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흔한 외식 한번 없었다, 일기장에 비친 노인의 70년
2023.04.25
에디터김새별
김새별
유품정리사 또는 특수청소부라고 불린다. 2009년부터 고독사, 자살, 범죄 피해 현장의 유품 정리와 특수 청소를 하고 있다. 삶의 의지를 놓아버리거나 도태되는 많은 이들의 사연을 알리고자『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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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다녀온 곳은 고인의 조카가 의뢰한 현장이었다.
고인은 사후 한 달여간 방치되어 있었고, 악취 때문에 신고가 들어와 발견되었다. 경찰이 고인의 가족을 수소문한 끝에 찾아낸 이가 조카였다. 그는 고인과 왕래를 하면서 지낸 사이는 아니라고 했다. 고인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다만 그는 내게 고인이 일흔이 되도록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자신이 고인에 대해 아는 전부라고 했다.
고인은 가족과의 소통조차 일절 없이 고독하게 살다가 고독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노인 여성의 집에는 대체로 살림살이가 많다. 고인의 집도 마찬가지였다. 정리된 곳 없이 어수선했다. 그러나 고인이 살아생전 정리를 않고 살아간 흔적은 아니었다. 누군가 고인의 유품을 직접 찾아본 흔적이었다. 아무리 너저분하게 사는 사람이라도 젊은 날 찍은 오래된 사진들을 방바닥에 던져놓고 살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배달음식 용기와 택배 박스가 사방에 널린 쓰레기집에 사는 사람들도 소중한 물건들은 수납장에 보관한다. 아마도 조카가 고모의 소식을 듣고 이미 유품을 찾아간 듯했다. 그래도 혹시나 전달해야 하는 물건이 있을지 꼼꼼히 확인하면서 유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고인은 젊은 날부터 쉬지 않고 일한, 아주 성실한 사람인 듯했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자격증이 수두룩했다. 아주 오래전에 취득한 조리사 자격증이 있었고, 최근까지 식당에서 일을 해왔다. 고인은 이런 사실을 모두 일기장에 적어두고 있었다. 칠순의 노인이 일기를 쓰고 있었다니…, 나도 모르게 계속 읽게 되었다.
고인은 젊은 날부터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별다른 취미 생활도 없었고, 그저 혼자였다. 돈을 벌어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것만 생각했다.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았고, 그 덕에 아주 긴 세월이 걸리긴 했지만 아파트도 장만했다.
술과 담배는 고인의 유일한 친구인 듯했다. 하루에 담배를 한 갑 반 피웠고, 2~3일에 한 번씩 소주를 마셨다. 그는 그날그날 무엇을 먹었는지, 무엇을 샀는지 달력과 수첩에 모두 기록해 두었다.
셔터스톡
그러던 어느날 그는 갑자기 쓰러졌다. 가족이 없었기에 홀로 죽어갔다. 그리고 한 달 동안 누구도 그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왕래하는 가족이 없었고, 소통할 타인이 없었기에 그의 부재를 걱정하는 사람도, 죽음을 슬퍼해 줄 사람도 없었다. 누군가는 ‘그래도 형제자매가 있다면 슬퍼하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수십 년간 연락하지 않은 사이라면 남이나 다름없다. 남은 정도, 죽음을 슬퍼할 마음도 긴 시간 속에서 메말라버린다.
무엇 때문에 고인이 혼자만의 삶을 살게 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꼼꼼한 고인의 기록 속에는 과거의 이야기나 사연은 없었다. 얼마나 성실하게 살아왔는지만 적혀 있을 뿐이었다.
고인에게 안정적인 삶이란 무엇이었을까. 그는 일흔이 되도록 하루도 편히 쉬지 않았다. 여행 한 번 가지 않았고, 외식도 하지 않았다. 끼니를 거르진 않았지만,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아온 것일까.
시한부 선고를 받은 자가 아닌 이상, 누구나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 고인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자신이 이렇게 돌연사할 줄 알았다면 그의 삶은 조금이라도 달랐을까.
타인과의 관계가 전무했던 고인의 인생이 너무나 고독하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사람 때문에 생을 놓아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어떤 사람도 없었고, 그것이 그의 삶을 더욱 공허해 보이게 만들었다. 그의 방식이 옳은지 그른지 나는 판단할 수 없다.
고인의 유품을 정리한 사람으로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그의 삶은 마지막까지 고독했다는 것이다.
희로애락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한 사람의 인생을 지우는 작업은 참으로 공허한 작업이었다. 새삼 “이것이 고독사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고독사는 다른 말로 절망사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번 현장은 절망스럽지는 않았다. 그저 지독하게 고독한 고독사였다.
어느 유품정리사의 기록 |
에디터
특수청소부
유품정리사 또는 특수청소부라고 불린다. 2009년부터 고독사, 자살, 범죄 피해 현장의 유품 정리와 특수 청소를 하고 있다. 삶의 의지를 놓아버리거나 도태되는 많은 이들의 사연을 알리고자『떠난 후의 남겨진 것들』을 출간했다. 유튜브 채널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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