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창밖은 눈이 시리도록 청명한 가을날입니다.
주말을 맞아 한국프랑스학회와 한국프랑스사학회의 공동총회에
참가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어요. 모처럼 쉬면서 편한 사람들과 만나는
즐거운 모임이 될 것 같습니다... 프랑스 포도주도 많이 마시고요... ^^
오늘의 주제는 '부르주아' 문화와 의식이예요.
제가 관심이 크므로 언젠가 블로그에서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는 유럽사진들을 살펴보니
제가 가장 짧은 시간 머물렀던 중부유럽의 도시 부다페스트가 눈에 띄네요.
부다페스트는 작년에 비엔나와 프라하 출장 중간에 하루 여유시간을 이용해서
잠시 다녀온 곳이고, 처음이자 꼭 한번 가본 곳이어서 잘 알지는 못합니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 대해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리 많지가 않았어요.
브람스의 헝가리언 무곡,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과
2차세계대전 전후에 부다페스트에 살던 유태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Gloomy Sunday, 그리고 오래전 잠시 친했던 헝가리의 엔지니어들의 기억...
그 친구들 이야기로는 언어나 문화, 생김새가 한국과도 관계가 있다고 했지만
그저 흘려들었을 뿐이지요... 그들과 함께 민속춤을 추던 기억만 남았네요.
작년 여름 비엔나 출장중에 남는 하루의 여유시간을 이용해서
이곳에 다녀오자고 주장을 했지만 뭐 크게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구 천만명 정도, 면적은 남한 면적과 비슷하니 상대적으로 공간이 넉넉할 것 같은
헝가리에 대한 저의 상상의 범위는 아래 우표들 정도??
넓은 들판이 펼쳐진 농업국, 구릉에는 포도밭이 많은 곳...
그리고 유럽 한복판 내륙에 있으면서도 스코트나 벨링, 쿠크 같은
외국의 해양탐험가들에게 관심 갖는 이상한 나라?
무엇보다 나라 이름을 스스로 마쟈르(Magyar)라고 부르는 곳...
유럽 내에서도 주로 비행기를 이용해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때 만큼은 비엔나에서 곧바로 버스편으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한때 오스트리아와 연합국이기도 했으니 이웃이라 생각했고요,
짐작했던 것처럼 헝가리 국경까지는 불과 1시간 남짓이 걸렸습니다.
국경에서는 여기 흔들린 사진처럼 제복을 입은 사람이 버스에 올라와서
여권을 한사람씩 펼쳐보았고요, 세관검사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국경 통과 후 환전소와 면세점이 있어서 약간의 현금을 환전했어요.
이미 EU 가입을 확정했고 몇년 후에는 화폐도 유로화로 바꾼다고 하지만
아직은 헝가리의 화폐 포린트화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헝가리 땅을 달립니다. 차창밖 풍경은 주변 유럽국과 별로 다르지 않지만
구릉보다는 평원이 많다는 느낌입니다. 저 노란꽃들은 유채밭일까요?
@.@ IKEA, Auchan, ... ??
부다페스트 시 외곽에 있는 하이퍼마켓은 프랑스의 여느 도시들과 똑같네요.
차 안에서 잠자다 깼다면 프랑스에 있는 것으로 착각할 뻔 했습니다.
교외의 대형 쇼핑센터 체인들은 아마 전 유럽이 비슷해져 가는 듯...
그리고 서민 주택단지도 눈에 익은 풍경입니다.
부다페스트 시내 도착, 의외로 현대식 건물도 많이 있기는 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유럽 곳곳의 조금 낡은 모습의 소도시들과 같았습니다.
지도를 보며 미리 연락해둔 안내자와 만날 장소를 찾아갔어요.
이곳저곳에서 받는 첫인상은 그저 미지의 소도시...
동유럽 시절의 통제가 조금 남아있어서 주요 건물마다 출입확인을 하지만
이제는 별다를 것이 없는 유럽의 한 지역이라는 느낌이었고요,
다행히 오래 걸리지 않아 시내 한복판에서 가이드해줄 사람과 만났습니다.
다음날 오전 비행기를 탈 때까지의 일정을 대략 설명하고 곧바로 관광안내를
부탁했어요, 교민 대표라네요, 현지에는 약 300명의 한국인이 있다하고요.
먼저 찾아간 곳은 겔레르트 언덕이라고 불리는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높은 곳입니다. 다뉴브 강변 부다 쪽의 언덕길을 돌아 올라가서
첫번째 전망대에서 내렸습니다.
와아, 경치가 근사하더라구요...
멀리 마가레트(?) 섬에서부터, 강변에 아름답게 보이는 국회의사당, 세체니다리,
그리고 바로 앞 부다 언덕에 펼쳐진 거대한 왕궁의 녹색 지붕...
천천히 언덕을 산책하며 중간중간 다뉴브강과 시가지를 바라봅니다.
강변의 붉은 지붕 건물들이 아름답게 정돈된 모습이네요...
그리고 왠지 프랑스 리용(론 강변)과 매우 닮음꼴이고요.
그래서인지 동서 냉전시절에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주로 스파이 영화)들을
리용에서 촬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조금 더 걸어 올라가니 남쪽을 바라보는 곳에 커다란 동상이 있네요.
마치 예전에 초중고 학습참고서 표지 같은 곳에 나오는 청동상...
무언가 전진, 운동, 선동의 이미지를 전해주는 생경한 느낌의 조각인 것 같습니다.
전망대 아래로는 여전히 아름다운 시가지가 펼쳐지고요, 나무에 가리고 역광이어서
사진으로 담지 못했지만 넓은 포도밭 구릉도 이어지는 곳이예요...
그리고 주변은 온천으로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부다페스트 관광을 가셨던 분들은
온천욕을 하고 오신 분들이 많더군요, 오래전부터 이름있는 온천지대라네요.
하지만 이곳, 겔레르트 언덕에서도 가장 높은 쪽에 있는 주 전망대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이 동상들입니다.
예전에 '해방기념 동상'이라 불리웠고 현재는 '자유의 동상'이라 부르는...
상당히 높이 솟은(14m) 승리의 월계수 잎을 받쳐들고 있는 동상은
이곳 부다페스트가 1945년 소련에 의해 독일로부터 해방된 것을 상징합니다.
이 동상들의 의미를 알고 왠지 마음이 좀 불편해졌습니다.
우리의 1945년 8월의 '해방'을 떠올렸지요...
페스트 지역은 1945년 1월 18일에 해방이 되었고, 부다 지역은 독일군의 저항 때문에
약 한달 후에야 해방이 되었다고 하네요. 독일군이 헝가리 영토를 완전히 빠져나갈 때까지는 좀더 시간이 걸렸구요...
Gloomy Sunday라는 영화에서도 잠시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자유의 동상 발 밑 양 옆에 있는 기념물은 전진과 재건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1990년 동유럽의 개방과 함께 이 기념물들을 제거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리고 1944-45년을 해방으로 생각할 것인가 소련의 점령이라 간주할 것인가
많은 토론이 있었지만 결국 이곳 동상들은 그대로 두고 바로 앞에 있었던
소련군 모습만 제거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기념물은 '자유의 동상'으로 이름이 바뀌었고요...
자유는 거저 얻어지는게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말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강변을 바라보며 치타델라 요새까지 다시 걸어서 겔레르트 언덕을 산책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아름다운 도시로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불과 10여년 전까지 우리가 접근할 수 없었던 곳이고, 역사 속에 수많은 부침이 있었지만...
가까운 20세기에도 우리와 비슷한 아픔을 겪은 적이 있는 곳이라는 점을 새삼 알게 되었고
갑자기 예전에 헝가리 친구들이 했던 이야기들이 생각났어요.
동방의 훈족의 말발굽 아래 있었던 땅에 유목민 마쟈르인들이 나라를 세웠지만
징기스칸 시대의 정복으로 언어와 문화, 그리고 인종까지 극동아시아와 교류했었고
이후에도 끊임없이 터키, 오스트리아, 독일, 러시아 등 외세의 영향을 받았지만
자유를 쟁취할 때까지 싸웠노라고...
헝가리의 정신과 문화는 포용력이 크고 한편 자부심도 강하다고...
치타델라 요새의 군사시설 유적들은 이제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 것 같습니다.
이 요새는 1851년 헝가리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오스트리아인들이
그들 힘의 상징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건축가는 헝가리인이었지만요...
19세기말 두꺼운 성벽의 일부가 붕괴되어서 이 요새는 더이상 군사적으로 사용 할 수
없게 되었어도 전망이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나온다고 하네요.
치타델라 요새 입구의 안내표지판과 관광버스가 산뜻하고 예뻤습니다.
전에 다른 글에서 유럽의 관광버스를 소개(http://blog.daum.net/isabelle/2840121)한 적이
있었지요, 곳곳의 안내표지판들도 언젠가 풍물로 정리 해야겠네요...
이제 겔레르트 언덕과 치타델라 요새를 떠나 점심을 먹으러 페스트 구역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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