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76] 인생, 잡을 수 없는 것을 향한 기나긴 여정
입력 2025.03.05. 00:16
케네스 피어링 ‘빅 클록’
그 빌어먹을 유령에 대한 긴 전기를 쓸 수 있을 만큼 정보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의 행적을 날짜별로 확인했고, 그가 출몰하는 장소를 알아냈으며 그의 배경 및 거의 완벽한 외양 묘사까지 확보했다. 그가 느꼈을 생각이나 감정, 충격 같은 것도 모두 X선 사진을 찍듯 추적했다. 눈이라도 감으면 그가 그 지나치게 매끈한 얼굴에 정신박약증 환자 같은 웃음을 흘리며 내 앞에 서 있는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그 남자만은 찾지 못했다. 아무것도 손에 쥔 게 없었다.
- 케네스 피어링 ‘빅 클록’ 중에서
출판사 대표 재노스는 내연녀 폴린에게 새로운 남자가 생긴 걸 알고 말다툼 끝에 그녀를 죽인다. 허겁지겁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현장을 빠져나왔지만 불안하다. 어둠 때문에 얼굴을 보진 못했어도 폴린을 집 앞까지 차로 데려다준 남자는 재노스를 본 게 틀림없었다. 그는 어떻게든 남자를 찾아 입을 막아야 했다.
재노스는 편집장 스트라우드에게 남자를 찾아오라는 밀명을 내린다. 정계에 줄이 있는 남자가 출판사의 경영 위기를 타개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스트라우드를 설득한다. 재노스가 폴린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음을 눈치채고도 모르는 척, 스트라우드는 조사팀을 꾸리고 남자를 추적한다. 그러나 닿을 듯 말 듯 그의 정체는 드러나지 않는다.
피어링의 ‘빅 클록’은 1987년에 발표된 영화 ‘노 웨이 아웃’의 원작 소설이다. 출판사 사장은 브라이스 국방장관으로, 편집장은 해군 장교 톰 패럴로 각색되었다. 케빈 코스트너가 살인 사건의 목격자를 찾아내야 하는 믿음직한 부하를, 충동적으로 애인을 살해한 권력자는 무게감 있는 연기로 팬들의 깊은 사랑을 받은 배우, 진 해크먼이 연기했다.
95세 나이로 진 해크먼이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평생 뛰어난 재능을 펼쳤고 천수를 누린 셈이니 더 바랄 게 없을 것도 같지만, 그의 심장박동기는 시신 발견 9일 전에 멈췄고, 아내와 반려견도 함께 숨진 채 발견되었다. 열흘 가까이 시신이 방치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쓸쓸해진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애써 찾아 손에 쥐려는 것은 무엇일까. 시작하고 싶은 데서 태어날 수 없는 인간은 원하는 만큼 아름답고 평온하게 죽음의 무대를 연출할 수도 없다. 선택할 수 있는 건 어떻게 살 것인가, 오직 삶의 과정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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