잃어버린 장소를 가자는 거 아닌가. 동행한 경찰은 “나는 영어를 못하고, 네가 하는 영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을 아주 빠르게 영어로 이야기했다. 도난장소를 파악하고 또 한참 골목을 돌아 경찰서에 도착했더니 그제서야 다른 경찰관이 내 국적을 물었다. 쓰고 있는 모자에 커다란 태극기가 새겨져 있었고 태극기 아래에는 KOREA도 선명하게 박혀 있었는데 말이다.

국적을 받아 적고 나서부터 문제였다. 이름을 묻더니 할아버지 이름이 뭐냐고 묻는 것이었다. 이곳에서는 이름에 할아버지 이름을 같이 사용하기 때문에 불러준 이름만으로는 기록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희와 다른 방식으로 이름을 짓는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를 하지 못했다. 아마 외국인 민원이 이 경찰서에 처음인 것 같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학위를 묻는 거였다. 대졸이냐, 석사냐, 아니면 박사냐. 카메라를 도난 당했고 지금 그 카메라를 찾으러 왔는데 학위가 왜 중요하고 도난 내용 기록하는데 왜 이렇게 많은 시간을 낭비하냐고 언성을 높였더니 이게 본인들의 의무이기 때문에 무조건 기다리라는 거였다. 잃어버린 카메라의 사양이나 메모리 카드의 용량 같은 건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무려 한 시간을 그 곳에서 지체하게 한 후 연락할 테니 돌아가라는 거였다. 이력서도 만들 수 있을 만큼 신상에 대해 꼼꼼하게 적은 뒤였다.

중국에서도 이런 경험이 있었는데 큰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다 그런지 좀처럼 조바심이라는 게 없다. 뭐 급할 게 없어서인지 서두르는 것도 없고. 이런 것을 대국기질이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보름이 지난 지금도 그 경찰서에서는 아무 연락이 없다. 정작 카메라를 잃어버린 에티오피아에 대고는 아무 말도 못하고 애꿎은 한국의 보험회사만 괴롭혀야 할 것 같다.

 

 

 

<윤오순>

기사일자 : 2006-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