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오피니언
지방 대학 통폐합 불 댕긴 ‘글로컬대’… 전문대도 뛰어들어[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2024-03-05 23:36업데이트 2024-03-06 12:23
올해 2차 10곳 선발 |
《‘학령 인구 절벽’과 ‘지방 소멸 위기’가 겹치며 고사 위기에 놓인 지방대를 살리고 고등교육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로 정부가 지난해부터 추진한 ‘글로컬대학’ 사업 1차 선정 대학이 발표된 지 4개월이 지났다. 선정 대학에는 한 곳당 1년에 200억 원씩 5년간 총 1000억 원이 지원된다. 전체 규모 3조 원으로 ‘단군 이래 최대 대학 사업’이라고 불리는데 지난해 11월 10곳을 선정한 데 이어, 올해와 내년에도 10곳씩을 선정해 총 30곳이 지원 대상이 될 예정이다. 》
지난해 선정된 10곳 중 4곳은 통합을 전제로 공동 신청한 대학들이다. 강원대-강릉원주대, 부산대-부산교대, 안동대-경북도립대, 충북대-한국교통대 등이다. ‘지방대 간 통합을 장려해 학생 감소에 대비하고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정부 기조에 따른 것이다. 선정 당시 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대학 상당수에선 학생과 교수 등 구성원의 반발이 쏟아졌다. 4개월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 통합 내건 대학들, 학생 간 장벽 없애기 노력
수십 년간 서로 다른 역사와 전통, 학풍을 가진 대학이 하나가 되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부산대와 부산교대의 경우 사업에 지원할 당시부터 재학생들의 반발이 거셌다. 1946년 9월 개교한 부산대는 ‘영남 최고의 대학’이란 자부심이 있었다. 1946년 설립된 부산사범학교가 모태인 부산교대 역시 ‘초등교사 양성 기관’이라는 프라이드가 높았다. 그럼에도 두 대학은 글로컬대 사업에 함께 지원하면서 학교를 통합해 신입생 감소와 지역 여건 악화, 재정난을 타개하겠다는 구상을 제출해 지원이 결정됐다.
부산대와 부산교대는 학생들의 반발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양 대학의 학생 대표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간담회를 시작했다. 물리적 통합 전 학생부터 서로 소통하고 벽을 허물어보자는 취지였다. 지난해 12월 4일 부산대에 모인 부산대 및 부산교대 학생 대표자 83명과 교직원 18명은 교육, 문화, 복지, 자치 등의 분야에서 유대를 쌓을 방안을 논의했다.
특히 학생 대표자들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서로 상대방 학교의 수업을 수강한 뒤 소감을 나누고, 양 대학 학생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축제를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다. 기존 부산대에서 해온 해외 봉사 프로그램에 부산교대 학생도 팀을 꾸려 참여하고, 각자 대학 신입생을 상대방 대학에 데려가 캠퍼스 투어를 시키자는 제안도 있었다. 일부 아이디어는 추진이 결정됐고 일부는 검토 중이지만, 학생 대표들이 거듭 만나면서 초반보다는 반발이 한층 줄었다는 평가다.
글로컬대 사업을 계기로 학교가 대대적인 투자에 나선 곳도 있다. 포스텍(포항공대)은 올 1월 30일 이사회에서 ‘포스텍 2.0’이란 명칭으로 ‘제2의 건학’ 추진안을 의결했다. 글로컬대 선정으로 지원받는 교육부 예산 1000억 원에 법인 추가 투자금 등을 더해 총 1조2000억 원을 2033년까지 포스텍 2.0에 쏟아붓기로 한 것이다. 그중 3160억 원은 교원 및 연구 혁신에, 1180억 원은 학생 및 교육 혁신 분야에 투자할 계획이다. 추진안에는 재학생이 소속 학과와 무관하게 다양한 전공을 이수해 학과 간 경계를 없앨 수 있는 ‘오픈 커리큘럼’ 도입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정부 주도의 대학 지원 사업이 대학 자체의 대규모 투자로 이어진 것이다.
● 올해는 전문대도 뛰어들어
지난해 글로컬대 선정에 실패한 대학들은 올해 ‘재수’에 사활을 걸고 있다. 또 지난해의 경우 상대적으로 경쟁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전문대들도 뛰어들며 경쟁이 한층 가열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부산 지역의 경남정보대, 대동대, 동의과학대, 부산과학기술대, 부산경상대, 부산보건대, 부산여대, 부산예술대 등 8곳은 올해 글로컬대 사업에 전문대 연합대학 형태로 참여하겠다고 발표했다. 4년제 대학 없이 전문대만으로 글로컬대 컨소시엄이 꾸려진 것은 처음이다. 이들 부산 8개 전문대 연합을 모두 더하면 총 신입생 정원 7700여 명, 재학생 2만4000여 명에 달한다.
이런 연합이 가능했던 건 지난해 ‘단독대학’과 ‘통합대학’ 유형만 응모할 수 있게 한 교육부가 올해부터는 ‘연합대학’ 유형도 지원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국립대와 비교하면 사립대는 각자 재단이 있기 때문에 학교끼리 통합이 쉽지 않다. 대학을 통합하려면 재단이나 사학 법인도 통합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글로컬대 사업에선 통합을 내건 국립대들이 대거 선정됐는데, 이후 사립대를 중심으로 “통합까진 어렵지만 그래도 복수의 사립대가 함께 글로컬대 사업에 지원할 수 있도록 신유형을 신설해 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다만 교육부는 통합대학과 연합대학 유형에는 지원금에서 차이를 두기로 했다. 글로컬대는 기본적으로 선정된 대학 한 곳당 5년간 총 1000억 원을 지원하는데, 두 곳 이상이 함께 응모한 통합대학 유형에는 평균 1500억 원을 준다. 반면 연합대학은 참여 대학 수에 관계없이 총 1000억 원을 지원해 공동으로 신청한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나누도록 했다. 예를 들어 부산 8개 전문대 컨소시엄이 사업을 따낸다면 이들이 1000억 원을 내부적으로 배분해 사업을 수행하는 식이다.
전문대 컨소시엄은 학생들의 취업과 직업 교육에 강점이 있다는 점을 내세우며 4년제 대학과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대학 8곳이 통합 직업 교육 플랫폼을 구축하고 지역 사회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여기에 광역지자체인 부산시의 지원까지 더해지면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지역 사회에서 나온다.
● 지자체도 사활… ‘속도 조절’ 필요 지적도
교육부의 대학 사업에 관심이 크지 않았던 지방자치단체들도 ‘글로컬대 수주전’에는 사활을 걸고 있다. 지원금 규모가 크다 보니 지역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김태흠 충남도지사는 올 1월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충남도청에서 만나 “대전과 세종, 충남은 인구가 400만 명에 달하는 만큼 한 곳 정도는 선정됐어야 했다”며 지난해 선정 결과에 불만을 드러냈다. “우리는 다들 화가 많이 나 있다”고까지 했다. 김 지사는 이후 도내 대학 총장들을 만난 간담회 자리에서 “뼈를 깎는 대학 혁신을 추진하고 올해 글로컬대 공모에 재도전해 줄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글로컬대 사업이 내실 있게 추진되기 위해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부설 고등교육연구소는 지난달 발간한 ‘2023 고등교육 현안 정책 자문·분석 자료집’에서 “최근 통합 추진 대학이 글로컬대 선정에 유리하다는 말이 나오는데 사업 기간 내 통합을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는 기준이 성급하고 불완전한 통합을 촉진할 수 있어 우려된다”며 “대학 통합이 개별 대학과 고등교육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정부가 명확히 이해하고 장기적·거시적 관점에서 일관된 정책적 접근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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