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想像나래 마당

[스크랩] 우리의 과거- 60-70년대 피서모습들..

鶴山 徐 仁 2005. 8. 6. 13:58

 한국은 무더운 여름의 연속이라고 합니다. 이맘때 쯤은 휴가철이고 삼삼오고 가족과 연인들 휴가지로 떠나겠죠? 휴가철에 가장 무서운 것이 다름아닌 "바가지"라고 하던데..

 

  전 86년 여름에 배낭을 둘러매고 무전여행의 코스로 부산 해운대를 간적이 있었죠. 그냥 푸른바다와 하얀 백사장, 그리고 갈매기, 또 노래에서 나오는 오륙도 등도 보고 싶었죠. 그런데 백사장은 고사하고 달리는 버스위에서 본것은 개미때 같은 같은 인파뿐이였죠.

 

70년대, 피서, 해운데

*사진설명: 70년대 해운대 피서인파들

 

 그 이후 대학을 입학에서 많은 곳을 답사했고, 그중에 강릉 경포대도 구경했고,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는지 군입대 이후엔 행군으로 홍천에서 미시령을 너머 속초까지 걸어가기도 했죠. 무더운 여름날 말입니다.

 

 60년대와 70년대 우린 어떻게 무더운 여름을 보냈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우선 개인적으로 비록 물질적으로 덜 풍요로운 그 시절이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수영복이 따로 없었지만 개울가의 물놀이는 잊혀지지 않았고, 모기향 불을 피우면서 감자, 고구마, 옥수수를 삶아먹던 시골에서의 기럭도 생생합니다.

 

60년대, 무더위, 팥빙수

 *사진설명: 어름 덩어리를 돌려 팥빙수를 만드는 장면.

 

그 리고 얼음을 돌려 팥빙수를 만들어 먹는 구멍가게와 그리고 나무박스에 하드를 사먹던 기억들... 이것이 제가 기억하는 70년대의 여름시절 간직한 기억들 입니다.

오랫동안 타국생활을 하다보니 소위 말하는 서민들은 어떻게 여름을 나는지 궁금합니다.

 

 무더위속에 생계를 꾸려가시는 분들은 별다로 피서라는 것이 없었는데, 지금은 국민소득 2만달러를 말하고, 주5일 근무를 한다는 한국이라 일하고 노는 구분이 더욱 분명해 지는 것 같더군요. 과연 국민소득 2만달러의 영향이 어느계층까지

침투가 가능한지는 무리수가 많은 것 같군요.

 

이전에 학생들은 여름방학엔 별다른 놀이터가 없는 것 같았고, 저 역시 시골을 방문해 모기에게 헌혈하고 돌아오는 것이 가장 인상깊게 보낸 여름방학으로 기억합니다. 요즘은 학생은 연령을 막론하고 영어등 외국어를 위해 해외로 떠나고 보습학원에게 위탁한다고 합니다.

 

원두막, 피서

*사진설명: 시골원두막 생각만해도 시원한 잠이 오는 곳이다.

 

여러분은 시골원두막을 기억하시는지요. 원두막에 오르면 발아래 수박이며 참외들이 덩쿨넝쿨 널려있고, 먹다 남은 수박에 이끌린 파리들이 우글거리고...비라도 내리면 고무신이 진흙에 붙잡혀 넘어지고 했었죠. 사진속에 시골 원두막을 생각만해도 시원한 잠이 절로 오는 것 같지 않나요?

 

피서, 얼음, 냉장고부재

   *사진설명: 냉장고가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에 얼음은 어떻게 구했을까?

 

   지금은 냉장고가 가정마다 보급되어 여름 무더위를 보내는데 문제가 없지만, 이전엔 냉장고가 없어서 얼음을 구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군요. 중국고전 중에 [예기]라는 책에도 여름에 얼음을 구할수 있는 계층은 아주 귀한 상층계층이나 가능했다고 합니다.

 

  60-70년대 얼음은 어떻게 구했는지 전 전혀 기억이 나질 않네요. 초등학교 2-3학년 쯤에 나무상자에 남긴 흑백 "금성" 테레비전을 집에서 처음 본기억 외에, 냉장고는 언제쯤 사용했는지 기억이 없네요.

 

 돌이켜 보면 현재우리의 생활은 물질문명의 발달과 경제발달로 인해서 많은 노동시간이 절감되고 소위 말하는 문명의 이기속에 이전보다 편한고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음은 틀림없는 것 같네요.

 

  하지만 문명이 지금보다 덜 발달될 시기에는 사람과 사람이 더 자주, 그리고 자연과 사람이 더 빈번하게 접촉해야 했던 시간들이었던 것네요. 그래서 사람과 사람속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더 많이 느낄수 있었고, 자연을 접하면서 겸손함이나 자연의 순리를 배웠던 것은 아닐까요?

 

  반대로 문명의 이기가 발달할수록 인간과 인간의 사이는 멀어지고 심지어 격리되기도 하고, 혹은 극단의 생각과 선택을 하게되는 것은 아닐런지요. 어쩜 공존의 순리에서 이탈한, 즉 사람들 사이에서 점차 격리된 이유때문은 아닐까요?

 

  60-70년대 피서를 보냈던 몇장의 사진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되는군요. 여러분도 조용히 부모님의 사진첩을 꺼내서 이전의 가족들과 자신들의 사진을 돌아보면서 과거를 한번 회고해 보는 것이 어떨런지... 이것도 좋은 피서방법의 하나가 아닐런지..

 

북경에서

지우


 
가져온 곳: [북경이야기(北京故事)]  글쓴이: 지우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