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규제법안 쏟아내고 갑질하더니…
국회, 기업에 신형 낙하산 인사
[논설실의 뉴스 읽기] '수퍼 갑 국회'에 떠는 기업들
입력 2024.11.08. 00:08업데이트 2024.11.08. 07:38
걸그룹 뉴진스 멤버인 하니 팜이 지난달 15일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나온 김주영(오른쪽) 하이브 최고인사책임자를 쳐다보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기획사 하이브는 국회 업무 강화 명목으로 최근 몇 년 사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출신 보좌관이나 당직자를 임원으로 채용했다. /국회사진기자단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출신 인사들의 정부 산하 기관이나 공기업 낙하산 인사가 문제가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현 정부 들어 대통령직 인수위나 대선 캠프 출신 인사 140여 명이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의 기관장 또는 상임이사·감사로 임명됐다며 낙하산 인사를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낙하산 인사 근절을 약속했지만 역대 정권과 다를 바 없다며 더욱 비판받는 대목이다.
◇국회, 낙하산 인사 비판하더니 신형 낙하산
그러나 정부·여당의 낙하산 인사를 비판해왔던 입법부 역시 최근 몇 년 사이 대기업이나 테크 기업, 엔터테인먼트 회사 등 기업으로 국회발 낙하산 인사를 보내고 있다. 물론 정부나 대통령실과는 다른 차원이다. 기업들이 국회 출신 보좌관이나 국회 사무처 출신들을 채용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 관계자들은 “국회에서 입법으로 규제하고 국정감사에서는 총수 증인 채택 문제로 갑질을 하며 괴롭히기 때문에 보험 차원에서 국회 출신들을 채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기업 총수들의 증인 채택 문제로 국회에 잘 보여야 하는 기업들은 국회 출신 인사들을 대관(対官) 업무라는 이름으로 채용하고 있다. 정부와 대통령실발 낙하산 인사의 임기가 2~3년이라면 국회발 낙하산 인사는 정규직으로 때론 고액 연봉을 받는 임원으로 채용된다.
그래픽=김현국
엔터테인먼트 회사 하이브와 SM 엔터테인먼트는 최근 몇 년 사이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 인사들을 여야에서 모두 영입했다. 하이브는 2022년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행정관을 지낸 A씨를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그는 전직 민주당 의원의 보좌관 출신이다. 하이브의 대외협력실장은 보수 정부 청와대 행정관과 국민의힘 보좌관을 지냈다. SM 엔터테인먼트는 올해 초에 윤석열 정부 실세 중 한 명인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의 보좌관 출신을 대외 협력 총괄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이들 모두 엔터테인먼트 관련 경력이 없는 인사들이다.
K팝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회사들이 왜 국회 출신들을 영입했을까. 이번 국정감사를 보면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국회는 이번 국감에서 내분 중인 하이브 산하 연예기획사 어도어 소속의 뉴진스 하니와 김주영 하이브 최고인사책임자를 참고인과 증인으로 불렀다. 명분은 ‘직장 내 괴롭힘’이었다. 연예인 매니저가 아이돌 인사를 받지 않는다고 이를 노동 문제로 다룬 것이다. 그러나 뉴진스 국감 때문에 정작 같은 날 환경노동위 국감에서는 다른 기업들의 노동자 안전 문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호되게 당한 하이브, 그리고 이를 지켜본 다른 연예 기획사들은 더 많은 국회 출신 인사들을 채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
◇대기업에서 테크 기업, 플랫폼으로 문어발 확장
국감 때만 되면 국회는 기업 총수들을 일단 증인으로 신청해 놓고 막판까지 기업들 군기를 잡는다. 이번에도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 SK그룹 최태원 회장, 현대차 정의선 회장, LG그룹 구광모 회장이 모두 증인으로 신청됐지만 최종 증인 명단에서는 제외됐다. 일단 이런저런 이유로 증인으로 신청했다가 나중에 증인에서 빼주는 국회의 갑질 때문에 기업들도 국회 인맥을 활용할 수 있는 인사들을 임직원으로 많이 데려왔다.
국회의 문어발식 구직 활동은 최근 판교 테크 기업들로 확장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김현정 의원실에 따르면 2019년부터 올해 9월까지 국회 4급 이상 공무원 287명이 사기업으로 이직했다. 이 중 쿠팡이 7명으로 가장 많았고, 카카오는 6명이었다. 네이버, 카카오, 쿠팡, 우아한형제들 같은 대형 플랫폼 회사로 범위를 넓히면 최근 6년간 모두 18명의 국회 고위직이 이직했다. 국회 관계자는 “5, 6급 보좌관이나 비서관을 포함하면 이직 인원은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출신들은 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더라도 판교 대신 여의도 주변을 떠나지 못한다. 국회가 기업들 관련 어떤 규제 법안을 만드는지, 기업 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하는지 체크하고 막아내는 것이 이들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기업 관계자는 “국회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지만, 막상 국회의 횡포를 견제할 수단이 마땅히 없다”고 말했다.
◇규제 법률의 90%가 의원 입법
국회가 기업을 길들이는 수단은 기업 총수에 대한 증인 채택 외에 각종 규제 법안이다. 22대 국회는 지난 5월 30일 출범 이후 3개월 동안 약 300건 이상의 규제 법안을 발의했다. 이는 하루에 한 건 이상의 규제 법안이 발의된 것인데 국회가 ‘1일 1규제법안’을 내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규제 관련 공포 법률 중 의원 입법이 차지하는 비율은 89.1%였다.
의원들이 경쟁적으로 입법 발의를 쏟아내다 보니 정작 법안 가결률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16대 국회의 의원 발의 법안은 1912건이었고 이 중 514건이 가결됐다. 가결률은 27%였다. 그러나 21대 국회에선 의원 발의 법안은 2만3649건이고 가결률은 11.4%로 하락했다. 규제의 진원지가 정부에서 국회로 바뀌자 기업들도 국회 출신 인사들을 더 많이 채용할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국회 출신들을 직접 채용하는 한편 대형 로펌을 통해 대국회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국회가 규제로, 갑질로 기업에 대한 갑질을 확대하자 로펌의 영역이 서초동에서 여의도로 확장하고 있다. 로펌들은 규제대응설루션팀, 입법지원팀, 공공정책팀이라는 이름으로 국회 담당 조직을 강화하고 있다. 이들은 기업 총수 증인 빼주기, 질의서 입수, 증언 답변 때의 태도에 대한 ‘컨설팅’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증인 채택을 피할 수 없다면 증인의 격을 오너에서 임원으로 낮춰주는 일도 한다. 이 때문에 최근 로펌들은 전직 의원은 물론 국회 보좌관과 국회 사무처 출신 인사들을 대거 영입하고 있다. 로펌들은 법안 발의 단계에선 전직 보좌관들을, 심사 단계에선 국회 사무처 출신을 활용하고 마지막 입법 단계에선 전직 의원들을 투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원 입법에도 정부 입법처럼 영향 평가제 도입해야”
국회의원 평가에서 문제 중 하나는 법안을 많이 발의하는 의원에게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부실한 입법과 규제 위주의 입법이 늘어나면서 평가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21대 국회에서 법안 발의 1위는 4년간 모두 325건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이다. 3일에 1건의 법안을 제출한 것이다. 2위는 민주당 윤준병 의원으로 281건을 발의했다. 그러나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폐기된 법안 건수 1위 역시 민형배, 2위는 윤준병 의원이다. 국회와 학계에서는 이처럼 의원 입법을 남발하면 그만큼 기업 활동을 옥죄는 규제 관련 법안들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법안 발의 건수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적 위주나 보여주기식 법안 발의 때문에 기업들이 국회를 상대로 하는 업무가 더 늘어나고, 국회발 규제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21대 국회에서 의원 입법 발의 건수는 2만3649건이다. 17대 국회 5728건, 18대 국회 1만1191건, 19대 국회 1만5444건, 20대 국회 2만1594건으로 의원 입법 발의는 폭증하고 있다. 4년 평균 영국 572건, 독일 847건, 일본 947건과 비교하면 한국 국회의 법안 남발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반면 정부 입법 발의 건수는 17대 국회 1102건에서 20대 국회 1094건, 21대 국회 831건으로 계속 줄고 있다. 정부의 규제성 법안이 줄고 있지만 국회의 법안 남발 때문에 규제가 늘어나고 입법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의원 입법에 대한 영향 평가제를 도입해 과잉 규제를 막아달라고 국회에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정부 입법은 행정규제기본법에 따라 규제 영향 분석이 의무화돼 있지만, 의원 입법은 10인 이상만 동의하면 규제 영향 분석 없이 법안 발의가 가능하다. 20대와 21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들이 제출됐지만 폐기됐다. 역대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규제 혁신을 추구해왔지만 국회발 기업 규제가 발목을 잡으면서 오히려 규제가 더 강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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