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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 文化參考

[스크랩] 중국, 재개방한 고구려 지안유적 (상)

鶴山 徐 仁 2005. 7. 31. 12:11
[고구려 역사현장을가다] (上)재개방한 中 지안유적
 


‘살아있는 고구려 박물관’으로 불리는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集安)시가 지난 2일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계기로 지난해 11월 이후 일반인의 참관을 일절 금지시켰던 고구려 문화유산을 다시 외부에 공개했다.

 

기대를 갖고 찾아간 지안은 그러나 모든 것을 ‘서둘러’ 새롭게 바꾼 채 고구려 유적을 선보이고 있었다. 지난해 중국 중앙정부가 세계문화유산 지정에 대비, 3억5천만위안(5백25억원)을 집중 투입한 덕분에 모든 유적지 내 민가는 대부분 철거되고, 유적지에는 새로운 길이 닦이고 토끼풀이 우거진 풀밭으로 탈바꿈했지만 무엇인가 어색했다.

 

급한 마음에 광개토대왕 무덤으로 확인된 태왕릉(太王陵)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길이 66m의 정방형에다 높이 15m인 태왕릉의 정상에 올라서자 서쪽으로 국내성이 있는 지안시 도심이 한눈에 들어왔다. 안내원은 “광개토대왕은 죽어서도 국내성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태왕릉의 정상에서 계단을 통해 내려오면서 뒹굴고 있는 기왓장이 많이 눈에 띄었다. 왕릉 위에 건축물이 서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이 안내원의 설명이다. 호기심에 기왓장 몇개를 주웠더니 바로 지안시 박물관에 소장된 것과 같은 것이었다.

 

태왕릉에서 걸어서 2~3분 정도 살구밭을 헤쳐 내려가면 저 유명한 광개토대왕비가 서있다. 높이 6.39m에 너비 1~2m인 비석은 그러나 방탄유리가 4면을 가득 에워싸고 있었다. 눈을 애써 찌푸려야 겨우 글자를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재작년만 해도 비석을 직접 손으로 만지기까지 했다지만 지난해 공사 때문에 유리벽면 너머로 지켜보는 데 만족해야 했다. 대왕비에서 자동차로 5분 정도를 가면 ‘동방의 피라미드’라는 장군총이 나온다.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장수왕의 능이다.

 

장군총은 사진촬영을 금지하고 있는 지안의 대다수 고구려 유적과는 달리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것은 물론 5층(3계단이 1층을 이룸)에 있는 묘실도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다만 묘실 안의 촬영은 금지됐다. 묘실 입구에는 중국인 안내원이 중국인 관람객들에게 ‘마치 자신들의 조상인 듯’ 장수왕의 내력을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모습이 다소 신기했다. 묘실에서 밖을 내다보니 광개토대왕비와 태왕릉을 비롯, 국내성이 한눈에 들어왔다. 또 압록강 건너 북한 만포의 산도 보였다.

 

서기 198년 고구려 왕도였던 환도산성은 지안 도심인 국내성에서 서북쪽으로 5㎞ 정도 떨어져 있다. 산성의 정문인 남옹벽은 새롭게 단장되어 있었다. 이전에는 농가들이 많았지만 작년에 대부분 철거했다는 것이 안내원의 설명이다. 삼성산 아래 기슭에 자리잡은 탓으로 천혜의 요새라는 느낌이 들었다.

 

산길을 따라 5분 정도 올라가자 돌로 세워진 전망대가 보였다. 전망대에 오르자 멀리 국내성은 물론 산성 전체가 한눈에 보였다. 이전에는 전망대는 오르지 못하게 했지만 지금은 풀렸다. 왕궁터와 말들을 먹였다는 산성내 호수는 지금 흔적없이 사라지고 대신 옥수수밭에서 황소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지안시 박물관을 비롯해 모든 유적지에는 안내책자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한국어와 일본어, 중국어로 된 안내판이 유일한 서비스였다. 호텔이나 서점에서 지안 시내 지도조차 구할 수 없었다.

 

또 장군총을 제외하고 대다수 유적지는 사진촬영을 금지하고 있었다. 현지 안내원조차 “예전에는 누구나 둘러보던 유적이었는데 지금 굳이 사진촬영을 막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는 수 없이 남의 눈을 피해 몰래 유적지 사진을 찍는 수밖에 없었다.

 

고구려 왕궁인 국내성 안에 7층짜리 아파트가 2002년 완공된 지 1년 만에 철거방침을 밝힌 것도 서둘러 지안을 고구려 유적지로 키우려는 방증이라고 현지인들은 전하고 있다. 이번에 돌아본 지안은 중국 정부가 고구려 문화유적을 자신의 역사에 편입하고 이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서둘러 급조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인용처:경향신문)


 
가져온 곳: [북경이야기(北京故事)]  글쓴이: 지우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