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 Francisco de Goya 1846- 1828) 는 16세때 화가로나선 이래로 로코코
양식의 걸작을 남긴 스페인 거장화가입니다, 그의 전체적인 바이오그라피는 일전에 소개한 적이 있어 생략하지만, 그는 베토벤처럼 46세에 귀머거리가 된 이후에 절정기의 작품을 남겼으며 오늘은 그가 원인모를 두통으로 청력을 앓을 즈음에 (추측컨데 청신경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린 그의 걸작 그림을 두점을 소개합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 여기에 소개한 그림 "옷을 입은 마하"와 "옷을 벗은 마하"는 같은 주제를 같은 모델을 통해서 그린 작품입니다, 일견하기에도 옷을 벗은 마하는 옷을 입은 마하를 그린 후에 모델이 그자리에서 옷을 벗고 다시 그린 그림입니다, 이 그림이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각별합니다, 일단 역사적으로 이 그림이 서양미술의 최초의 누드화였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벗은 여인을 그린 작품은 많았지만, 예전에 말씀드린대로 서양미술에서 누드를 그리는 방식은 신화나, 성서의 이야기를 차용하여, 교훈을 남기는 식으로 허용되었지, 실물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때문에 중세작가들은 대부분 귀족들의 천박한 취향을 만족 시켜주기 위해,주로 그리스 신화의 에로틱한 주제를 차용하는 형식으로 그림을 그렸고, 따라서 비너스를 주제로 한 작품이 대종을 이루게 됩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러나 고야는 대담하게도 스페인의 귀족인 알바공작부인을 모델로 한 실물 누드를 그렸습니다, 이것은 미술사에서도 획기적인 사건이기도 했지만,스페인 자체에서도 사회적으로 커다란 문제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알바공작부인이 죽은지 20년만에 그녀의 무덤을 파헤치는 일이 벌어졌으며( 시중의 마하 그림이 알바 부인이라는 설을 불식시키기위해,,), 실제 알바 부인의 주검과 고야의 그림에 나타난 마하의 골격이 유사하다,아니다라는 논쟁으로 7년간의 재판이 열리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스페인 재상인 마누엘 고도이의 애인인 "페피타 츠도우"라는 설도 있습니다, 그러한 설은 고도이가 이작품의 최종 소장자였다는 사실에서 유래하였고, 또 이 그림이 "츠도우"와 닮아있어, 고도이의 의뢰로 고야가 그의 애인의 누드를 그려주었고, 고도이는 그림의 앞쪽은 옷입은 마하로, 뒤쪽은 옷벗은 마하로 붙인다음, 한쪽을 툭 치면 그림이 뒤로 돌면서 손님이 오면 옷입은 장면을, 혼자서는 옷을 벗은 장면을 나타내었다는 이야기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굳이 이러한 야사를 소개하는 이유는 그만큼 고야가 선구적인 화가였기도하지만, 얼마나 동시대의 사람들이 위선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 그림은 사실 누드라기 보다는 네이키드입니다, 즉 누드는 어떤 벗은 모습을 화가의 작품성으로 가공한,혹은 화가의 이미지가 개입된 그림이지만, 네이키드는 눈에 비쳐지는 상을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 옷을 벗은 마하는 당당하고 도도합니다, 그림의 주인공 마하는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모습이란것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도발적이지만 당당합니다, 특히 그녀의 젓가슴이 옆으로 누워있음에도 좌우가 다른방향으로 위치해있고, 그녀의 목은 마치 몸체와 머리를 따로 그려 이어붙인것 처럼 부자연스럽습니다, 대화가인 고야가 그런 실수를 할 리가 없고, 또 구도상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리가 없지만, 그는 그림에서 이러한 부자연스러움을 그대로 남깁니다, 물론 일부 미술사가들은 원래 공작부인을 그렸다가 문제가 되자 얼굴만 "츠도우"의 얼굴로 고쳐 그렸기 때문이라는 설을 제기하고 있지만, 스페인의 혁명의 시대에 주류에 당당히 저항하고, 굽히지 않았던 고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렇다면,, 저 부자연스러운 그림 옷을 벗은 마하를 통해서 고야는 무엇을 보여주려하였을까,, 솜털마져 생생한 사실적인 그림에서, 부자연스러운 구도를 채택한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끊임없이 의문이 떠오르게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작품의 매력입니다, 강력하고 단호한 카톨릭국가 스페인에서 과감히 옷을 벗어던진 마하( 알바 부인이던, 츠도우이던,,)는 무엇을 말하려던 것일까? .. 그리고 섬세한 묘사를 채택하면서도 부자연스러운 구도를 취한 고야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이 문제를 이글을 읽는 분들에게 질문으로 남깁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첨부한 음악은 안토니오 비발디의 " Concerto for Cello in D Major OP.3 No.9 RV230 from "Lestro armonico" 의 제 2악장 라르게토 입니다, 연주는 프랑스출신의 첼로주자 Maurice Marechal ( 1929-1943) 입니다, 모노럴로 녹음된 연주도 훌륭하지만 상당히 희귀본 음반입니다, 비발디의 음악에 대한 소개는 라운지의 1349번 mediocre 님의 글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어, 허락없이 mediocre님의 글을 옮깁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당신이 비발디를 아시나요? 사실 비발디의 그 아름다운 음악들이 바하가 아니였다면, 영원히 우리에게 소개되지 못했을 수 있다는걸 생각해보면,,, 음악의 아버지...바하..고맙다. 참. 최초에 비발디의 작품이 세상 사람의 눈에 띄게 된것은, 바하의 장서에서 그의 악보가 나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하는 동시대를 살았던 비발디의 아름다운 재능을 알아보았고, 그의 협주곡을 편곡하여 세상에 발표하여, 비발디의 합주 협주곡과 독주 협주곡들은 바하와 바하의 후계자들에 의해서 계승되었다고 한다. 비발디는 아름다운 도시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음악교육을 받았고 25살이 되던해 사제가 되어 다음해, 고아를 위한 여자음악학교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에서 봉직을 맡았다. 그후 비발디는 그곳의 음악감독이 되어 30년이 넘도록 조용한 그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성악 기악 그밖의 모든 음악을 연구하고, 또 너무나 많은 곡들을 작곡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현재 대부분 손실되었다고 전해 지는데, 보존되어 남아있는 것만을 보아도 400곡이 넘는 관현악 합주, 합주 협주곡이 50여곡, 12곡의 트리오 소나타와 독주 소나타, 50여곡의 오페라에 대단히 많은 수의 교회음악 까지...그렇다면 평생 도대체 얼마나 많은 곡들을 쓴것일까...? 바하나 헨델 북스테우데 베토벤 모짜르트...다른 여타의 또 다른 위대한 작곡가들과는 달리, 비발디는 생계를 위해서 작곡을 해야 하는 일이 없었으며, 살기위해 정치와 타협할 필요도 없었다. 평생동안 아이들을 가르치고, 음악을 연구하고, 작곡을 통해서 신을 찬양하며 순수한 목적으로 작곡되었기 때문일까? 그의 곡들은 너무나 깨끗하고 밝고 청명하고 아름다와서 플레이가 돌아가는 그 첫순간, 비발디의 그 향긋한 내음이 가득 내 몸에 퍼지는것이... 뭐랄까..한마디로..약발이 다르다...착한고 아름다운 노래들. 순간 내 몸과 마음까지 청량하게 해주는 곡들..그 어떤곡도 실망스러운 곡들이 없이 완성도가 높다. 그는 자기가 가르치는 고아들의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각지를 여행하며 연주 하였고 그 당시의 음악이 성행하는 곳에서라면 누구나 비발디와 그의 오케스트라 를 알았다고 한다. 지금도 씨디샵에가서 쭈욱 돌아보다 새로운 비발디의 씨디를 발견하면, 가슴이 뛴다...아...제발 주식들아 대박 좀 터져라... 저것들 좀 다 사서 들어보게.... 보장된 행복이 저렇게 내눈앞에서 내 손길을 기다리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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