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人物情報 參考

[스크랩]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돌아간 공병우 이야기

鶴山 徐 仁 2026. 1. 28. 17:29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돌아간 공병우 이야기

 

현 재  2025. 12. 30. 8:58

[출처]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돌아간 공병우 이야기|작성자 현 재


故 공병우 전 한글문화원 원장, 전 공안과의원 원장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돌아간 공병우 이야기

1907년 평안북도에서 태어난 공병우(公炳禹 1907-1995) 박사의 삶은

'최초'라는 수식어로 가득한 삶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안과 의사!

대한민국 최초의 안과 병원 개원!

대한민국 최초의 쌍꺼풀 수술!

대한민국 최초로 콘택트렌즈 도입!

이같이 화려한 경력으로 한때는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세금을 많이 낼 정도로 부를 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공병우 박사는

애초부터 돈 버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의 지식을 세상에 어떻게 사용할까'였습니다.

그런 그의 삶에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그에게 눈병 치료를 받으러 왔던

한글학자 이극로(李克魯, 1893-1978) 선생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그 분과의 만남으로 과학적이고 우수한 우리의 한글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데 정열을 쏟게 된 것입니다.

이어서 공병우 박사는 한글타자기 개발을 시작하게 됩니다.

잘나가던 병원도 그만두고 얼마나 온 열정을 기울였던지 사람들은

'공병우 박사가 미쳤다며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열정에 의해 공병우 박사의 한글타자기는 미국에서 특허를 받게 되었고,

많은 사람이 편리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공병우 박사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계속하여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 한글타자기도 개발해 내었습니다.

누구보다 한글을 아끼고 사랑했던 공병우 박사는

그의 나이 82세가 되던 해에도 그 열정을 잃지 않고 나아가서 한글문화원을

설립하기에 이릅니다.

그곳에서 좀 더 편리하게 한글 자판을 사용할 수 있도록 계속 연구하였으며,

실력 있는 젊은 인재들과 정보를 나누며 관련 프로그램 개발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열정을 쏟은 결과 지금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 문서

입력 프로그램인 '아래아 한글' 시스템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공병우 박사는,

한글을 위해 자신의 일평생의 삶을 바쳤지만,

의사로서도 본분을 잊지 않았던 그는, 미국에 갔을 때 접했던 구급차를 수입해

전국을 돌며 도움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무료진료를 해주었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학교도 세웠습니다.

그렇게 한없이 베풀고 사회에 환원하는 마음으로 살았지만

한평생 자신에게는 인색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한 공병우 박사의 품성은 그의 유언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그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이렇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나의 죽음을 절대로 세상에 알리지 마라.

장례식도 치르지 마라.

죽어서 땅 한평을 차지하느니 차라리 그 자리에 콩을 심는 게 더 낫다.

내 몸의 쓸만한 장기는 모두 기증하고 시신은 의과대학에 실습용으로 기증하라.

유산은 모두 시각장애인을 위한 복지사업을 위해서 쓰도록 하라"

그리하여 그의 유언대로 공병우 박사의 각막은 다른 사람에게 이식되었고,

시신은 의과대학에 실습용으로 기증되었습니다.

또한 그의 죽음은 이틀이 지나서야 신문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995년 89세의 나이에 노환으로 타계한 그의 사망 뉴스가 나오자,

당시 PC 통신 게시판은 공병우 박사에 대한 추모의 글로 넘쳐났는데,

당시 PC 통신 게시판이 한 사람에 대한 조의 글로 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것은

거의 최초의 일이었습니다.

한 신문기자는 이를 "네티즌들의 사회장이 열리고 있다"라고까지 표현했습니다.

그의 죽음에는 빈소도 없고 장례식도 없고 묘지도 없었습니다.

일생을 살면서, 그리고 죽는 순간에도, 또 죽어서도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 빛이 되길 바랐던 공병우 박사,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 같은 삶을 살 순 없지만, 그러나 모든 이들에게 지식이

될 수도 있고, 능력이 될 수도 있고, 웃음이 될 수도 있고,

경제력이 될 수도 있고, 나눌 수도 있고, 인생을 충분히 잘살다 간다고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한글 기계가 자꾸 나오면 한글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겐 남을 돕는 일 중에 가장 가치 있고 가장 큰일이 한글의 과학화를

발전시키는 일이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그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본받아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요?

1950년 개발된 초기 세벌식 한글 타자기

[출처]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돌아간 공병우 이야기|작성자 현 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