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우리나라 畵壇

[스크랩] 소설가 시인 한국화가, 이들의 고향 이야기

鶴山 徐 仁 2005. 8. 19. 01:41

▲ '모든 고향에는 무지개가 뜬다' 2004년 김선두 그림(학고재)

“옛집은 누구에게나 다 있네. 있지 않으면 그곳으로 향하는 비포장 길이라도 남아있네. 팽나무가 멀리까지 마중 나오고, 코스모스가 양옆으로 길게 도열해 있는 길, 그 길에는 다리, 개울, 언덕, 앵두나무 등이 연결되어 있어서 길을 잡아당기면 고구마 줄기처럼 이것들이 줄줄이 매달려 나오네.

문패는 허름하게 변해 있고, 울타리는 아주 초라하게 쓰러져 있어야만 옛집이 아름답게 보인다네, 거기에는 잔주름 같은 거미줄과 무성한 세월, 잡초들도 언제나 제 목소리보다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어서 이들 조용히 걷어 내고 있으면 옛날이 훨씬 더 선명하게 보인다네, 그 시절의 장독대, 창문, 뒤란, 웃음소리…… 그러나 다시는 수리할 수 없고, 돌아갈 수도 없는 집, 눈이 내리면 더욱 그리워지는 집, 그리운 옛집.

어느 날 나는 전철 속에서 문득 나의 옛집을 만났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나의 옛집이 아니네.“

-'그리운 집'. 김영남 시집 <정동진역>. 1998 (<옥색 바다 이불 삼아 진달래꽃 베고 누워> 본문 77쪽)

▲ '땅 위를 기어가는 것들에는' 2004년 김선두 그림(학고재)

전남 장흥은 복이 넘치는 땅이다. 고향을 향한 글이 있고, 시가 있고, 그림이 있다. 소설 속에서 고향이 꿈틀거리며, 시에서 금방 고향이 뛰쳐나올 것 같으며, 그림에서 고향의 옛 추억 속으로 여행을 할 수 있으니, 장흥 사람은 행복하다. 서울에서 수 시간을 달려 고향 집 대문을 들어서지 않아도 늘 고향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작품에서 고향을 본다.

나 역시 올해로 고향인 장흥 땅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일을 15년째 해오고 있다. 고향을 담아내는 일은 누구나 하는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늘 듣지만 고향은 결코 내 사진의 공간으로 담아낼 수 없었다. 내가 그토록 담아내려고 했던 고향은 사진이 완결된 다음 항상 사진틀 밖으로 벗어나 있었다.

고향은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은 눈으로 보이는 피사체가 아니라, 이청준의 소설 속에서, 김영남의 시와 김선두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아릿한 상상 속의 추억일 것이다.

누구나 고향은 있다. 하지만 장흥처럼 풍성한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 고향은 그리 많지 않다. 송기숙이 있고, 이청준과 한승원이 있으며, 이승우가 있다.

또한 이대흠이 있고, 김영남이 있으며, 박진화가 있고, 김선두가 있다. 장흥의 온전한 힘은 이들 작가가 품어내는 뜨거움이 고스란히 배어있기에 늘 따뜻하다.

▲ '소매치기와 장흥장 풍경' 2004년 김선두 그림(학고재)

“유년의 땅에 와서는 많은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는다. 잃어버린 것 가운데서도 순수한 공포감 같은 것을 되찾게 된다. 수로에 잠겨 밤길을 따라오는 물 속의 달, 집 뒤 안까지 검게 다가선 뒷산의 깊고 우뚝한 밤 그림자, 그런 것들은 공연히 나를 섬짓섬짓 무서움에 떨게 한다.

무더운 여름밤의 서늘한 바람기, 하늘에 가득 찬 밤별들과 별똥별, 시골 야밤의 광대무변한 정적과 침묵, 서정적과 침묵……, 그런 것들도 공연히 나를 섬짓거리게 만든다……, 까닭 없는 공포감, 까닭이 없으니 공포감은 순수하다. 그러나 내가 이 유년의 땅에서 순수한 공포감을 되찾아 가는 것은 내 잃어버린 옛날의 순수 자체를 되찾아가고 있는 것 한 가지인지 모른다…….

-'여름의 추상' 이청준 <시간의 문> 1982 (같은 책 본문 116쪽)

▲ '저무는 길' (본문 153쪽) 2004년 9월 김선두 그림(학고재)

이청준은 어린 나이(중학교 1학년)에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살고 있으며 평생 소설을 쓰고 있다. 그는 영화 '서편제'를 만들어 냈고, 영화 '축제'를 임권택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를 고향에서 직접 써가며 고향 땅에서 촬영했다.

이청준의 작품 대부분은 그의 고향인 장흥 땅이 소설 속 어딘가에 늘 함께 한다. 유년의 흙 냄새가 그를 그토록 오랫동안 고향에 머물게 한 지 모른다.

그는 참으로 순수하다. 고향의 후배인 내게도 언제나 존대를 한다. 그와 마주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영화 ‘축제’에서 보여주는 그림들이 자신의 가족사를 빗대거나 그가 염원했던 어머니에 대한 모습인지 모른다. 그는 소설가로 대단히 성공한 사람이다. 하지만 늘 겸손하며, 그의 고향을 향하는 마음은 늘 따뜻하다.

▲ '푸른 밤의 여로' (본문 50-51쪽) 2004년 9월 김선두 그림(학고재)

김영남과 김선두는 그와 20년 가까운 터울을 갖고 있는 후배들이다. 하지만 그는 그들을 후배라기보다 고향이 같은 친구로 생각하며, 고향이야기를 풀어냈으리라 충분히 짐작한다.

“우리는 어느 계기에 마음을 한데 묶어 우리들만의 새 고향 지도를 그려보기로 하였다. 시장이, 소설장이, 그림장이 세 사람의 눈으로 고향 함께 읽기, 장르가 조금씩 다른 셋이서 각기 자기 시와 산문과 그림을 바탕 삼아 함께 나선 고향 길인 셈이다.

우리의 삶에 그 숙명의 그림자와도 같은 ‘고향’이란 무엇인가, 이후 근 3년 동안 우리가 거듭해온 고향길 화두는 물론 ‘그 고향의 참 모습이 무엇이며 우리가 그 깊은 속살을 어떻게 읽어내야 하느냐’였다. 나아가 ‘우리는 어떻게 그 땅의 비의(秘意)와 마주할 수 있으며, 우리 삶과 예술이 진정 그 땅의 계시와 사랑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느냐‘였다.

자연히 우리는 끊임없이 그 모토와의 염원 어린 대화를 시도했고, 세 사람도 서로 같은 성질의 대화를 계속했다. 김영남은 그것을 시로 쓰고, 김선두는 그림으로 그리고, 나는 기왕의 내 소설 장면들에 몇 편의 산문을 덧붙였다.“ (중략)

-'책을 펴내며' 이청준(같은 책 본문 5쪽)

▲ '그리운 옛집'(본문 78쪽) 2004년 9월 김선두 그림(학고재)
“작렬했던 하루해도 서서히 몰려가는 황혼 무렵은 평범한 풍경조차 살아있게 한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며 스미고 번지는 이 시간은 순간순간 놓치기 아까운 비경들을 연출한다. 새벽과 함께 황혼 녘은 하루 중 풍경을 가장 역동적이게 하는 시간이며, 걷던 발걸음을 멈추게 하던 하기식(下旗式)의 애국가처럼 엄숙한 시간이기도 하다. 황혼 녘은 이처럼 표정이 풍부하고 복잡하다.

새벽의 이미지가 푸르다면 황혼은 붉다. 황혼은 하루 낮을 뜨겁게 달군 태양이 소멸되기 직전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보여주는 장엄한 절정이다. 황혼은 아저씨 아줌마들의 붉은 영가이다. 그날의 아쉬움과 회한과 아픔과 보람과 안도와 감사들을 한꺼번에 목청 높여 부르는, 그런 (나이 지긋한 사람들의) 영가이다.“(중략)

-'저무는 길' 김선두(같은 책 본문 152쪽)

▲ 2004년 7월 전남 장흥군 관산읍 신동리 정남진에서 만난 김영남과 김선두(오른쪽)

한국화가인 김선두는 현재 중앙대학교 교수이며, 그의 아버지 소천 김천두는 문인화를 그리는 중견화가이고, 또한 그의 동생인 김선일도 화가이다. 한 집에서 세 명의 화가가 각기 다른 장르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는 영화 ‘취화선’에서 주인공 장승업의 그림을 대신 그렸고, 금호 미술관 등에서 그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고향 남도를 표현한 작품을 수 차례 전시하였다.

▲ 표지 <옥색바다 이불 삼아 진달래꽃 베고 누워> ⓒ 2004 학고재


“구두를 신고 걸으면 돌멩이가 차이던 길
이젠 돌멩이의 안부도 물을 데가 없구나.
엉클어져 서로 싸우다가 새 파랗게 질린 얼굴로
달개비꽃 하나가 나를 쳐다본다.
눈길 주어 따뜻한 피가 흐르지 않는 것 하나 없다.
고향은 언제부터 이렇게 증발한 것들이 많아 졌을까?
더러는 팔아버리고 , 허물어진 상처들만 남았을까?
고무신 신고 걸으면 개구리가 고구마처럼 차이고,
가을이면 색동 띠가 한없이 수를 놓았던 들녘,
저 쓰러졌던 수수밭 사연은 또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

-‘고향 옛 길이 증발하고 없네’김영남. 계간 <문학마을>. 2000 (같은 책 본문 112쪽)

시인 김영남은 199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서 ‘정동진역’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 <정동진역>과 <모슬포 사랑>을 펴냈다. 중앙문학상과 윤동주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전남 장흥군 대덕읍 분토에서 태어났다. 분토는 장흥군과 강진군의 경계마을이며 장흥군 가장 끝자락이기도 하다.

<옥색바다 이불 삼아 진달래꽃 베고 누워>(학고재)는 각기 장르가 다른 세 사람의 작가가 자신들의 고향을 글과 그림으로 그려낸 따뜻한 고향 이야기다. 그들이 그려낸 고향은 그들이 태어나고 유년 시절을 보낸 장흥 이야기만이 아니다. 일상에서 지치면 언제나 돌아가고픈 우리 모두의 포근한 마음속 고향 이야기이다.




OhmyNews

마동욱 기자


 
가져온 곳: [..]  글쓴이: 너와집나그네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