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끝까지 가요. 거기에서 오래 머물러요.
어떤 집중의 힘이 내 응시에 성실함을 부여해요. 바라보는 일만으로 내
존재는 의미로 가득차요. 알 수 없어요.
이 대책없는 시절 모르는 순수의 확신. 열두어 살 새벽녘에
바라보았던 키큰 느티나무
그것을 신성함의 영역 속으로
서서히 너무나 부드럽게 띄워 올리던 장엄한
햇빛
그 무엇인가의 옴......
푸드득대며 사물들이 그것을 향해 찌렁찌렁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올라가던 것항복, 그 때 내 작은
영혼이 휘둥그레
동공에서 눈알이 툭 떨어질만큼 놀래서, 와아..
내가 조그만
의자에 달랑 앉아서 달랑 앉아서
얼마나 감미롭게 그 순간을 꿈꾸었던지 나는 언제나 텅 비어 있었어요.
하지만 알 수 없는, 지독히 효율적인 우울함
나는 한 살도 더
먹지 못했어요. 다만 나를 버려두고 내 껍질의, 외형의 우연한 길이만이 늘어났을 뿐. 나는 잔혹한 옴, 신선함의 밀도에 넋이
빠져하지만, 지금은, 응응, 내 안에서 사물들마다 처음으로 보며,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늘 감격해서
눈물 그렁그렁한 저 철부지 영혼을 나지막한 소리로 윽박질러요, 입닥쳐
주책바가지야...
그래도 난 알아요,
내가 가만히 꼼짝 않고 바라보는 이 어두움, 변함없는 정신의 비효율성
속에서
온통 살로 된 이 푸드득댐, 환희, 그것을 내가 감당할 줄 안다는
것을.
문득 어두움의 커튼 속에 아주 가느다란, 빼빼 마른 생선가시 같은
손가락 한 개 떠올라와요. 그것이 얼마나 단번에 화다닥 어두움을 벗겨내는지
나는 말할 줄 몰라요, 다만, 이 살로 된 떨림을 전할 뿐,
고통의 응시의 끝에서 사물들의 껍질 툭툭 벗겨지고 그 때 내 눈앞에서
떠오르는 저 기이한 달빛 유령들의 존재를 지금 너무나 지쳐 있는 내가...
응시.내면의
삶,전율/김정란
(이생강 대금
연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