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죽이고도 죄책감은 없었다... '4.3 폭동' 주역 김달삼
4·3 출발은 '항쟁'이 아니라 '폭동'
동족 학살에 거침 없었다
월북해선 "쓰딸린 대원수 만세"
입력 2025.12.24. 03:00업데이트 2025.12.24. 09:30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권혜인·Midjourney
무고한 한 사람만 살해해도 악인(惡人)이라 하는데, 그로 인해 최소 1700여 명이 살해당했다면 어찌 악인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일각에선 ‘항쟁(抗爭)의 주역’인 양 슬그머니 옹호된다. 이것이 정상적인 사회인지 묻기 전에, 도대체 그 악인은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악인전’ 열한 번째 인물은 1948년 4월 3일 제주에서 명백한 ‘무장 폭동’을 주도했던 자다.
유석재 기자가 우리 역사 속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링크를 누르고 회원만 읽을 수 있는 기사를 비롯, 더 많은 혜택을 멤버십에 가입해서 누리세요
여기 사진 한 장이 있다. 젊은 남자다. 사진만 봐서는 곱게 자란 인텔리겐차 같아 보인다. 어느 시점까지는 그도 분명히 그랬다. 그러나 겉모습만 보고 속으면 안 되는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일 것이다. 그의 이름은 김달삼(金達三·1923~1950), 본명은 이승진(李承晉). 1948년 4·3 사건 당시 남로당 무장대를 이끈 폭동의 수괴였다.

제주도 남로당 무장 폭동의 주역 김달삼.
일본 유학 중 일본군 소위가 돼
출생지는 제주도였다. 현 서귀포시 대정읍 영락리, 모슬포항에서 조금 북쪽으로 올라간 곳이다. 그가 어릴 적 아버지 이평근은 대구로 이사 가서 술도가 장사를 해서 큰돈을 벌었다고 한다. 부유한 집안 환경 덕에 어린 김달삼, 아니 이승진은 대구공립심상소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일본 조기 유학을 떠났다.
일본인 명문 자제의 출세 코스라는 교토의 세이호(聖峰)중학교를 거쳐 주오(中央)대 경제과에 입학했다. 2학년 재학 중에 일본 육사에 지원했다. 역시 사람은 외모로만 판단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본군 소위로 임관했다. 여기서 보듯 그는 ‘군인 출신’이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백면서생 출신으로 무장 봉기를 일으킨 게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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