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위축땐 세계경제 동반 침체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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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그의 연설 스케줄만 알려져도 지레 주가가 곤두박질친다. 한국 증시도 예외가 아니다. 버냉키 의장이 이번 주에 워싱턴과 시카고 등에서
3차례 연설할 것으로 전해지면서 지난 12일 뉴욕 주식시장에서 다우존스와 나스닥 지수는 1~2% 빠졌다. 세계 금융시장에선 버냉키 의장의 입에서
조만간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 추가인상이 불가피하다”고 강경발언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엄습해오는 인플레이션 공포=전 세계가 인플레이션 공포에 사로잡히고 있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30년 만에 다가오는 인플레이션
공포다.
미국의 경우 지난달 생산자물가는 1년 전에 비해 4.5%나 상승, 지난 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 5월 수입물가는 8.3%나
올랐다.
EU(유럽연합)의 물가 상승률은 3월 2.2%에서 4월에 2.4%로 높아졌다. 일본도 경기가 회복되면서 물가가 오를 조짐이고, 중국의 5월
소비자 물가지수도 4개월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특히 중국은 최근 휘발유 등 석유류 가격을 10% 이상 인상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하반기에 30개 회원국의 물가상승률을 당초 예상치보다 0.2%포인트 높은
2.1%로 상향 조정했다.
이처럼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에 인플레이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최근 4~5년간 저금리 기조 아래 세계경제가 호황을 구가한데다
자금과잉이 심각한 상황에서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고유가와 통화팽창으로 ‘인플레이션 없는 경제성장’이 한계에 도달했다”며 “세계경제에 다시 1970년대의 인플레이션 공포가
찾아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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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럽, 일본 등 세계경제의 주축국들은 지난 2000년 IT(정보통신) 버블이 붕괴된 후 경기급락을 막기 위해 통화량을 늘리는 저금리
정책을 펴왔다. 그 결과 지난 5년간 풍부한 유동성(자금)이 주가를 올리고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키면서 세계경제를 지탱해왔지만, 서서히 물가가
상승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통화량을 줄이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 미국의 경우 FRB가 현재 5%인 연방기금
금리를 6% 선까지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유럽중앙은행도 물가안정을 위해 금리를 인상할 전망이고, 경기 회복세가 두드러지는 일본도 금리를
올릴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중국은 올 들어 두 차례 금리를 올렸고, 인도는 지난해 세 차례에 이어 올해도 2번 금리를 인상했다. EU,
캐나다, 호주, 터키, 태국, 남아공 등도 금리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한국도 지난주 정책금리를 올렸다.
인플레이션이 뚜렷해지고 고금리 시대가 오면 소비가 위축돼 경기가 다시 둔화되고 세계 경제가 동반 침체를 맞게 된다. 최근 세계 증시가 동반
폭락하는 것도 이런 우려에서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도 위협요인=인플레이션 공포 외에 미국의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도 세계경제의 걸림돌로 다가오고 있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달러화가 당장 강세로 돌아서게 되지만,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 때문에 달러의 강세 추세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 경우
한국 같은 수출국들은 불리해진다. 특히 고유가 행진이 미국 경상수지 적자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석유수입액이 늘면서 지난 4월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액(634억달러)은 전달보다 15억달러나 증가했다.
로드리고 라토 IMF 총재는 “유가 상승과 미국의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 주식시장 하락세로 인해 세계경제가 하강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벤 버냉키 의장은 세계경제의 엔진인 미국 경제가 성장과 활력에 필요한 강력한 생산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장기 전망은 밝다며 미국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