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부 원전 감축 졸속결정에… 건설비 6조·전기료 年3835억 더 든다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 단독 입수
입력 2025.02.19. 05:00업데이트 2025.02.19. 10:51
정부가 야당 반대로 애초 계획보다 대형 원전 1기를 줄인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수정안을 내놨지만, 해당 방안 수립 때 비용 추계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수정안대로면 발전 설비 건설비만 수조 원이 증가하는 것은 물론 국민의 에너지 비용 부담도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지난해 AI(인공지능) 확산 등에 따른 전력 수요를 맞추기 위해 2038년까지 SMR(소형 모듈 원전) 1기를 포함해 원전 4기를 짓겠다는 전기본 초안을 내놨지만, 야당의 논의 거부에 지난해 말이었던 확정 일정을 넘기자 지난달 초 1.4GW(기가와트)급 원전 1기를 계획에서 빼는 대신 태양광발전 2.4GW를 추가하는 수정안을 만들고 협의를 진행했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국회 입법조사처의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수정안대로 원전 1기를 태양광으로 대신할 경우 건설·시공비만 최소 6조원이 더 늘어나고, 60년인 원전의 최초 가동 연한을 감안하면 비용 차이는 4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전기본 수정안이 전기 요금과 에너지 산업에 미칠 영향을 고려했느냐는 국회의 질의에 “평가할 수 없다” “별도 검토한 바 없다”고 답해 ‘졸속 수정안’이라는 비판이 커진다.
전기본은 앞으로 15년간 국내 전력 수요 전망과 그에 따른 발전소 건설 계획 등을 담은 ‘에너지 대계’다. 이 계획에 따라 송·배전망 건설, 가스 수급 등의 후속 계획도 마련된다. 11차 전기본은 1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보고를 마치면, 이번 주 중으로 최종 확정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제대로 전력 수요를 맞추기도 어렵고, 비용은 더 드는 수정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건설·시공비만 6조원 더 들어
18일 본지가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를 보면, 1.4GW급 대형 원전 1기를 취소하는 대신 태양광 설비 2.4GW와 ESS(에너지 저장 장치) 32GWh(기가와트시)를 지으면 건설·시공비만 6조원이 추가 소요된다. 원전 1기 건설비 6조원이 줄어드는 대신, 패널 등 태양광 설비 시공에 2조4000억원, 보조 배터리 역할을 하는 ESS 구축에 9조6000억원 등 총 12조원이 들면서, 결국 6조원이 추가되는 것이다.
그래픽=양진경
날씨가 흐리거나 해가 진 이후에 전기를 만들지 못하는 태양광의 특성상, 원전처럼 전기를 24시간 동안 공급하려면 32GWh에 해당하는 만큼 ESS가 동원돼야 하다 보니 비용이 급증하는 것이다. ESS는 1MWh(메가와트시)당 3억원가량 드는 고가 설비로 통한다. ESS까지 더하면 원전 2기를 짓는 신한울 3·4호기 공사비 11조5000억원과 맞먹는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유재국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하루 4시간 정도 가동할 수 있는 태양광 2.4GW 설비로 1.4GW 원전 1기가 24시간 동안 공급하는 전기를 만들려면 4일 넘게 ESS를 채워야 한다”며 “해당 추산치도 마치 야구의 선발투수처럼 4일 충전 후 하루만 가동하는 것을 가정해 나온 최소 규모”라고 말했다.
◇교체 비용 합치면 60년간 40조 더 들어
태양광 20년, ESS 15년인 교체 주기까지 고려하면 부담은 더 커진다. 원전의 최초 가동 연한인 60년만 따져도 태양광은 2차례, ESS는 3차례 더 교체해야 해 추가로 33조6000억원 더 들면서 원전 1기 건설 때와 전체 건설·시공비 차이는 40조원에 달하게 된다.
게다가 부지 확보와 송배전 설비 등에 드는 비용까지 전부 합치면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커질 수 있다. 신한울 3·4호기는 원전 2기에 필요한 136만㎡ 부지를 1500억원을 들여 확보했는데, 태양광 2.4GW를 짓는 데는 약 40배인 2400만㎡가 필요하다.
건설비뿐 아니라 국민이 미래에 떠안아야 할 전기 요금 부담도 매년 3800억원 이상 불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초안대로 원전을 모두 짓고 2039년부터 가동할 때와 달리 태양광으로 대체하면 한전이 전기를 도매로 사는 비용은 연 3265억원가량 불어나고, 국민이 부담할 소매 전기 요금은 해마다 3835억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여러 부작용이 예상되지만, 산업부는 이 같은 문제를 고려했느냐는 이종배 의원실 질의에 “2030년대 후반 태양광발전 단가를 예단할 수 없어 전기 요금 등에 미치는 영향은 평가할 수 없고, 11차 전기본이 에너지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도 별도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는 “200조원에 달하는 한전의 부채와 값싼 전기 요금, 폭증하는 전력 수요를 모두 고려해야 할 에너지 대계인 전기본이 숫자 놀음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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