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묵의 90년대생 시선] 이견 묵살하는 두 세계관, 이란과 한국은 판박이
팔레비 對 이슬람 공화국 지지자 간 극단 대립… 역사 논쟁과 닮아
한국도 좌우 사이에 증오의 '끝장 싸움' 끝내고 대화의 문 열기를
임명묵 대학원생·'K를 생각한다' 저자
입력 2026.05.27. 23:33
일러스트=이철원
2년 전 이란을 여행할 때를 종종 떠올린다. 나는 이란에서 현재 이슬람 공화국 정부를 매우 혐오하는 청년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영어가 능숙한 이 청년들은 옛 팔레비 왕조 시절의 건축물들을 보여주며 “이게 원래 이란의 진짜 모습”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들과 생각이 다를 때도 많았지만 외부인이자 여행객의 자세로 이 친구들의 경험을 듣고 소화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그러면 너희에게 이슬람 공화국이 가장 짜증스럽게 느껴질 때가 언제야?”라고 물어보곤 했다.
많은 청년의 대답은 “학교”였다. 관심도 없고 실용적이지도 않은 과목들을 10대 때부터 공부해서 시험도 보아야 하고, 심지어 대학교에서도 의무적으로 수업을 들어야 하고, 교사와 제대로 된 논쟁도 할 수 없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그 과목들은 참 다양했다. 영어 배울 시간도 없는데 아랍어를 배워야 하는 것도 너무 싫다. 무슬림이지만 이슬람교 교리와 역사를 왜 학교에서까지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다. 팔레비 때는 모든 게 안 좋았고 혁명 정부에 들어서 모든 발전이 있었다는 것도 믿기지 않는다, 혁명과 전쟁 얘기는 지루하다….
반대로 내가 이슬람, 혁명, 전쟁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하니 이 친구들은 질색하는 것이 당연했다. 내가 시아파의 성지 콤에 있는 호메이니 가옥을 다녀왔다고 말하니 어떤 친구는 이란에 좋은 곳이 얼마나 많은데 대체 왜 그런 곳을 가냐며, 인스타그램을 켜고 호메이니가 힙합 비트에 맞춰 현란한 랩을 하는 ‘MC 호메이니’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독일 뮌헨에서 열린 이란 반(反) 정부 시위에서 시위대가 이란의 마지막 왕세자 레자 팔레비 사진과 옛 팔레비 왕조의 국기가 나부끼고 있다. / EPA연합뉴스
여행 막바지에는 테헤란에서 이슬람 공화국을 열렬히 지지하는 내 또래의 청년들을 만났다. 나는 이들에게 “여행을 하면서 현재 정부를 싫어하는 청년을 많이 만났다”고 조심스레 물어봤다. 이 친구들은 “안타깝게도 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소비주의의 허상을 좇는 이가 많다”고 혀를 찼다.
하지만 같이 이야기를 나눈, 곧 나이 마흔을 바라보는 ‘형님’의 의견은 달랐다. 네 살짜리 딸이 하나 있는 아버지이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리 딸을 신실한 무슬림이자 이란 국민으로 키우려고 노력할 테지만, 우리 딸도 자라나면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면서 자신만의 생각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을 내가 통제할 수는 없다. 하물며 인터넷 시대 아닌가? 나는 이란인들이 먼저 서로 대화를 하면서, 서로 증오하지 말고 대화할 수 있게 노력하면 좋겠다.” 안타깝게도 그의 소망은 시위, 진압, 전쟁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의 표정과 목소리까지 생생하게 떠오른다.
옛 팔레비와 이슬람 공화국은 모두 이견을 허락하지 않았다. 팔레비는 이슬람을 억압했고, 곧 사라질 무지몽매한 전통으로 일축했다. 이슬람 공화국은 팔레비 시대를 무능한 전제왕정이자 미국의 꼭두각시로 규정했다. 얄궂게도 이란의 국제화된 신세대는 이슬람 공화국을 비난하면서 다시 팔레비 시대를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끌어안았다. 혁명을 지지하는 이들이 “역사도 모르는 철없는 것들”이라 일축하지만, 이들은 어른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인스타그램의 세계에서 자신들만의 ‘역사’를 찾아냈다.
정부가 최근 마케팅 문구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 폄훼 의혹이 제기된 스타벅스코리아에 수여했던 정부 표창의 취소 여부를 두고 검토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을 경우 정부 표창에 대한 수시 취소가 가능하다는 지침 규정에 따른 것이다. 사진은 24일 서울 한 스타벅스 영업점. /연합뉴스
이란보다 자유로운 나라라지만 나는 우리의 역사 논쟁을 볼 때 기시감을 느낄 때가 잦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전혀 다른 두 세계관이 평행을 달린다. 좌우 사이에는 제대로 된 논쟁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서로 각자의 세계를 구축해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든다. 이런 ‘끝장 싸움’을 볼 때마다 나는 테헤란의 한 물담배 집에서 ‘형님’이 들려준 얘기가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설령 지금은 대화가 통하지 않더라도, 한 가족, 한 국민이라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나눠볼 수는 없는 것일까?
물론 이런 질문에는 “아니, 그런데 저쪽이 먼저…”라는 대답이 따라 나온다. 나도 그런 생각이 없지는 않기에, ‘대화’가 가장 어려운 일임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혁명이 현재 진행형인 이란에서도 대화를 희망하는 이가 있다. 그러니 한국에서도 그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나는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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