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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준비하는 마지막 집... 화내던 딸이 미안해진 까닭은

鶴山 徐 仁 2024. 3. 23. 15:14

사회

아무튼, 주말

아버지가 준비하는 마지막 집... 화내던 딸이 미안해진 까닭은

[아무튼, 주말]

[최여정의 다정한 안부]

최여정 작가


입력 2024.03.23. 03:00업데이트 2024.03.23. 05:57

일러스트=김영석

“여주에 집을 지을 거야.” 묵묵히 보리굴비 가시를 발라내던 아버지가 입을 여셨다. 오랜만에 만나 점심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네? 여주요? 집을요? 지으신다고요?” 나는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모든 단어를 하나씩 쪼개어 물음표를 달아 외쳤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놀라기도 했지만, 노릇하게 구워져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굴비에게 이야기하는 듯한 그 무심한 태도에 화가 났다.

“몇 년 전부터 여주에 집 지을 땅을 보러 다녔어. 남한강 줄기를 따라 너른 평야가 펼쳐져 있어서 보기만 해도 마음이 그득한 곳이더라. 태백산맥이 마을을 감싸듯 보듬어 안고 있으니 얼마나 아늑한지. 운동 삼아 산에 다니기도 좋고. 풍수지리가 어찌나 좋은지 광주에 있던 세종대왕 묘도 여주로 이장하지 않았냐. 경강선 철도가 연결되어 서울 병원 오가기도 어렵지 않고.”

여주시청 관광과 공무원도 이처럼 애정 담은 마을 자랑은 못 하리라. 그러고 보니 계절마다 바뀌던 아버지 카톡 프로필 사진들이 떠올랐다. 고즈넉하게 눈 쌓인 세종대왕릉이며, 사람들 붐비는 여주역이며, 붉게 물든 신륵사 단풍 사진들이 파노라마처럼 하나하나 스치듯 지나갔다. 아버지는 정말 오래전부터 여주를 오가고 계셨다. “아버지 연세가 몇인데요. 곧 여든이시라고요. 지난번에도 그렇게 고생하시다가 포기하셔 놓고 또 집을 지으신다고요? 젊은 사람들도 나섰다가 다들 화병, 골병 나서 다 드러눕고 말아요.”

점점 내 언성은 높아져만 가는데 아버지는 입을 꾹 닫고는 깨끗하게 살을 발라낸 보리굴비 뼈만 뒤적이신다. 언젠가 오래전 저녁 식사 자리였던가. 망쳐버린 모의고사 성적표에 실망하시며 화를 내시던 아버지 앞에서 나도 저렇게 고개를 숙이고 애꿎은 멸치 대가리만 부수고 있었는데, 이제 부녀의 자리가 바뀌었다. “이사를 하고 싶으시면 그냥 편하게 아파트 알아보세요.” 쐐기를 박듯 하는 나의 말에 아버지가 마침내 얼굴을 들고 나를 바라보셨다. “내가 살 마지막 집이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리 알아라.”

세상에 태어나 우리는 ‘집’이라는 곳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수도 없이 이삿짐을 싸고 풀기를 반복하다가 세상을 떠난다. 그곳이 어디든 잠시나마 머물렀던 집은 사람을 닮는다. 사람도 집을 닮는다. 인문지리학자 이푸 투안은 ‘장소애(場所愛)’라는 아름다운 단어로 인간이 장소에 대해 느끼는 사랑을 말한다. 벗어나고 싶었던 곳도 한때 내가 머물렀던 이유와 의미가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쌓여 추억이 되었다면, 우리는 장소애를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집이야말로 그런 장소 아닐까. 처음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내 힘으로 얻은 작고 오래된 원룸. 몇 번이나 닦으려고 애쓰다 포기한 녹이 슨 수도꼭지를 남겨 놓고, 내 얼굴이 동그랗게 비칠 정도로 쨍한 알루미늄 수전이 달린 방 두 칸짜리 전셋집으로 옮기며 기뻐했지만, 지금도 가끔 나는 애정을 담아 그 작은 방을 떠올린다.

어느덧 인생의 막바지에 당도한 아버지가 마지막 집을 준비할 때,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내 기억 속의 첫 번째 집이 떠오른다. 부모님은 첫아이인 나와 함께 수원 매탄동의 첫 번째 아파트 단지인 매탄주공아파트에 입주했다. 그리고 곧 연년생인 남동생이 태어났고,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우리 가족은 그곳에 살았다. 그때 사진이 한 장 남아 있다.

왼손에는 한입 베어 물어 먹던 핫도그를 손에 쥐고, 카메라를 들고 있던 아버지를 향해 눈이 째지도록 웃으며 엉거주춤 발을 내딛던 나. 훗날 이사를 간 뒤에도 어쩌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하나씩 사라지는 풍경을 확인하고는 아쉬워하곤 했다. 재개발 열풍 속에 들어선 고층 아파트들은 오래된 동네 분위기를 단박에 바꿔버렸다. 이제 옛 풍경은 찾을 수 없다. 오래된 사진 속, 돌잡이 나와 함께 남아 있는 갓 칠한 페인트 냄새가 풍기는 깨끗한 벽들, 하얗고 매끈하게 빛나는 새시와 유리창을 자랑하던 아파트는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품어 안으며 부식되고 떨어져 나가더니 제 할 일을 다한 듯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의 인생처럼.

미안해요, 아버지. 당신이 사랑했던 집은 어디였나요, 한 번도 묻지 못했어요. 하얀 사과꽃 사이를 뛰어다니던 유년 시절의 과수원 집인가요, 가난하지만 꿈으로 가득했던 청년 시절의 허름한 옥탑방인가요. 그도 아니면 엄마를 만나 결혼하고, 남매를 키우며 나이 먹어가던 당신 인생의 어느 집인가요.

미안해요, 아버지.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곳이 있었나요, 한 번도 묻지 못했어요. 남매의 학교 가까운 아파트를 찾아 이사한 뒤 세 시간이 넘는 출퇴근 시간에도 불평 한번 없던 아버지, 수술 후에 다리가 불편해진 엄마를 위해 경사 없는 집을 짓겠다며 퇴근 후 늦은 밤에도 도면을 펼쳐보시던 중년의 아버지. 이제야 그 모든 집 뒤에, 가족 뒤에 그림자처럼 서 있던 아버지가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그러니 아버지. 이젠 봄이면 청보리 푸른 기운이 가득하고, 가을이면 황금 나락이 풍요롭게 넘실거리는 곳에 아버지만의 집을 지으세요. 늦었지만 아버지가 가장 사랑하게 될 집을 지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