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목차
개요 |
생애 |
아카데메이아와
시칠리아 | 플라톤의 사상
형성에 끼친 영향들 | 저술의
순서 | 대화편의
등장인물들 | 형상이론 |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 방법에 관한
대화편들 | 윤리적·정치적인
대화편들 | 플라톤
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 | 미학적·신비적인
대화편들 | 〈국가〉 |
비판적
재구성의 대화편들
(영)Plato.
BC 428/427 그리스 아테네(또는 아이기나)~BC 348/347 아테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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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BC 428년경 아테네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아리스톤은 아테네의 마지막 왕인
코드로스의 후손이며, 외가 쪽으로는 초기 그리스의 입법가인 솔론과 연결된다. 어머니 페릭티오네는 플라톤이 어렸을 때 남편과 사별한 뒤
페리클레스의 지지자였던 그녀의 삼촌 피릴람페스와 재혼했다. 플라톤은 이 페리클레스 시대의 정치가 집에서 성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BC
404년의 과두정권을 이끌었던 외숙인 크리티아스와 카르미데스를 통해 어린시절부터 소크라테스를 알게 되었다.
귀족인 플라톤도 청년시절에 정치적 야망을 품고 있었으나, 공직에 들어오라는 보수파의 권유를 그들의 폭력적 행위 때문에 거부했다. 과두정권이
몰락한 뒤 플라톤은 새로 들어선 민주정권에 기대를 걸었지만, 아테네의 정치풍토에는 양식 있는 사람이 일할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BC
399년 민주정권이 소크라테스를 사형에 처하자,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은 메가라로 잠시 피신한 뒤 몇 년 동안 그리스·이집트·이탈리아를
여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 플라톤은 시라쿠사의 통치자인 디오니시오스 1세의 처남 디온을
만나 그와의 정신적 교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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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387년경 플라톤은 철학과 과학의 교육·연구를 위한 기관으로 아카데메이아를 창설했다(→ 과학사).
아카데메이아는 좁은 의미의 철학에만 제한하지 않고, 수학이나 수사학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 관해 광범위하게 탐구했다. 여기서 그는 제자들에게
풀어야 할 문제를 제시하고, 대중을 상대로 강연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플라톤의 만년에 벌어진 사건은 시라쿠사의
정치에 관여한 것이었다. BC 367년 디오니시오스 1세가 죽자, 디온은 왕위를 계승한 디오니시오스
2세가 과학과 철학을 통해 입헌군주로서의 자질을 갖추게끔 플라톤을 초빙하려는 생각을 품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정치적 강자인 디온에 대한 왕의
시기심 때문에 무산되었다. 플라톤은 뒷날 시라쿠사에 머물면서(BC 361~360) 두 사람을 화해시키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디온은 BC 354년
살해당했으며, 플라톤은 BC 348(또는 347)년에 죽었다. "천한 사람들의 입으로는 찬사를 보내는 것조차 그를 모욕하는"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보고 하나만으로도 그의 고귀한 인품을 엿볼 수 있다.
원뿔곡선론에 관한 연구와 같은 BC 4세기의 중요한 수학적 작업들은 모두 아카데메이아에서
이루어졌다. 테아이테토스는
입체기하학을 창시했으며, 에우독소스는
비례론과 곡면체의 면적과 부피를 찾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는 플라톤 부재시에 아카데메이아의 교장 역할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플라톤의 친구인
아르키타스는
역학을 창안했다. 플라톤의 조카로서 자연사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긴 스페우시포스와
생물학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초기 저술들처럼 수학 이외의 분야에서도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특히 법학과 실제 법률의 제정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아카데메이아는 플라톤이 죽은 뒤에도 2세기 반 동안 지적 삶의 중심지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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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플라톤에게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람은 소크라테스였다.
그러나 〈7번째 편지 Seventh Letter〉에서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가리켜 '스승'이 아니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연상의 '친구'라고
했던 것으로 보아, 그의 '제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죽음이 갖는 의미를 되새겨본 뒤 일생을 철학에 바치기로
결심했으며, 그의 합리적 방법과 윤리적 관심을 이어받았다. 그밖에 현상세계를 끊임없이 변화하는 대립 상태라고 본 헤라클레이토스와,
형이상학적이고 신비적인 피타고라스
학파로부터도 철학적 영향을 받았다. 플라톤은 어린시절에 데켈레이아 전쟁의 참혹함, 아테네 제국의 몰락, 그리고 과두파와 민주파 사이에 벌어진
BC 404~403년의 내란을 경험했다. 이 경험들이 뒷날 대화편 속에서 개진하고 있는 정치적 견해들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음이 틀림없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은 중세 그리스도교시대가 시작될 무렵의 〈편지들〉을 1편의 저서로 묶어 9개의
4부작, 합해서 36편으로 정리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알키비아데스 Ⅰ Alkibiades Ⅰ〉·〈알키비아데스 Ⅱ Alkibiades
Ⅱ〉·〈테아게스 Theages〉·〈에라스타이 Erastai〉·〈클리토폰 Clitophon〉·〈히파르코스 Hipparchos〉·〈미노스
Minos〉 등은 위작으로 드러났으며, 대부분의 학자들은 〈법률 Nomoi〉의 부록인 〈에피노미스
Epinomis〉는 오포스의 수학자인 필리포스가 쓴 것으로 믿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대(大)히피아스 Hippias Meizon〉·〈메넥세노스
Menexenos〉도 의심스러운 것으로 생각한다. 13개의 〈편지들〉 대부분은 위작임이 확실하지만, 플라톤의 생애와 철학적 관점에 관해 중요한
정보를 전하는 〈7번째 편지〉에 관한 논란은 아직도 분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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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사상 발전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화편들이 씌어진 순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불행히도
플라톤 자신은 그 순서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으므로, 현대의 학자들은 문체상의 특징에 준거해서 〈소피스테스 Sophistes〉·〈정치가
Politikos〉·〈필레보스 Philebos〉·〈티마이오스 Timaios〉(그것의 속편 격으로는 〈크리티아스 Critias〉), 그리고
〈법률〉 순으로 후기 대화편에 포함시킨다. 〈소피스테스〉를 후기 대화편의 처음으로 보는 이유는 그것이 〈테아이테토스 Theaitetos〉(BC
368경)의 속편이라고 플라톤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 대화편들의 마지막은 일반적으로 〈테아이테토스〉·〈파르메니데스
Parmenides〉라고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플라톤의 극적인 열정이 최고로 나타나 있는 〈향연 Symposion〉·〈파이돈
Phaedon〉·〈국가 Politeia〉 등이 〈프로타고라스 Protagoras〉도 포함하여 전기 저술활동의 정점을 이루고 있다. 후기
대화편들은 문학적 가치는 떨어지지만 정교한 논증이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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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자신은 한 번도 대화편에 등장하지 않는다. 대화편의 인물들은 모두 역사적 실존인물이며,
대체로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대화편 속에서 플라톤이 그들의 의견을 단지 보고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입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제기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이와 관련해서 전기 대화편과 후기 대화편 사이에 분명한 차이점이 하나 있다. 〈소피스테스〉·〈정치가〉에서는
엘레아 출신의 방문객이, 〈법률〉에서는 어떤 아테네 사람이 대화를 주도한다. 여기서 플라톤은 익명의(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자신의 고유한 학설을
대변했다. 따라서 〈소피스테스〉와 〈정치가〉의 논리학과 인식론, 그리고 〈정치가〉와 〈법률〉의 윤리학과 정치론은 플라톤 자신의 사상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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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대화편을 관통하는 철학적 학설의 핵심은 형상(이데아)이론이다. 형상이론은 물리적 사물들 외에 아름다움과 올바름 같은 형상들이 존재하며, 최고의 단계로 선(the Good)의 형상이 존재한다는 가정을 기초로 하고 있다. 감각으로 지각되는 물리적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감각적 지식들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만, 지성으로 파악한 형상들의 영역은 영원하고 불변적이다. 따라서 개개의 형상은 이 세계
속에 있는 사물들을 특성짓는 범주로서의 본(paradeigma)이며, 사물들은 이 완전한 형상들의 불완전한 모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형상이론에 관해 수년 동안 논의해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후기 대화편에서 이 이론은 별로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으며, 〈파르메니데스〉에서는 형상이론마저 비판에 회부되고 있다. 따라서 플라톤 자신이 전기와 후기로 구별되는 2개의 철학을 가진 것인지,
아니면 전기 대화편들은 그가 채색한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담고 있는 것인지의 문제가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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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 문제를 다루고 있는 〈필레보스〉를 제외하면 후기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가 대화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부분은 없다. 신플라톤주의자들은 전기 대화편의 형상이론을 소크라테스가 창시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날 이 견해를 지지하는 학자는
거의 없다. 전기와 후기 사이에 사상적 단절은 없다. 전기 대화편의 사상들에 소크라테스가 영향을 끼쳤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형상이론을
소크라테스가 창시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들은 플라톤 자신의 사상이다. 그렇지만 플라톤은 형상이론이 실제로 소크라테스가 가르친 것들의 이론적
기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이론을 소크라테스의 덕으로 돌렸다.
전기 대화편들 중에서도 〈국가〉는 윤리적·정치적인 측면, 미학적·신비적인 측면, 그리고 형이상학적
측면을 따라 흐르는 3갈래의 주된 논의가 예술적으로 결합하여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는 최고의 걸작이다. 반면에 이 시기의 다른 대화편들, 예를
들어 〈파이돈〉은 형이상학적 주제에, 〈프로타고라스〉·〈고르기아스 Gorgias〉 등은 윤리적·정치적 문제에, 〈향연〉·〈파이드로스
Phaidros〉 등은 미학적 주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플라톤의 대화편들이 1가지 주제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으며, 더구나
논문의 형식을 취한 글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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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한 윤리적 문제들을 다루는 '짧은' 대화편들이 갖고 있는 전형적인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먼저
훌륭함(덕, [arete])을 올바로 정의하는 것과 같은 도덕 철학의 문제가 제기된다. 실험적인 많은 해결책들이
검토되지만 결국 그 모든 것들에서 발견되는 제거할 수 없는 난점 때문에 그 해결책들은 모두 쓸모 없어지게 된다. 대화편을 읽는 사람은 마지막에
가서 인간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바로 그러한 것들에 관한 자신의 무지를 깨닫기에 이른다. 그가 배운 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지식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들이 혼란과 오류에 불과했었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대화편들은 해결책 없는 '난문들'(aporiai)을 던져 사람들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소크라테스 방법의 핵심은 상대편이 제시하는 다양한 견해들에 대한 끊임없는 '논박'(elenchos)에 있다. 따라서 방법에 관한
대화편들이 노리는 효과는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현명하다면 그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에 관한 나의 무지를 통렬하게 깨달았다는 점이다"라고 말한
소크라테스의 정신을 따르게 하는 것이다. 독자들은 삶의 가장 중요한 일이 혼(psyche)의 '보살핌'이며, '혼의 훌륭함'은 선과 악에 관한
지식이라는 면에서 소크라테스의 원리가 함축하는 의미를 배우게 된다.
〈변명 Apologia〉은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불경죄에 대한
재판에서 행한 연설을 보여준다. 그가 왜 감옥에서 탈출하지 않고 사형을 감수하려는지를 설명하는 〈크리톤
Criton〉은 정치적 의무의 본질과 원천을 고찰하고 있다. 재판 직전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에우티프론
Euthyphron〉의 주제는 신들에 대한 인간의 적절한 태도인 '경건함'에 관해서이다. 플라톤은 이 3편의 대화편 속에서 왜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회피하거나, 타협적인 자세로 변명하거나, 사형 선고 뒤에 도주하는 것들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지를 설명하려 했다. 〈대히피아스〉에서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제기하며, 〈소(小)히피아스〉에서는 '나쁜 행위는 비자발적인 행위'라는 역설을 다루고 있다.
〈이온 Ion〉은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불합리한 영감에
의존해서 창작하는 시인들에 대한 불신을 보여주고 있다. 〈메넥세노스〉는 애국심을 빙자해서 역사를 왜곡하는 자들을
비웃고 있다. 방법적 탐구의 전형을 보여주는 대화편들인 〈카르미데스 Charmides〉는 '절제'를, 〈라케스 Laches〉는 '용기'를, 〈리시스 Lysis〉는 '우정'을 다루고 있다.
〈크라틸로스 Cratylos〉에서는 단어들이 지시하는 대상과의 관계에서 의미를 갖는가, 아니면 관습에 의해서
의미를 갖는가 하는 문제를 고찰하고 있다. 플라톤은 언어가 사고의 도구이기 때문에, 그것의 정당성은 단순히 사회에서 통용되는 방식에서가 아니라,
사고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순수한 능력 면에서 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우티데모스 Euthydemos〉는
언어의 다의성을 악용해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논쟁가'들을 비웃고 있다(→ 논쟁술).
그러나 이 대화편의 참된 의도는 사물을 소유하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의 올바른 사용만이 행복을 약속한다는 소크라테스의 간절한 '권고'를
통해 무익한 논쟁들을 잘라버리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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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기아스〉는 수사술의
가치와 본성에 관한 탐구에서 시작한다. 삶을 지배하는 최고의 도덕성을 위해 필요한 것이 웅변술인지 아니면 논리적 능력인지의 논쟁으로 발전한 다음
올바른 혼의 소유자와 사악한 혼의 소유자가 갖는 영원한 운명을 그려 보이면서 끝을 맺는다. 고르기아스는 수사술이 '기술(techne)의
여왕'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소크라테스는 기술이 아니라 청중들의 비위만 맞추는 한갓 '기교'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혼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기술로는 입법가의 기술과 재판관의 기술이 있다. 쾌락을 선의 기준으로 생각함으로써 소피스트는
입법가처럼, 웅변가는 재판관처럼 가장한다. 웅변가는 국가의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라 아첨꾼일 뿐이다. 이 신랄한 비판에 대해 고르기아스를
지지하는 폴로스는, 성공한 웅변가는 실제로는 공동체의 독재자이며, 그런 사람만이 그가 좋아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행복의 정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반론을 편다.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반론을 "부당함을 감수하는 일도 나쁘지만, 고통을 가하는 일은 더욱 나쁘다"라는
역설로써 거부한다. 만일 수사술이 실제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범죄자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수사술을 이용해서 재판관의
마음을 돌리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극단적인 비도덕주의자인 칼리클레스가 이제까지의 주장을 모두 부정한다.
대중의 관습에서는 사람들을 해치는 것이 나쁜 일일지 모르나, '자연의 관습'에서는 힘센 자들이 그가 바라는 대로 힘을 사용하는 것은 정당하며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제국주의적 민주주의를 만든 사람들이 참된 정치가, 즉
민주주의를 보살피는 의사가 아니라 그들의 입맛대로 민주주의를 요리하는 하인들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밑빠진 독에 물을 채우라는 영원한 벌을
받은 신화의 주인공들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행복한 삶은 욕구의 끊임없는 충족이 아니라, 정의와 절제로 조절된 욕구의 적정한
만족에 있는 것이다.
〈메논 Menon〉에서는 훌륭함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탐구의 주제에 관해 무지하다면, 그가 그것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알아볼 수 없을
것이며, 반면에 그것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알려고 하는 것이므로 탐구 자체가 쓸데없는 일이 된다"라는 메논의 역설은
훌륭함에 관한 탐구의 가능성마저 위협한다.
그러나 만일 혼이 사멸하지 않는 것이며, 오래 전에 진리를 모두 배웠기 때문에 이제 진리들을 다시
기억해내는 일만 필요하다면, 메논의 역설로 인한 어려움은 사라질 것이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소크라테스는 기하학을 배운 적이 없는 노예 소년이
수학적 진리들을 인식하기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노예 소년은 '그 자신으로부터' 정답을 이끌어낸다. 결국 지식은 '상기'(想起 anamnesis)이다. 그런 다음 소크라테스는 훌륭함이
지식(episteme)이라고 주장하고, 그것이 가르칠 수 있는 것임을 추론한다. 그러나 아니토스가
등장해서 "훌륭함을 가르치는 전문가라고 자칭한 소피스트들은 공동체를 해치는 사기꾼이며,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그 훌륭함을 자기 자식에게
가르칠 수는 없었다"라고 주장한다. 〈메논〉은 지식과 참된 믿음(alethes doxa)을 구별하고, 훌륭함은 교육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의
선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암시하면서 끝난다.
〈프로타고라스〉에서는 유명한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가 등장하여
자신의 직업이 '훌륭함을 가르치는 일', 즉 개인의 삶과 국가를 성공으로 이끄는 기술을 가르친다고 말한다. 반면에 소크라테스는 사는 것을 가르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이어서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여러 가지 훌륭함들은 실제로 서로 다른 것들인가 아니면 그 모두가 하나의 동일한 것인가 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프로타고라스는 훌륭함은 지혜와 동일시할 수 있지만 용기의 경우만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용기있는 자의
훌륭함이란 고통과 위험에 직면해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사실에 있으며, 따라서 모든 훌륭함이 쾌락과 고통의
신중한 헤아림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여기에 "아무도 나쁜 행위를 원해서 하지는 않는다"라는 소크라테스의 2번째 '역설'이
있다. 즉 나쁜 행위는 잘못 헤아린 결과이다. 소크라테스가 쾌락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 대화편의 방법적(독자들을 궁지로
몰아넣는) 특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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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인간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합리적인 도덕적 인격을 발전시키는 것이며, 이러한
발전이 인간의 궁극적 행복을 달성하기 위한 열쇠라고 주장한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참된 선을 이성으로 통찰해야만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선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고 있다면, 그는 그것 이외의 어떤 것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훌륭함은 지식이다". 따라서 절대
선에 대한 확실한 통찰을 성취한 철학자만이 진정한 정치가이다. 이러한 도덕적 확신의 형이상학적 기초와 정당성을 제공하는 원리들은 〈파이돈〉에서
분명히 개진되고 있다.
〈파이돈〉에서는 영혼불멸에
대한 믿음이, 우주의
구조에 관한 합리적 실마리를 제공하는 형상이론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파이돈〉은 죽은 뒤에도 영혼은
살아남는다는 생각을 정당화시키는 4개의 논증을 펼치고 있다. 첫째, 영혼은 끊임없는 삶들의 연속이다. 왜냐하면 자연의 과정은 순환적이며, 이
순환성은 삶과 죽음의
경우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만일 죽어가는 과정이 되돌릴 수 없는 것이라면, 삶은 결국 우주로부터 사라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배움은
상기다'라는 이론은 영혼의 삶이 육체로부터 독립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셋째, 영혼이 영원불변의 형상들을 관상한다면 영혼은 그것들과 같은
종류의 것임에 틀림없고, 따라서 영혼은 불멸한다. 넷째, 소크라테스는 형상을 존재와 변화의 원인으로 제시한다. 어떤 것이 뜨거워지는 것은 그것이
뜨거움(형상)에 관여할 때이다. 즉 그것에 뜨거움을 가져오는 불에 관여할 때이다. 불이 뜨거움을 가져온다면, 불은 뜨거움의 대립자인 차가움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삶에 관여할 때, 즉 인간에게 삶을 가져다주는 영혼을 가질 때 살아 있게 된다. 영혼이 삶을 가져오므로,
영혼은 삶의 대립자인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고, 따라서 영혼은 불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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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연〉의 주목적은 영원한 대우주의 아름다움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신비적 영감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가장 고귀한 사랑(ers)의 현시를 발견하려는 것이다. 사랑은 혼이 좋은 것(선)에 이르려는 욕구이며, 그 대상은 영원한 아름다움이다. 그것의 소박한
형태라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에 대한 사랑은 그 사람의 자식을 통해 불멸성을 획득하려는 열정이다. 정신적인 사랑은 동지애로 결합함으로써
건전한 삶을 위한 제도와 규칙들을 생산하려는 열망이다. 더욱 정신적으로 발전한 사랑은 지적인 대화를 통해 철학과 과학을 살찌우는 노력이다.
이러한 노력을 끊임없이 추구해나가면, 어느 순간 이제까지의 모든 아름다움들의 원인과 원천이 되는 최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철학자의
길은 최고의 형상, 즉 선의 형상을 통찰함으로써 정점에 이른다.
〈파이드로스〉의 주제는 어떻게 참된 수사술이 논리적인 방법과
인간의 열정에 대한 과학적 연구라는 이중의 기초 위에 세워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러나 플라톤은 이 주제를 사랑에 관한 심리학적 논의에
결부시킨 다음, 형상들을 초월적 감정 또는 신비적 관상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육체에서 벗어난 상태의
영혼은 형상들을 직접 관상할 수 있지만, 감각 경험은 '사랑에 빠짐'이라는 경이로운 방식에 의해 아름다움의 형상을 암시할 수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불합리하고 미친 듯한 상태는 영혼의 날개가 다시 자라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이것은 영혼이 자신의 지위를 되찾는 첫 단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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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서 직접 다루는 것은 '올바름(正義 [dikaiosyne])이란 무엇인가?', '올바름은
올바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가?' 같은 윤리적 문제이다(→ 정의).
올바름은 전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부분들이 자신의 고유한 기능을 수행하고 다른 부분의 기능에 간섭하지 않을 때 이루어지는 조화이다(→ 규범윤리학).
개인의 올바름은 그의 혼을 이루는 3부분, 즉 이성·욕구·기개(의지) 등이 저마다 제기능을 수행할 때 나타난다. 공동체의 올바름은 구성원들
모두가 자신에게 할당된 역할을 수행할 때 나타난다. 특히 개인에서는 이성이, 공동체에서는 선의 형상을 통찰한 철학자가 지배할 때 조화가
달성된다. 〈국가〉에서는 '3가지 삶의 방식(역할)', 즉 지혜를 추구하는 철학자, 욕구의 충족을 바라는 자, 현실적인 문제들을 처리하는
활동가의 삶을 구별하고 있다(→ 인간).
이 구별은 개인의 3가지 요소(또는 활동원리), 즉 선에 대한 이성적 판단, 특수한 만족을 추구하는 욕구들의 충돌, 타인이나 자신의 욕구에
대항하는 기개를 반영한다.
플라톤은 이러한 삼분법을 적용해 시민을 3계층,
즉 통치자·생산자·군인으로 나눔으로써 올바른 사회의 구조를 규정하려 한다. 이 질서는 이성적·욕구적·기개적 요소 등에 상응하며, 지혜·절제·용기
등은 그들에게서 각기 중요한 덕목이 된다. 이러한 계층의 구별은 출신이나 부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제공한 교육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시험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영혼에서 어느 부분이 더 우세한가에 따라 그가 속할 계층이 결정된다. 이러한
국가가 올바른 까닭은 각 구성원들이 제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자신의 한계 내에서 활동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를 일컬어 최선자
정체(aristocracy)라 한다. 플라톤은 이 이상적 형태에서 타락한 것들로서 참주제·과두제·민주제
등을 들고 있다.
철인 통치자를 육성하기 위한 교육은 선의 형상을 통찰하기에 이를 때까지 장기간의 엄격한 훈련과정을
거친다. 그것은 정확한 과학에서부터 형이상학적 원리에 이르는 과정으로, 처음 10년 동안은 정확한
과학들(산수·평면기하학·입체기하학·천문학·화성학)을 학습함으로써 추론적 사고력을 기른다. 그다음 5년 동안 '변증술'(dialektike)을
수련한다. 변증술은 어원상 질문하고 대답하는 대화의 기술을 뜻한다. 플라톤에 따르면 변증술은 사물의 본질에 관해 질문하고 대답하는 능력이다.
변증술에 능한 사람은 가정(hypothesis)을 확실한 지식으로 대체한다. 플라톤의 목적은 '가정 없는 제1원리' 위에서 모든 학문, 즉 모든
지식의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 원리는 선의 형상이다. 선의 형상은 태양이 가시적인 사물들에 관계하듯이, 모든 사물들의 실재성의 원천이자
그것들의 가치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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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돈〉이나 〈국가〉에서는 아직 사실의 진리들, 즉 자연 세계에 관한 진리들이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테아이테토스〉에 이르러 플라톤은 사물과 형상 사이의 관계(관여[methexis])를 더 깊이 해명할 필요를
인식하고, 자신의 사상체계를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 대화편들은 엘레아
학파의 철학에 관심을 기울인다. 〈파르메니데스〉의 전반부에서 젊은 소크라테스는 '하나와
여럿'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관여설을 제안한다. 파르메니데스는 해결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반론을 제기하고,
소크라테스가 궁지에 빠진 것은 논리의 불충분한 훈련 때문이라고 암시한다. 관여설에 대한 엘레아 학파의 반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관여설은
무한소급의 오류에 빠지기 때문에 단일성과 다수성을 양립시키지 못한다. 관여설에 의하면 다수의 사물들이 하나의 술어를 갖는 것은 그것들이 하나의 형상에 관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형상 자체도 하나의 술어를 갖기
때문에, 사물이 형상에 관여하듯이 형상은 또다른 형상에 관여할 수밖에 없으므로 무한소급에 빠진다. 둘째, 형상들 사이의 관계는 형상들의 영역에
속하고, 사물들 사이의 관계는 사물들의 영역에 속한다. 따라서 후자의 영역에 속하는 인간들은 형상들을 인식할 수 없다.
〈테아이테토스〉의 주제는 지식의
정의(definition)에 관한 문제이다. 먼저 프로타고라스와 헤라클레이토스의 견해를 끌어들여 '지식은 지각이다'라는
명제를 고찰한다. 이 명제는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지각하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확실성을 갖고 말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없다는 주장을
함축한다. 이에 반하여 플라톤은 혼이 신체기관을 통해 지각한 것과, 혼 자체가 파악한 것(수·동일성·존재 등)의 사이를 구별한 다음, 지식은
진리와 존재를 함축하기 때문에, 존재를 파악할 수 없는 지각을 지식과 동일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어서 플라톤은 '지식은 참된 믿음이다'라는
명제의 부적합성을 논박한 뒤, '지식은 로고스를 동반한 참된 믿음이다'라는 명제를 분석한다. 그러나 로고스
개념의 다의성 때문에 이러한 정의도 충분하지 못함을 보여주면서 결론 없이 끝난다. 이 대화편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형상 이론이나 신화적인
상기설을 끌어들이지 않고 지식의 문제를 충분히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인식론).
후기 대화편들 〈소피스테스〉·〈정치가〉는 형식적으로는 정의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소피스테스〉의 실제 의도는 논리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문제들을 설명함으로써, 논리학의
기초를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반면에 〈정치가〉의 목적은 특정 개인(들)에 의한 통치와 법에
의한 통치의 장점들을 비교함으로써, 정치론의 기초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두 대화편의 목적은 과학적 정의의 기초로서 체계적인 분류의
중요성을 예시하는 것이다.
〈소피스테스〉에서 제기하는 부정 술어(is not)의 문제는 "거짓은 '없는 것'을 의미하며, 없는 것은 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므로 언급할
수도 사유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은 절대적 비존재와 상대적 비존재를 구별함으로써 파르메니데스의 일원론을 논박한다. 즉 'A는
B가 아니다'라는 것은 A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 A가 B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재성의 보편적 특성들인 운동과 정지라는
'유적 형상'에서 운동은 정지와 다른 종류의 것이지 운동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변증술의 참된 과제는 형상들 자체의 연관된
체계를 다루는 것이다. 〈필레보스〉에서는 선을 쾌락과 동일시할 수 있는가 아니면 지혜와 동일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룬다. 그리고 가장 좋은 삶은 두 요소를 모두 포함해야 하지만, 지혜가 더 중요하다고 결론짓는다. 이 대화편의 철학적 의의는 쾌락과
지혜의 형식적 성격을 규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분류' 방식에 있다(→ 쾌락주의).
플라톤은 실재하는 모든 것이 비한정자, 한도, 비한정자와 한도의 혼화, 혼화의 원인이라는 4가지 부류의 하나에 속하며, 삶에 있어서 가장 좋은
것들은 3번째 부류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티마이오스〉는 우주론에
관한 설명으로써 신이
영원한 형상을 본떠 이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기술하고 있다. 이 대화편의 특징은 첫째, 플라톤이 물질에 관해 구조적으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즉 피타고라스의 기하학을
도입하여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흙·공기·불·물)의 구조를 정6면체·정4면체·정8면체·정20면체로 설명한다. 둘째, 신을 생성계의 모든 질서와
구조의 지성적 원인인 '장인'(匠人 demiourgos)으로 소개한다. 셋째, 자연과학이 갖는 가설적 성격을 강조한다. 넷째, 우주가 합리적
질서를 갖는다는 사실은 데미우르고스의
활동에 의해 보장되지만, 물질적 필연성(anank)의 힘이
이성의 범위와 효력을 제한한다고 생각했다. 〈법률〉은 가장 긴 대화편으로써
윤리·교육·법 그리고 신에 관한 플라톤의 완숙한 사상을 담고 있다. 이 대화편의 주목적은 〈국가〉에서처럼
이상적인 국가의 건립이 아니라, 현존하는 도시국가들이 채택할 수 있는 헌법 및 법률 제정의 틀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사변적 철학과 과학은
배제되며, 형이상학적 논의는 도덕적 신학의 기초를 제공하는 한에서만 거론된다. 반면에 정치와 법의 문제에 관해서는 이례적으로 풍부한 논의를 담고
있으며, 로마
법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그외에도 〈법률〉에서 행하는 무신론에 대한 반론은 이성에 의해서 엄격하게 논증될 수
있는 신학적
진리가 있다는 견해, 즉 철학적 신학 혹은 자연신학의 창시자로서 플라톤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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