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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북한만 아니면 간첩 아니라는 이상한 형법

鶴山 徐 仁 2024. 8. 1. 10:42

오피니언 사설

[사설] 북한만 아니면 간첩 아니라는 이상한 형법

조선일보


입력 2024.08.01. 00:30업데이트 2024.08.01. 07:39

지난 7월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조태용 국가정보원장 등이 출석한 가운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뉴스1

국군정보사 비밀 요원들 신상 정보 같은 군사기밀을 중국 동포(조선족)에게 유출한 혐의를 받는 정보사 군무원이 구속됐다. 정보사는 요원들 신상이 유출된 직후 신분을 위장해 활동하던 해외 파견 인원을 즉각 복귀시켰다. 수십년에 걸쳐 축적해온 정보 자산이 파괴될 위기에 처한 중대 사건이다.

방첩 당국은 이 군무원에게 사형 혹은 무기징역으로 처벌할 군형법상 간첩죄 대신 형량이 낮은 군사기밀 누설 혐의를 적용했다. 형법과 군형법은 간첩의 범위를 ‘적’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는 것으로 한정하고 있다. ‘적’은 북한이기 때문에 중국·러시아 같은 ‘외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것은 간첩죄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래서 10년 이하 징역·금고 처벌을 받는 기밀누설죄로 처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부분 국가는 적국이나 우방을 가리지 않고 국가 기밀을 수집·누설하는 행위를 간첩죄로 처벌한다. 미국은 미 해군에서 근무하던 재미 교포 로버트 김이 대북 정보를 한국에 알려줬다며 간첩죄로 처벌했다. 반면 우리는 중국의 비밀 경찰서 의혹을 받은 서울 중식당 운영자에게 식품위생법을 적용하는 데 그쳤다. ‘경제 간첩’도 강력 처벌해야 하지만, 간첩 범위를 북으로 한정한 법이 가로막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간첩의 범위를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법 개정을 제안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지난 21대 국회 때 간첩죄 조항을 바꾸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었다. 여야가 간첩죄 대상 확대에 큰 입장 차이가 없다. 법 개정을 늦출 이유가 없다.

민주당도 정보사 사건이 심각하다고 한다.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한 김민석 의원은 유출된 정보사 기밀이 북한으로 넘어갔을 것이라며 “의도적 유출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군사 기밀이 중국 동포를 거쳐 북으로 넘어갔고, 북한이 우리 군무원을 포섭했을 가능성이 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대공(對共)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야 하지만 현행법은 간첩수사 노하우를 축적한 국정원의 참여를 막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경찰로 넘겼기 때문이다.

국가 안보와 전략 산업을 뒤흔들 정보 전쟁이 벌어지고 우리는 그 최전선에 있는데, 법 체계는 허술하다 못해 국가적 자해(自害)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간첩죄 대상을 확대하고 대공 수사 역량을 무력화한 국정원법을 하루빨리 정상화시킬 책임이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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