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노조! 뛰겠다는 사람 뒷다리는 잡지 마라[조형래 칼럼]
중국 AI 부상, 트럼프 관세 부과
세계 반도체 지형 요동치면서
한국이 직격탄 맞는데도
'주 52시간 예외' 3개월 연장도 못 해
평택 반도체 벨트 공사 중단되자
지역 상권과 건설 일용직은 붕괴 직전인데
귀족 노조만 보호하자는 것인가
입력 2025.02.18. 00:15업데이트 2025.02.18. 09:30
반도체특별법 저지·노동시간 연장 반대 공동행동이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에서 방진복을 입고 죽은 듯 드러눕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홍콩 증시가 연일 급등세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 전쟁 타깃이 중국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홍콩 증시는 한 달 새 20%나 급등하면서 주가 상승률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알리바바·텐센트 등 중국 테크 기업 주가는 말 그대로 폭등세다.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가 고작 80억원의 비용으로 고성능 AI 모델을 개발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데 이어 알리바바의 AI 성능이 미국 빅테크 메타(페이스북 모회사)의 AI보다 낫다는 평가가 나오면서다. 알리바바 주가는 202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며 미국의 제재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중국 내 판매되는 애플 아이폰에는 알리바바 AI가 탑재된다고 한다. 곧 중국 화웨이폰에도 알리바바 AI가 탑재돼 세계 곳곳에서 삼성 스마트폰을 공격할 것 같다.
대만에서도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대만 TSMC가 미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미국 대표 기업 인텔을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이야기다. 자국 내에 첨단 반도체 생산 시설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안보 욕구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에서 삼성전자의 추격 의지를 완전히 꺾어 놓으려는 TSMC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것이다.
지난 20년간 한국이 지배해 온 메모리 반도체도 위기다. 삼성은 내부적으로 낸드플래시는 중국이 대등한 수준까지 쫓아왔으며, D램도 3년이면 기술 격차가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가 큰소리친 대로 한국 반도체에 관세를 매기면 미국 메모리 시장마저도 마이크론 등 현지 기업에 넘겨줄 판이다.
미·중 갈등이 촉발한 반도체 전쟁은 세계 반도체 산업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공교롭게도 모든 경쟁자의 칼끝이 한국 반도체를 향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내부에는 위기의식이 없다.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반도체 특별법은 주 52시간 예외 조항에 대한 노동계와 야당의 반발로 발목이 잡혀 있다. 노동계가 반대하는 목소리를 들어보면, 반도체 산업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이 여전히 봉제 공장 시절의 노사관(觀)에 머물러 있다.
손톱만 한 크기의 반도체는 자동차·선박 같은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과 달리, 물류 비용 부담이 적은 데다 무역 장벽도 없다. 전 세계가 사실상 하나의 시장이다. 기술력이 앞선 기업은 이익을 독점하고 후발 주자는 퇴출당하는 냉정한 승자 독식의 시장이기도 하다. 다른 산업과는 비교가 안 되게 생산 공정도 복잡하다. 예컨대 첨단 반도체는 설계에서 시제품이 나올 때까지 7~8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무려 1000여 공정을 거친다. 한번 삐끗하면 7~8개월을 통째로 날릴 수 있다. 이 기간에 R&D(연구·개발) 역량을 집중해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실수를 줄이는 데서 승부가 갈린다.
그런데 국내 현행법은 R&D 연장 근로 허용 기간이 3개월에 그친다. 그나마도 일일이 고용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이를 어기면 경영자가 감방에 갈 수도 있다. 규정 위반에 대한 실형 처벌은 해외에서는 유례가 없다. 이에 기업들은 희망자에 한해 한시적으로라도, 주 52시간 예외 규정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지만 노동계는 “근로시간 단축의 역사를 역행하는 것”이라고 반대한다. 내가 자발적으로 일을 더 하고 돈을 더 받겠다는 게 왜 역사의 후퇴인가? 다른 사람들의 워라밸을 위해 내가 일할 권리마저 포기해야 하는가?
노동계와 야당은 문재인 정부 시절 반도체 벨트로 선정한 평택시에 가보길 바란다. 실적 부진을 겪는 삼성이 반도체 공장 건설을 일시 중단하자 승승장구하던 도시의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4만~5만명에 달했던 건설 인력이 1만명대로 급감하면서 지역 상가는 텅텅 비고 10억원을 호가하던 아파트 가격도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고용부에는 임금을 못 받은 근로자들의 민원이 급증하고 있다. 노동계가 연봉 1억원 넘는 귀족 노조의 건강을 염려하며 주 52시간 사수에 목매는 사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일감이 없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과거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신경영을 주창하면서 “많이 바뀌고 싶은 사람은 많이 바뀌고 적게 바뀌고 싶은 사람은 적게 바뀌어도 된다. 그러나 남의 뒷다리는 잡지 마라”고 했다. 지금 노동계에 해주고 싶은 말이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70
'國際.經濟 關係' 카테고리의 다른 글
[Why Times 정세분석 3180] 美의 초강수 ‘대만 독립 공식화?’, 화들짝 놀란 시진핑 (2025.2.18) (0) | 2025.02.18 |
---|---|
[사설]“52시간제로 R&D 성과 줄어”… 그런데도 예외조항 뺀다는 野 (0) | 2025.02.18 |
[뉴스속보] "민주당은 경제중심 정당"...지금 민주당이? 거짓말! [정완진TV] (0) | 2025.02.17 |
반도체 다음 먹거리가 탄생했다, 한국이 미국 넘어 천조국 됩니다 (김정호 교수 풀버전) (0) | 2025.02.17 |
[사설] 대기업 연봉 일본의 1.5배, 어떻게 국제 경쟁 이기나 (0) | 2025.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