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대한민국 探訪

송광사

鶴山 徐 仁 2006. 1. 15. 15:36



▲ 송광사 들어가는 입구인 우화각의 아름다운 모습
ⓒ2004 서정일
승보사찰 송광사를 방문하려면 건너야 하는 다리가 있다. 일명 능허교라 불리는 우화각.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이 송광사를 방문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건너야 할 첫 관문이자 아치형의 수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송광사의 얼굴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만을 보고 다리를 건너는 관광객이 있다면 방문 첫 시작부터 송광사 불사가 하나 하나 지어질 때의 의미 있는 이야기를 놓치게 된다. 다름 아닌 우화각 아래 가느다란 철사줄로 매어진 엽전 석 냥이 품고 있는 큰 의미 때문이다.



사실 다리의 웅장한 모습에 비해 너무 하찮고 작아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그게 뭔지조차 모르고 지날 정도. 이렇듯 우화각의 엽전 석 냥은 너무 연약해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는 흡사 풍경과 같은 모습이지만 여느 흔하디 흔한 엽전은 아니다.



▲ 우화각 아래 용머리에 매달려 있는 엽전 석 냥
ⓒ2004 서정일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얘기인데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겠군요"하고 말문을 여는 해명스님. 우화각 아래에 매달려 있는 엽전을 유심히도 살펴봤군, 하는 표정으로 궁금해 하는 게 신기하다는 듯 차분한 어조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송광사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절은 화주에 의해 지어집니다. 불자들이 한 푼 두 푼 보시한 것으로 지어진다는 얘기입니다."



불가에서 사용하는 단어들로 혼란스러웠지만 질문을 늦출 수밖에 없었다. 늦은 시간 방문이었고 질문으로 얘기가 길어질 것을 걱정해서였다. 어서 엽전 석 냥의 의미가 나오기만을 기원할 뿐.



"우리 불가에선 호용제라는 게 있습니다. 화주 그러니까 공적인 돈은 다른 목적에 사용할 수 없다는 거죠, 여기 보이는 범종을 불사할 때도 철저히 지켰습니다. 우화각을 불사할 때도 마찬가지였지요. 하다못해 등불을 켜고자 등잔에 기름을 부을 때도 사적인 등잔을 공적인 등잔 위에 놓고 기름을 부었습니다. 행여 기름을 잘못 붓거나 기름이 넘치면 공적인 등잔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이죠."



여기까지 얘기하고 잠시 뭔가를 생각한 듯 우화각 쪽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우화각이 멋스럽습니까? 저 아래에 매달려 있는 엽전 석 냥이 멋스럽습니까?"하고 엉뚱하리만치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갑작스런 질문이었다. 잠시 머뭇거리자 스님은 말했다.



"저 엽전 석 냥은 우화각을 불사할 때 남은 돈입니다. 만약 우화각을 고치거나 다시 지을 때 보태서 사용되어질 불자들의 돈입니다. 우화각 아래 용머리에 매달려 있는 것은 돈이 아닙니다. 마음입니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 말을 끝으로 성불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해명스님은 자리를 떠났다.



아직 질문이 남아 있는데 하는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스님"하고 나지막하게 불렀지만 스님은 법당 안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간단하면서 간단하지 않은 얘기들을 남긴 채….



차츰 어둠이 깔리는 경내를 뒤로 하고 오던 길을 돌아 다시 우화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우화각 위에서 한참 서 있었다. "우화각이 멋스럽습니까? 저 아래 매달려 있는 엽전 석 냥이 멋스럽습니까?"하는 말을 생각하면서 다시 한번 엽전을 바라봤다.



투명하고 맑게 일을 처리하고 남은 돈을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매달아 놓은 그 마음에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해명스님의 말처럼 우화각 아래의 엽전 석 냥은 우화각보다 더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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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속장경 발견]고려 속장경 사업 베일 걷어낼 단서


전남 순천시 송광사 천왕문에 있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의 복장(腹藏·불상 내부에 넣은 경전이나 사리)으로 발견된 속장경은 고려 문종 때 속장경 발간사업의 규모를 밝힐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속장경은 11세기 후반 고려 문종 때 대각국사 의천이 대장경 제작시 누락된 중국 일본 티베트의 경전들을 모아 간행한 것. 그러나 4000여권에 이르는 목록(교장총록·敎藏總錄)만 있으며 현존본이 희귀해 속장경 발간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다. 조선시대 세조가 간경도감을 설치해 당시 남아 있던 속장경을 다시 간행했으나 그 역시 현존본이 드문 처지다.



불교계는 이번 발견으로 고려 때 속장경 간행이 비교적 큰 규모로 이뤄졌을 것으로 추론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발견된 속장경 중 ‘인왕호국반야경소법형초(仁王護國般若經疏法衡抄)’에는 금산사(전북 김제시)가 속장경의 제작을 지원했다는 소현(韶顯) 스님의 후기가 담겨 있어 당시 속장경 간행이 매우 광범위하게 이뤄졌음을 입증하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속장경은 하마터면 빛을 보지 못할 뻔했다. 천왕문 수리 과정에 장애가 되는 사천왕상을 헐어버리려 했다가 이 사천왕상이 조선 초기의 양식이라는 견해에 따라 복장을 확인한 끝에 귀중한 유물을 건지게 됐다.



중앙대 문헌정보학과 송일기 교수는 “대웅전 불상 안에서 희귀 유물이 나온 적은 많지만 사천왕상에서 나온 사례는 매우 드물다”고 밝혔다.



이번 속장경의 발견으로 송광사 사천왕상이 15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사실도 밝혀져 현재 제작 연대가 알려진 사천왕상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까지는 전남 장흥군 보림사 사천왕상이 16세기 초(1515년)에 만들어져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송광사는 22, 23일 이번에 발견된 속장경의 의미와 내용을 규명하는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고 상태가 좋은 일부 속장경을 공개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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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상 복장에서 발견된 희귀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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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대웅보전 겹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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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木造三尊佛龕(목조삼존불감)


지정번호 : 국보 제42호

소 유 자 : 송광사

소 재 지 :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12

규 모 : 높이 13.9㎝

재료 / 판식: 목재

시 대 : 중국 당(唐)

지정연월일 : 1962년 12월 20일



송광사 전래 유물 중 작은 크기이며, 그 조각기법이나 구조양식으로 보아 다분히 이국적인 취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원래 이 불감(佛龕)은 송광사의 16국사 중 제1세(第一世)이며 수선사(修禪社)의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일으켰던 보조국사께서 중국 금(金)에서 귀국할 때 호지(護持)했던 것이라고 구전되어 오고 있으나 그에 대한 확실한 내용은 알 수가 없다.



목조로 된 전개식 삼면(展開式 三面)으로 닫으면 원통형이 되고 열면 중앙 반원부에 자리잡은 본존과 그 좌우에 협시(脇侍)보살 1구씩이 배치되어 있다. 중앙 본존불은 여래좌상으로 상현좌(裳懸座) 위에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전신광배(全身光背)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 좌우로는 합장을 한 승상과 보살, 동자상, 시자상 등을 시좌시켰다. 본존상의 수인은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취하고 왼손은 무릎 위에 법구를 들고 있다. 천개(天蓋)로는 막을 걷어올려 묶어놓은 듯한 장식과 그 위로 연주문(連珠紋)의 띠를 두르고 밑으로는 안상과 같은 끝이 뾰족한 연화형을 조금(彫錦)하였는데 정상에는 화불의 광배를 조각하였다. 불단 아래는 고사리형 초문을 크게 투각(透刻)했는데, 그 끝이 중앙불단과 연결되게 하여 섬세한 솜씨를 엿보이고 있다.



좌우의 보살상은 각각 코끼리와 사자 위에 앉은 좌상으로 손에는 지물(持物)을 들고 있다. 또 좌우로 대칭이 되게 각기 협시보살(脇侍菩薩)이 배치되고 있는데, 그 몸짓이나 표정이 매우 관능적이며 특히 중앙에서 X자형의 의문(衣紋)이 주목된다. 그 하단으로는 동자상과 보살이 의자에 걸터 앉거나 혹은 입상으로 배치되었는데 특히 우측의 협시는 그의 앉아있는 모습이 앞에서와 같이 매우 육감적이며 관능미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통일신라 시대의 금동불의 양식에서 볼 수 있는 예이다. 천개로는 역시 난간을 두고 그 위로는 비천상(飛天像) 또는 화불 등을 투각하여 장식미를 더했다.


이 목조삼존불감은 이상과 같은 정밀한 기법과 양식, 그리고 불보살상(佛菩薩像)의 상호(相好) 등에서 중국과 인도풍의 분위기를 풍겨주고 있어 국내에 유존된 불감류로서는 매우 희귀한 예라 하겠다.






2. 高麗 高宗制書(고려 고종제서)


지정번호 : 국보 제43호

소 유 자 : 송광사

소 재 지 :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규 모 : 세로 33㎝, 가로 360㎝(1축)

재료 / 판식: 종이

시 대 : 고려 고종 3년(1216)

지정연월일 : 1962년 12월 20일


이 제서(制書)는 능형화문(菱形花紋)을 나탄낸 홍, 황, 백 등의 색릉(色綾) 일곱장을 이어서 만든 두루말이에 묵서한 것으로 혜심 대선사 고신(大禪師 告身)이라고도 한다. 그 내용은 고려 고종이 조계산 제2세 진각국사 혜심(1178~1234)에게 대선사(大禪師)의 호를 하사(下賜)한 제서(制書)이다.


혜심은 화순현 사람으로 속성은 최씨이며 자는 영을(永乙), 호는 무의자(無衣子)이다. 최홍윤 이하 당시의 직사봉행(職事奉行)의 질(帙)을 열기하고 있으며 “정우4년 정월일(貞祐四年 正月日)”의 간기(刊記)가 있다. 정우 4년은 고종 3년(1216)이다. 보존 상태가 좋지 못하여 비단의 일부가 떨어지고 글자도 보이지 않는 곳이 있어 전문을 판독할 수 없음이 유감이나 고려시대 고문서로 귀중한 것이다. 고려시대 승정(僧政)이 일반 관인의 교지(官誥)와 같은 원리로 시행된 사례는 ꡔ동국이상국집ꡕ에도 실려 있으나 이 문서를 통하여 구체적인 사례를 입증할 수 있게 되었다. 순한문으로 된 고신(告身)문서로는 가장 오래된 1차 자료이다. 제서(또는 敎書)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관작․자격․시호(諡號)․토지․노비․특전 등을 내려줄 때 쓰는 문서로 이 가운데 년신은 관료에게 관직이나 관작을 내려주는 사령장으로 고려시대에는 제서, 조선시대에는 왕지(王旨)․관교(官敎)라했다.


ꡔ대승선종 조계산 송광사지ꡕ(송광사, 임석진, 1965), 「송광사의 고려문서」(임창순 ꡔ백산학보ꡕ 11), ꡔ한국중세사회사자료집ꡕ(허흥식, 1976), ꡔ조계산송광사사고ꡕ(1977), ꡔ한국상대고문서집성ꡕ(이기백, 1987), 「혜심의 대선사고신에대한 검토」(장동익, ꡔ한국사연구ꡕ 34) 등이 참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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