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중의 아침편지]
"객반위주(客反爲主)의 시대,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반세기 전인 1970년대 초, 해군사관학교 생도시절 순항훈련차 들렀던 필리핀 마닐라는 청년의 눈에 비친 선진국이었다. 우리보다 훨씬 풍요로웠던 그곳, 마닐라 리잘 파크(Rizal Park)에서 잔잔하게 기타를 치며 노래하던 필리핀 여대생들의 낭만적인 모습은 지금도 뇌리에 선하다. 당시 필리핀은 아시아의 선두 주자 중 하나였고, 서울의 장충체육관을 지어줄 만큼 우리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순항훈련을 마치고 청와대에서 열린 삼군 사관학교 우수생도 초청만찬 자리. 대통령께서 해사 순항훈련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며 내게 소감을 물으셨다. 나는 조심스럽게 방문했던 필리핀을 언급하며, '우리도 그들처럼 잘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답했다. 그때 곁에 계시던 영부인
께서 따뜻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건네신 한마디가 오랫동안 가슴을 울렸다.
"전 생도님, 우리도 이제 제주도에 감귤을 심기 시작했어요. 우리도 곧 잘살 수 있을 겁니다." 그 한마디는 단순한 위로가 아닌, 민족의 내일을 향한 눈물겨운 다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이를 악물고 초급 장교 시절의 거친 파도를 견뎌낼 수 있었다. ‘우리도 잘살아 보세’라는 일념 하에 온 국민이 피땀을 흘린 결과, 우리는 세계가 경탄하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냈고, 필리핀을 넘어 세계 무대의 주역으로 우뚝 섰다.
30여 년의 군 생활을 명예롭게 마치고, 대기업 계열사 사장으로서 우리 회사가 건설한 중국 대련 조선소를 방문했을 때만 해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당시 우리는 압도적인 기술 격차로 중국 조선업을 누르고 있었고, 대한민국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역사의 진리가 오늘날 우리를 매섭게 몰아치고 있다.
이른바 객반위주(客反爲主), 손님이 주인의 자리를 차지해 버린 형국이다. 어깨너머로 우리의 기술을 배우며 고개를 숙이던 중국이, 이제는 우리에게 일감을 던져주는 거대한 '갑(甲)'이 되어 호령하고 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우리의 안일함
이다. 온 나라가 반도체 착시 효과에 취해 샴페인을 터뜨리는 동안, 한국 제조업의 허리인 자동차 산업은 위기에 직면했다.
현대차그룹을 제외한 대부분의 자동차 기업들은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고, 급기야 공장 마당을 중국차에 내어주는 참담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역사는 준엄하게 묻고 있다. 과연 지금 우리에게는 국가를 어디로 이끌고 가겠다는 명확한 ‘철학’을 가진 위정자가 있는가? 오직 눈앞의 단기적 이익만을 쫓으며 미래에 대한 투자와 기술 안보를 등한시하는 기업인들
은 또 어떠한가? 무엇보다 국가의 안위와 국가 경쟁력은 팽개친 채, 자신들의 이익
만을 관철하려 막무가내로 파업을 일삼는 이들의 목소리가 광장을 메우고 있는 현실은 나라의 미래를 두렵게 만든다.
우리가 분열하고 안주하는 사이, 저들은 무서운 속도로 우리를 추월했다. 이제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마지막 보루인 반도체마저 저들의 거대한 자본과 국가적 총력전에 밀려 추월당하지 않을까 두려움
이 앞선다. 필리핀의 쇠락을 지켜보았던 우리가, 이제는 중국의 거대한 그늘 밑
으로 들어갈 위기에 처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위정자는 당리당략을 버리고 국가 백년
대계의 철학을 세워야 하며, 기업인은 초격차 기술 확보를 위해 다시 신발 끈을 조여 매야 한다. 그리고 모든 국민은 내 밥그릇보다 국가의 안위가 먼저라는 엄중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제주도 마당에 처음 감귤 나무를 심던 그 간절
했던 초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이 피땀으로 쌓아 올린 번영의 탑은 순식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릴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국제
PEN, 시인, 수필가☆
♤My Heart Will Go On
https://youtu.be/F2RnxZnubCM?si=tLcNomljsZHf0e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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