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건국영웅 3인
sinatmul49 ・ 2024. 9. 30. 13:26
[출처] 미국의 건국영웅 3인|작성자 sinatmul49
<미국의 건국 영웅 3인>
거대한 히말라야 산맥에 8000미터 이상 높은 봉우리가 많듯이 미국에는 건국의 공식적 아버지도 수백명이나 됩니다.
독립군사령관(무보수)으로 8년간 민병대를 이끌고 대영제국군을 물리친 워싱턴대장은 수많은 민병대원들이 왕으로 추대했으나, 이를 단호하게 거절하고 나서, 선거인단 100 % 찬성으로 2회나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미국 역사상 선거인단 모두의 지지를 받은 후보는 워싱턴대통령 뿐입니다. 워싱턴장군이외에도 독립투쟁에 헌신한 건국의 아버지들이 많습니다. 미국 최고의 국가문서인 독립선언문을 기안한 제퍼슨, 독립 전챙중 프랑스에서 외국차관을 도입한 다양한 분야의 천재 벤자민 프랭클린 대사, 독립군을 지원한 아담스 2대 대통령, 식민지 대표회의에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친 패트릭 헨리, 보스톤 티파티를 주도한 사무엘 아담스, 헌법의 아버지 매디슨, 노예를 해방시킨 링컨대통령등 미국 건국의 아버지는 수백 명이나 됩니다. 그들중 3명의 최고봉은 누구일까요 ?
온 세계가 미국 건국의 최고 아버지로 인정하는 두 명은 워싱턴과 링컨 대통령 입니다.
워싱턴이 아니었으면 독립을 성취하기가 어려웠을 뿐 아니라 신생 독립국을 단합하게 하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는 로마 공화정의 전설적 장군 Cincinnatus를 롤 모델로 삼아 무엇보다도 명예를 중시했습니다. Cincinnatus장군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국가를 구하고 나서는 고향으로 낙향 하고 결코 권력을 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워싱턴은 민병대원들이 그를 왕으로 추대했을 때 단호하게 거절하고 대통령직도 사양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지도자들이 그 외에는 대통령직을 감당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간청해 마지못해서 그가 대통령직을 수락했던 것입니다.
워싱턴을 숭모(崇慕)하는 민병대원들 대다수는 그가 미국의 Cincinnatus 장군이라고 믿고 240년전에 Cincinnati Society를 창설해 지금까지도 그 후손들에 의해 이 단체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링컨대통령의 위대함도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가 노예제를 철폐하지 못 해 미국이 남.북으로 갈라졌으면, 오늘날 세계 최강의 자유민주국가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남북전쟁에서 승리한 후 링컨대통령이 "아무에게도 우리는 원한이 없고, 우리에게 오직 자비심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 후에, 패배한 남군장병 모두가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한 링컨대통령의 쾌거는 "신의 경지"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한 연유로 워싱턴에 있는 링컨기념관의 좌상(坐像)은 미국인들이 마음속에 간직하는 "황제모습"인 것입니다.
따라서 워싱톤, 링컨 두 분은 대표적인 미국건국의 아버지임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세번째는 누구일까요 ?
목가적 낭만을 추구하는 환상가로 초대 국무장관이 된 Jefferson은 빈부차이가 심하지 않은 농업국가가 민주주의 실현에 더 유리하다고 믿고, 선진 산업사회 건설에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초대 재경부장관 해밀턴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1776년 발간)의 자유시장경제를 받아드려 영국과 같이 제조업과 무역, 금융이 발전하는 선진 자본주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선견지명이 있었습니다. 그는 주정부 보다는연방정부의 권한을 강화함으로써 최강의 합중국으로 발전하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그는 또 많은 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휴지나 다름없는 독립전쟁채권(주정부가 발행)을 전액 상환함으로써 신생국임에도 미국은 채무를 반드시 갚는다는 믿음을 주어 유럽선진국의 신용을 얻고 차관도입에 어려움이 없게했습니다. 중앙은행도 설립해 근대자본주의 국가의 초석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지혜로운 워싱턴 대통령이 제퍼슨 보다는 해밀턴을 믿고 지원해 해밀턴이 신생국 민주관료제를 마련한 "행정의 신"이라는 칭송을 받게 해 주었습니다. 한참 후에 해밀턴의 근대행정이론을 일본이 배워 메이지혁명을 성공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1,000명이상 규모의 해양수비대를 창설할 때에는 그들이 주권자인 국민을 위하고 예절을 갖추는 민주경찰이 되도록 함으로써 민주관료제도의 효시가 되도록 했습니다.
그는 노예해방에도 앞장 섰습니다. 민주당을 창설한 제퍼슨은 흑인을 해방시키게 되면 아프리카등지로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해밀턴은 아예 노예제를 폐기하도록 앞장섰습니다.
해밀턴은 매디슨(후에 4대 대통령)과 함께 미국헌법 제정취지를 설명하는 Federalist Papers를 작성함으로써 미국헌법이 영속할 수 있게 하고, 미국대법원 판결에 원용되도록 한 결과 후대 지도자들의 우상이 되었고, 근대 자본주의 경제를 창시했다는 칭송을 받게 되었습니다. 미국독립을 지원하던 프랑스대사는 프랑스의 최고 영웅 나폴레옹 보다 해밀턴이 더 위대하다고 했습니다.
해밀턴의 위대한 업적을 발판으로 해서 19세기에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남.북분단을 막고, 노예제도 폐기시키자 미국은 독립후 불과 100여년 만에 세계 최대 산업국가가 되어 자유세계 선두에서 Pax Americana를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해밀턴은 미국건국의 최고영웅 3인중 하나라고 지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미국의 최고 영웅들이 천년 비젼을 가졌던 것은 우리 민족의 세계적 지도자 세종대왕, 이순신장군, 이승만, 박정희대통령과 매우 비슷하다고 봐야합니다.
[출처] 미국의 건국영웅 3인|작성자 sinatmul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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