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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분류 美學房

[스크랩] 물고기 하늘을 날다 ( 백 남 준)

鶴山 徐 仁 2006. 2. 4. 14:41

  
    "물고기 하늘을 날다"

    백남준   1932.  서울 출생 

  대부호의 3남 2녀 중 막내로,
  어려서 피아노를 배워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어린 시절                                                  독일 유학 시절

  6·25사변이 터지자 그의 집안은 모두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는데,
상경대에 진학하라는 부친을 속여가며 동경대 미대에 진학했다.
그는 도쿄대학에서 총명한 학생으로 정평이 나 있었으며 주로 음악과 철학 서적을 읽었다.

 일본 도쿄대학을 졸업할 즈음, 백남준은 당시 현대 음악의 메카로 알려져 있던 독일로 유학하여 58년에는 존 케이지와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그의 예술 인생은 큰 전환을 이룩하게 되었다.

 
    "완전 피아노"

 존 케이지는 서양 음악의 고정 관념에 대하여 반기를 든 가장 적극적인 전위 음악가이며, 
 백남준이 서양의 전통악기인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때려부수면서  행위 음악을 전개시키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62년  백남준은 자신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독일 뒤셀도르프의 어느 공연장에서 바이올린을 부수는 퍼포먼스를 하였는데,  그 곳에서  플럭서스 그룹을 창시한 요셉 보이즈을 만난다. 

  이들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가까워진 것은 요셉 보이즈가 백남준의 첫 전시에 느닷없이 개입하고 난 뒤부터였다.
백남준과 요셉 보이즈는 그 후에도 여러 차례 퍼포먼스를 함께 하였으며 특히 요셉 보이즈 신화의 대부분에 백남준이 함께했다.               

 
  피아노 공연 후 자신이 제작한 로봇을 끌고 나와 시연하는 백남준
  그 후 뉴욕에선 로봇이 무단횡단하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해프닝으로 이름이 알려진다.

 

  그는 무대 위에서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때려 부수고, 관객의 넥타이를 자르고, 머리에 세제를 끼얹고, 객석에 소변을 보고, 구두로 물을 마시고, 머리로 붓글씨를 쓰며, 막 자른 황소 머리를 걸어 놓는 등 당시  미술계에서 가장 과격하고 폭력적인 예술가로 명성을 얻었다. 
 
 63년 백남준은 독일 유학 시절 부친의 마지막 송금액으로  텔레비전 13대를 샀다.
그리고 3월에 독일의 소도시 부퍼탈에서는 텔레비전 13대가 동양의 젊은 예술가 백남준에 의하여 호되게 괄시 당하고 억압당하는 매우 공격적  전시회가 열렸다.

 백남준은 이 전시회에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Exposition of Music-Electronic Television)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음악을 전시하겠다는 발상에다 그 전시가 전자 텔레비전과 관계가 있다는 암시가 깔려있다.
이 전시는 오늘날 비디오 예술의 첫 전시회로서 백남준 신화의 첫 페이지에 기록되었다.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 전시는 역사에 남는 사건이 되었다. 이 전시회는 당시까지 음악가나 행위 예술가로 알려져 있던 백남준이 텔레비전이라는 예술 영역을 새로 개척한 비디오 역사의 장을 연 문제의 전시이다.

그는 13대 가운데 12대의 텔레비전을 전시하면서 텔레비전의 기능을 온전히 살려둔 것은 거의 없었다.
어떤 것은 영사막을 거꾸로 뒤집어놓거나 관객이 발로 밟아야 기능을 하도록 조작해 놓기도 하였다.
어떤 것은 영사막을 조작하여 하나의 가느다란 선으로 묘사하였고 이것을 'TV 참선'으로 제목을 붙였다.
배치 방법도 의도적으로 무질서하게 유도하였으며 관객이 접근하여 매만지거나 건드려야 작동되도록, 즉 TV 문화를 관객의 지배 하에 둔 것이 특징이었다.

 이 전시회의 기본적인 개념은 60년대 대중 문화의 성상이며 우상이던 텔레비전을 공격하고 해체시키는 것이었다.
텔레비전을 '라디오+그림'으로 해석해 볼 때 음과 이미지의 결합은 예술에서의 혁명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이 전시회는 관객이나 언론으로부터 크게 환영받지는 못하였다.


 
   "참여 텔레비젼"                                          "TV 부처"

  그 후 뉴욕으로 건너 간 백남준은  전위 음악가이자 플럭서스 예술가인 샬로트 무어만과 
'괴짜들'을 공연한다.
 유태인인 샬롯 무어만은 헌신적이고도 열정적인 도움으로 백남준에게 매우 큰 정신적인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내 팔을 자름"                                            "존 케이지의 현악기를 위한 26.1.1499"
  
 
  "TV첼로"        샬롯 무어만이 첼로를 연주하면 TV 화면이 미리 녹화된 영상이나,
                      직접 방영되면서 신디사이저에 의해 변형된 화면이 나온다.
                      소리는 영상의 바이브레이션에 의해 배가된다.


 
 백남준의 가장 큰 출세작은 1984년 1월 1일, 미국과 프랑스의 공중파를 통해 방영된
생방송 작품,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다.
이 방송은 미국, 프랑스 뿐만 아니라 전세게 곳곳에 방영됐는데,
조지 오웰의 [1984] 소설을 풍자한 이 작품은 1984년에도 아직도 지구인들이 건강히
지내고 있을 뿐 아니라 TV를 통해서도 그 어떤 지배나 독재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굿모닝 조지 오웰"의  장면


 
  "예술과 인공 위성"

   
  
 
     
   "백악관"에서의 퍼포먼스                보티첼리의 비너스를 닮은 몸에 힐러리 상원의원
                                                    (기천달러밖에 안들었다며, 원래는 마돈나로 하려
                                                    했는데 조수가 힐러리로 하자 해서 바꿨다 함)의
                                                    얼굴이 달린 거대한 풍선이 설치돼 있다. 
                                                    조만간 이를 맨해튼 상공에 띄울 예정이라 한다.

 
  이들은 관념적 예술 형식을 버리고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예술의 이름으로 시도하였으며 신체적인 밀착 공연을 벌인 것은 물론 심지어 외설적 공연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어 재판까지 받는 등 스캔들도 일으켰다.

  당시 뉴욕 예술계는 예술과 외설 시비에 대한 차별성 및 예술적 표현 자유의 확보를 위하여 이 들의 재판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그 결과 외설과 예술의 표현 자유는 다르다는 최종 판결을 발표하게 되었으며 이들은 영웅이 되었다

 
       "로봇가족"                                                "색칠한 아이"


 
    "요소"                                                       "나의 파우스트"


  백남준은 데뷔 초기에서부터 지금까지 텔레비전의 대중 지배에 대한 역기능을 놓고 예술적 해석을 함으로써 비디오 예술의 시조가 되었다. 

 



 
  "동시 변조"   뉴욕 "구겐하임" 전시

 
 

  백남준은 데뷔 초기에서부터 지금까지 텔레비전의 대중 지배에 대한 역기능을  예술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비디오 예술의 선구자가 된 것이다.
  그가 개발한 비디오 기술들 중 특히 자석을 이용하여 텔레비전의 이미지를 뒤틀리게  하면서 예술적으로 바꾸었던 시도는 후배 비디오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손부처"                                                    "안테나가 있는 손기정"



 
   "호랑이는 살아있다"                                    "기마민족"


 
   "백팔번뇌"

 

  또한 신디사이저를 개발하여 비디오카메라가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속성을 다양한 컬러와 이미지효과를 곁들여 텔레비전의 이미지와 다른 비디오 예술을 창조한 것은 백남준의 중요한 업적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참여와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는 예술적 실천은 예술의 독재, 또는 독백 예술로 간주하였 으므로  관객이 다양한 방법으로 작품에 관계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차원으로 발전시켰다. 
 예술 작품에서 심각한 사상이나 철학을 배제하고, 오직 예술가 자신의 재미와 변덕, 즉흥성에 의해 작품을 창조하며, 서양 전통 사상이나 예술에 철저하게 저항한 인물로, 오직 자기 중심적인 아이디어에서 작품을 생산한다.


   일본인 전위 예술가 쿠보타 시게코와 결혼하여 서로가 예술의 동반자로서의 삶을 영위하며,
소위 재벌 집안에 태어나  세계적인 예술가의 반열에 올라섰지만,  백남준은 미술가의 길을
택한 뒤 단 한번도 풍족한 삶을 누리지 못했다.
오히려  미술 활동과  생계를 위해 가족들에게 돈을 꾸어야 했으며, 돈을 빌리기가 어려워 전시회를 열지 못할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한다. 

 항상 허름한 노숙자 옷차림을 하고 다니는 바람에 약속 장소에서 쫓겨나거나 길에서 적선을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플럭서스 작가들 작품이 오늘날 수천 수 억원을 호가하는데 반해,
백남준은 "작품은 그냥 작품으로써 끝날 뿐 거기에 금전적인 가치가 붙는 것을 용납치 않는다" 는 그의 예술 철학때문인지도 모른다.
  

 


<비디오 부처>, 1976-78
폐쇄 회로 카메라를 이용한 자기 명상적 작품 가운데 백미로
손꼽히는 TV 부처는 1974년 뉴욕의 보니노 화랑에서 가진
네번째 개인전에 처음 출품된 이후 돌에 둘러싸인 모습, 흙 속에
파묻힌 모습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번안되어 소개되어 왔다.
이 작품의 방법론은 지극히 간단한 것으로, 텔레비전 모니터 뒤에
놓인 카메라에 포착된 자신의 모습을 TV를 통해 바라보며 사색에
잠겨 있는 부처가 작품의 모티브이다. 그러나 그 안에 내재된
미학이 테크놀로지 아트의 핵심을 설파하고 있기에 이 작품은
많은 평론가들로부터 비디오 아트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서양의 과학기술과 동양의 명상 세계가 접목되어 있는 이
작품에서 우리는 그 둘의 세계가 서로의 이질성에 대한 담론을
나누며 서로의 정체성 확인에 몰두해 있는 상황을 발견하게 된다.
심오한 명상의 세계마저 테크놀로지로 재현할 수 있으며, 반대로
차가운 테크놀로지가 인간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쾌하게
증명해 주는 작품이다.

 

 

 

 


, 1975(2000)
TV 부처와 동일한 개념에서 구성된 작품이나, 일정 거리를 두고
TV와 마주한 채 나르시즘적 명상에 빠져 있는 부처와는 달리
이 작품은 소형 워치맨 TV위에 앉아 TV 프로그램을 보고있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을 형상화한 <지옥의 문>에 등장하는 이 인물은 지옥의
심판관인 미노스나 단테 혹은 로댕 자신으로 비유되기도 하며
한걸음 더 나아가 사유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형상으로 인식되어
왔다. 서구적 인간형의 한 모델로 선택된 <생각하는 사람>은
동양의 부처가 자기 자신을 화두로 끝없는 명상의 세계에 몰두해
있는 것과는 달리 현실의 반영인 TV 프로그램을 바라보며
고통스러운 사유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 특별히 추가된 이 작품은 기존에 출품된 TV 부처와
좋은 대조를 보여 주며 동시에 국내 유일의 로댕 작품 상설관인
로댕갤러리의 작품들과 백남준의 로댕 해석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기리시마=스포츠코리아) 기리시마 미술관에 전시된 백남준씨 작품.

 

 

 

몰두

 

“예술은 사기다”

백남준

 

 

백남준

 

1932 7 20

 

첨부이미지

사기꾼? 백남준

 

1950년대에 존 케이지라는 세계적인 현대음악 작곡가가 있었다.

백남준은 그를 스승이라 불렀으며 그는

“당장 죽게 된다면 백남준의 재담을 못듣는 것이 가장 아쉽다”

라고 말할 정도로 백남준과는 절친한 사이였다.

1959년 독일의 쾰른에서 백남준은 “존 케이지에게 경의를” 이라는

퍼포먼스를 발표하면서 피아노 2대를 부수고 일약 대 스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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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ge, John 케이지

 

1912.9.5~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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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 케이지

 

미국의 작곡가. 로스엔젤레스 출생.
포모나대학을 졸업하고 H.카우엘, A.쇤베르크에게 작곡을 배웠다.
1936∼38년 시애틀의 코니시스쿨에서 교직생활을 하면서

타악기만으로 앙상블을 조직하고 51년경부터는

독자적인 음악사상에 입각하여

문제작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또 52년 독일의 도나웨신겐에서 개최된 현대음악제에서는

《4분 33초》라는 작품을 발표,

음악에 우연적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유럽음악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우연성이나 불확실성은 작곡기법의 하나로서

널리 채용되고 있다.

 


주요작품으로는

《Imaginary Landscape No.4》(51)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서트》(54∼58)

《Variations I》(58) 등이 있으며,

또 도안악보(圖案樂譜)의 창안 등

독창성 넘치는 활동도 하였다.

 

 

 

 

 

4 minutes 33 seconds 

John Cage (작곡자)

 

 

NOTE: 

 

The title of this work is the total length in minutes and seconds of its performance.

At Woodstock, N.Y., August 29, 1952,

the title was 4'33" and the three parts were 33", 2'40",

and 1'20". It was performed by David Tudor,

pianist, who indicated the beginnings of parts by closing,

the endings by opening, the keyboard lid. However,

the work may be performed by (any) instrumentalist or

combination of instrumentalists and last any length of time.

 

FOR IRWIN KREMEN                               

 

JOHN CAGE

 

 

로마 숫자가 악장을 가리키고, TACET 는 "silent(침묵)" 라는 뜻의 음악용어로

존 케이지는 세 악장의 길이를 33 초, 2분 40초, 1분 20 초로 하라고 지시한다.

 

 

"4' 33"은
소리 없는 음악임에도 악보는 있다.

연주자로 하여금 앉아서 전혀 소리 안나게 3악장을
연주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청중은 가만히 앉아서 다른 방에서 종이를 만지는 소리라든가
바깥에서 지나가는 자동차 경적소리에나 집중할 뿐이다.
청중들의 기침 소리나 소근거림이 오히려
이 작품의 구성요소가 된다.
연주 현장에서 우연적으로 만들어진 자연스런 소리들이
결국 이 작품을 구성하면서
이른바 우연성 음악(chance music)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음악인들 사이에 이 음악을 놓고 죠크가 있는데,
예컨대, 이 침묵의 음악에 저작권이 있는가,
이 음악을 고악기로 연주할 수 있는가,
혹은 이 음악의 좋은 연주와 나쁜 연주를 구분할 수 있는가 등처럼
그 예술성, 음악성과 구성에 대한 진지한 비평과 토론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출처 : 블로그 > 흙에서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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