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 칼럼] 부럽다, 미국기업 쿠팡
유통업을 공멸시킨
한국의 후진 정치,
쿠팡이 위기 몰리자
보호 나선 미국 정치
한국서 장사하면서
미국 기업을 선택한
이유를 알겠다
입력 2026.02.10. 23:50
지난 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송파대로 쿠팡 본사 앞에서 열린 쿠팡 피해자 행동의 날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김범석을 처벌하라'는 손피켓을 들어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스1
한 국회의원이 저녁 자리에 유통 기업 오너를 불렀다. 국회의원 지역구 인근에 이 기업의 대형 마트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건설 계획을 취소하라”고 다그쳤다. 대형 마트가 주민을 빨아들이면 지역구 전통시장 상인들이 피해를 본다고 했다. “부탁이 아니라 욕설에 가까웠다”고 했다. 언성을 높이다가 흥분한 의원이 손으로 밥상을 내리쳤는데 어찌나 셌는지 젓가락이 오너 머리 근처까지 튀어 올랐다고 한다. 결국 이 기업은 상당한 손실을 보고 대형 마트 건설 계획을 철회했다. 이 오너에게 그날이 “인생에서 가장 모욕적인 순간”이었다고 한다.
이 오너가 정치인 젓가락을 마주할 무렵, 미국 기업 쿠팡의 창업자는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4조원을 투자받았다. 4년 전에는 미국 세쿼이아캐피털, 블랙록으로부터 5000억원을 받았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들이다. 이 돈으로 한국 투자를 시작했을 때 연간 적자가 최대 1조원에 달했다. “미쳤다”고 했다. 과잉 투자 때문에 몰락할 쿠팡을 한국 기업이 삼킬 것이란 전망이 주류였다. 유통업에서 저런 적자를 본 적이 없는 데다 한국 기업이 월마트를 먹은 승리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반대, 지금 보는 그대로다.
젓가락을 날린 국회의원 지역구 인근에도 몇 년 후 쿠팡의 대형 물류센터가 생겼다. 물류센터가 ‘매장 없는 대형마트’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한국 정치인들이 알 리가 없다. 물류센터 설립과 함께 국회의원 지역구도 쿠팡의 로켓배송이 가능한 이른바 ‘쿠세권(쿠팡+역세권)’에 들어갔다. 대형마트 몇 개보다 훨씬 무서운 놈이 나타나 주민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엔 별다른 반발이 없다. 지자체장이 쿠팡 대표를 불러 물류센터 유치 환영식까지 열었다.
쿠팡이 잘못했다. 3367만건의 고객 정보 유출만으로 무거운 잘못이다. 정부 당국과 협의 없이 불확실한 조사를 발표한 것도 상식과 절차를 무시한 일인 듯하다. 법대로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 쿠팡에 대한 분노는 너무 심하다. 쿠팡이 장사는 한국에서 하면서 본사는 미국에 두고,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해 미국 주주만 배불렸다고 한다. 한 해 몇천억 원씩 한국에서 번 돈을 미국에 가져가 정가에 로비 자금을 뿌리고, 이를 무기로 한국 정부를 공격한다고 한다.
이렇게 바꿔 말하면 어떤가. 쿠팡이 투자와 상장을 통해 미국과 일본에서 10조원을 모았다. 그 돈으로 한국 물류 인프라에 2023년까지 6조2000억원을 투자했고, 올해 말까지 3조원을 추가 투자한다. 미·일에서 모은 돈 전부를 한국에 넣는 것이다. 한국에서 쿠팡 고용 인원은 7만명을 넘어섰다. 삼성전자 다음, 현대차와 비슷한 고용 2위 기업이다. 한국에서 번 돈을 미국으로 가져가는 게 문제라면, 한국은 해외에서 장사를 하면 안 된다. 2023년 한국 기업이 미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번 60조원을 가지고 들어왔을 때 욕을 먹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분노 유발의 핵심에 ‘건방진 오너’가 있는 듯하다. 한국의 오너는 정치인이 밥자리에 부르면 와야 하고, 젓가락을 날려도 참아야 한다. 수천억 원 프로젝트도 포기해야 한다. 무슨 일만 있으면 법적 대표가 누구든 오너가 직접 국회에 나와 굽실거려야 정치인들 분이 풀린다. 그런데 쿠팡 오너는 사과문 달랑 한 장으로 끝이다. 한국 정치 풍토에서 속이 뒤집히지 않겠는가. 국회는 미국인 대표를 불러 온갖 모욕을 주고 정부는 경찰도 모자라 국세청까지 동원했다. 국회에서 말대답을 했다고 대표가 위증 수사를 받고 있다. 영업 정지까지 불사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정상인가.
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법인 임시대표가 지난 달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쿠팡 수사 종합 태스크포스(TF)에서 '셀프 조사' 관련 증거인멸 등 혐의와 관련한 피고발인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며 심경을 밝히고 있다. 경찰은 두 차례 출석 요구 불응 끝에 소환된 로저스 대표를 상대로 쿠팡 개인정보 유출사태 내부 조사과정에서의 증거인멸 정황, 셀프 조사 발표 경위 등을 집중 확인할 방침이다./뉴스1
미국 의회가 ‘차별적 대우’를 문제 삼자 미국을 방문한 고위 관계자란 분이 “외교 사안이라기보다 쿠팡 로비 때문”이라고 했다. 편하게도 생각한다. 위성락 안보실장은 “쿠팡 문제가 관세, 핵잠, 농축·재처리에 영향을 미치는 현안 중 하나”라고 했다. 이 말이 워싱턴의 분위기에 가까울 것이다. 쿠팡을 대변하는 미 하원 법사위원장은 EU에 대해서도 미국 빅테크 기업을 대변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 때도 미국은 윤석열 정부의 플랫폼 규제를 좌절시켰다. ‘자국 기업 보호’가 본질인 것이다. 그런데 한국 정치는 ‘쿠팡 로비’만 탓하고 있다. 기업인을 향해 젓가락이나 날리는 제왕적 정치 풍토에서 ‘기업 보호’가 무엇인지 알 리가 없을 것이다.
한국은 미국을 탓하지 말고 배워야 한다. 한국 국회는 최강 권력 집단이다. 로비란 말만 못 쓸 뿐 여의도엔 홍보·컨설팅 간판을 건 대관 로비가 판을 친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유통 기업을 협박하고, 뜯어먹고, 온갖 규제로 손발을 묶어온 게 한국 정치다. ‘사드 보복’을 당한 롯데마트가 중국에서 알몸으로 쫓겨날 때 한국 국회는 항의 한마디 한 적 있나. 한국에서 장사하면서 미국을 선택한 쿠팡 오너는 건방질지는 몰라도 똑똑한 듯하다. 미국 정치는 기업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돈값은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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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뉴스총괄에디터, 사회·국제·주말뉴스부장,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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