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는 작품을 팔아야 할 때면 언제나 우울해 했다. 일단 거래가 성사되고
그림이 밖으로 실려나갈 때면
매우 낙담해서 며칠 동안 그림도 그리지 않았다. 끈질긴 화상과의 흥정,
거기에 빼앗기는 에너지와 시간 등,
그는 작품 거래의 과정을 몹시 힘겨워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의 물건을 만지거나 피카소만의 특유한 무질서를 방해할 수는 없었다.
또한 먼지에 대한 공포 때문에 그는 빗질도 하지 못하게 했다.
주위의 먼지들이 아직 마르지 않은 캔버스에 달라붙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피카소는 산책하다가 눈에 띄는 물건이 있으면 사지 않고는 못 배겼다.
그런 식으로 사들인 물건들이 스튜디오를 가득 채웠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가구들을 찾아냈는데,
웅장하면서도 단순한 루이 14세 풍의 오크 제품을 가장 선호했다.
우리는 벼룩 시장을 찾기도 했는데 그 곳엔 악기, 상자,
금박이 벗겨진 오래된 사진들, 책, 몇 푼 안되는 구식 캔버스 등
피카소가 좋아하는 온갖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그는 고물이나 희한하게 생긴 가구, 자잘구레한 장신구들을 주위에 두는 것을
좋아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할 물건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데 탐욕스러울 정도였다.
옷은 노동자처럼 입었으며, 상피에르에서 구입한
흰 물방울 무늬가 박힌 붉은 플란넬 셔츠를 즐겨 입었다.
원색적이며 색상이 부조화스러운 옷들을 좋아했고,
넥타이가 더럽혀지거나 구겨지는 것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을 뿐 아니라
오로지 자신만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취향을 즐겼다.
수년 동안 그는 마분지로 만든 오래된 모자 상자를 보관하고 있었다.
그 상자에는 온갖 종류의 색깔과 천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넥타이가 들어 있었는데 그것만이 그의 우아함을 그나마 지켜주고 있었다.
페르낭드 올리비에 (Fernande
Olivier)
피카소의 첫사랑으로 그와 1905~12년 까지 가장 중요하고 활력 넘치는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피카소를 처음 본 인상을 "작고 까무잡잡했지만 눈빛이 너무나 강렬했어요.
무척 불안한 태도였지만 도저히 저항할 수 없었어요." 라고 말한다.
그녀의 등장과 함께 피카소의 질병이 호전되고
자신감 넘치는 '장밋빛 시대'(1904-1906)를 맞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