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의 슬픔...몸을 태워 저항하는 사람들
조선일보
입력 2023.03.11 09:00업데이트 2023.03.11 09:01
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69회>
<티베트족 아이들. 사진/Erik Törner>
2022년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26세 가수, 81세 유목민 마을 주민의 분신
체왕 노르부(Tsewang Norbu, 1996-2022)는 티베트족 가수이다. 티베트 자치구 나그취(Nagqu, 那曲)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2014년 광둥 지방의 위성 TV의 음악 쇼에 출연하여 피아노를 치며 티베트 가요를 불러 큰 인기를 끌었다. 2017년에는 텐센트 비디오(Tencent Video)가 주관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전국 9위까지 올랐다. 2021년까지 그는 여러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성공적인 가수 경력을 이어갔는데······. 2022년 2월 25일, 결혼하여 딸을 하나 둔 26세의 체왕 노르부는 라싸의 포탈라궁(宮) 앞에서 구호를 외치며 스스로 몸에 불을 질렀다. 라싸의 티베트 자치구 인민 병원으로 옮겨져서 신음하다가 3월 첫째 주 숨을 거두었다.
<2019년 뮤직비디오에서 티베트어로 노래하는 체왕 노르부(Twewang Norbu)의 모습. https://www.youtube.com/watch?v=3gv-caAs7MM&ab_channel=YarthokTenzin >
2022년 3월 27일 81세의 타푼(Taphun)은 쓰촨성 티베트 자치주의 사찰 앞에서 스스로 몸을 불살랐다. 아바(阿壩, Ngawa)티베트족·창족(羌族) 자치주의 한 유목민 마을에서 살던 타푼은 평소 티베트족에 대한 중국 정부의 억압을 규탄했다. 80세 생일 그는 “달라이 라마의 축복으로 행복의 태양이 티베트를 비추리니, 젊은이들은 낙심하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지난 14년 줄곧 이어진 티베트인 분신의 긴 행렬에서 두 사람은 각각 157번째, 158번째의 인물이었다. 2000년대 첫 번째 분신은 2009년으로 소급된다.
2009년 이래 159명 분신, 티베트족의 처절한 저항
중국 쓰촨성 서북부에 위치한 아바(阿壩, Ngawa)티베트족·창족(羌族)자치주. 8만 3천 제곱킬로미터의 초목 지대엔 대략 92만 티베트족과 창족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1472년에 세워진 키르티(Kirti Compa, 格尔登寺) 사원은 이 지역 티베트 불교의 성지다. 이 사찰에는 거대한 불상과 함께 30미터 높이의 흰색 사리탑이 세워져 있다. 2011년 3월까지도 이 사찰엔 2500여 명의 승려가 수도하고 있었는데, 2008년부터 불어닥친 검거 열풍으로 많은 승려가 잡혀가고, 현재는 600여 명만 남았다고 한다.
<중국 쓰촨성 아바 자치주 키르티 사원의 사리탑. 사진/wikipedia.org>
2009년 2월 27일 키르티 사원에서 20대 중반의 승려 타페이(Tapey)가 기름을 부은 몸에 스스로 불을 붙였다. 마지막 순간 그의 손에는 직접 만든 티베트 깃발이 들려 있었다. 깃발의 중앙에는 달라이 라마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불길이 타오를 때 타페이는 구호를 외쳤지만, 그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 다음 순간 무장 경찰이 타페이를 향해 발포했고, 타페이는 그 자리에서 즉각 쓰러졌다. 경찰은 타페이의 몸에 붙은 불을 끈 후 곧바로 그를 끌고 갔다.
2년 후, 2011년 3월 16일 바로 그 키르티 사원의 20세 승려 푼트소그(Phuntsog)가 또 분신했다. 그날은 10명의 티베트 승려가 총격당해 사망한 2008년 키르티 사원 시위 3주기였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경찰이 곧 달려와서 황급히 불을 끄고는 죽기 전까지 푼트소그를 무차별 구타했다. 다른 소식통에 따르면, 티베트 승려들이 몰려와서 구타당하는 푼트소그를 사원으로 데려갔는데, 중공 매체는 승려들이 그를 병원에서 빼내 갔다고 모함했다.
그 후 충격적인 분신의 행렬이 이어졌다. 2011년에만 12명, 2012년 84명, 2013년 27명, 2014년 11명이 분신했다. 집계하면 2009년 이래 티베트에서는 159명이 분신했다. 그중 남자는 131명, 여자는 28명이다. 26명은 18세 이하의 청소년이다. 아바 자치구의 키르티 사원의 승려들만 25명이 분신을 이어갔다.
이상의 내용은 미국 워싱턴 디시에 소재한 “티베트를 위한 국제 운동(International Campaign for Tibet)” 본부의 홈페이지에 게재돼 있다. 이 사이트에는 2009년 이래 분신한 158명의 인적 사항, 사건 당일 행적, 논란거리 및 파급 효과를 하나하나 상세하게 정리해 놓았다.
[티베트를 위한 국제운동이 밝히는 티베트인의 분신 상황]
분신은 인도의 티베트인들에게로 이어졌다. 2012년 3월 26일, 중국공산당 총서기 후진타오의 인도 방문을 앞두고, 수도 뉴델리에서 26세의 잠파 예시는 온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인 후 몸을 태워 치솟는 불길을 이고 45미터 정도 거리를 달려가며 저항의 절규를 내뿜었다. 생생한 분신의 장면을 찍어서 보도한 뉴욕타임스는 “말 그대로 불타는 인간 성화”라 칭했다.
<2012년 3월 26일 인도에 살고 있는 티베트인 잠파 예시(Jampa Yeshi, 26세)는 뉴델리에서 후진타오의 인도 방문을 규탄하면서 스스로 분신했다. 사진/Manish Swarup/Associated Press, New York Times>
<2012년 3월 26일 인도에 살고 있는 티베트인 잠파 예시(Jampa Yeshi, 26세)는 뉴델리에서 후진타오의 인도 방문을 규탄하면서 스스로 분신했다. 사진/Manish Swarup/Associated Press, New York Times>
티베트인이 분신하는 이유... 강력한 비폭력적 저항 표현
중국 군경의 폭력에 대적할 수 없는 티베트 사람들은 이처럼 극렬한 항의와 장중한 저항의 방법으로 스스로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놓아 통째로 바치는 소신공양(燒身供養)을 선택한다. 분신한 티베트인들은 소신공양이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타인에 대한 비폭력을 실천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저항의 의지를 표명하는 최선의 방편(方便)이라 믿는다. 아트만(ātman, 自我)의 윤회전생을 확신하고 아나타(anatta, 無我)의 니르바나(nirvana, 해탈)를 지향하기에 그들은 지고의 가치를 위해 육신을 봉헌할 수 있다.
라싸에서 태어나고 쓰촨성 서부에서 자라 유려한 중국어로 작품을 쓰는 티베트 출신 작가 체링 우에세르(Tsering Woeser, 1966- )운 49명의 분신자가 남긴 서면 선언문, 녹음, 가족이나 친지에 남긴 유언 등 49개의 최후 선언문을 채집해서 그 내용을 분석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49명 중 15명(37%)이 티베트인의 궐기를 촉구했고, 12명(30.4%)이 달라이 라마를 위해 기도했다. 12명(28.3%)은 티베트인으로서의 책임과 용기를 언급했고, 11명은 티베트의 민족적 정체성과 연대를 부르짖었다. 열 명(21.7%)은 티베트 독립을 선언했으며, 중국공산당 정부를 규탄하고 변화를 촉구한 사람이 9명(19.6%)이었다. 이 밖에도 “더는 견딜 수 없다”(17.4%)나 “티베트어를 지키자”(13%) 등의 구호도 있었다.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원을 요청하는 내용은 3건으로 6.5% 정도였다. (Tsering Woeser, Tibet on Fire, chapter 2).
최후 선언문을 분석하여 체링 우에세르는 다음 아홉 가지 결론을 내린다.
1. 분신은 저항의 방법이다.
2. 분신은 행동의 수단이다.
3. 분신은 종교적 헌신이면서 동시에 중공 정부에 대한 항의다.
4. 분신은 티베트 사람들의 정신적 의지와 힘을 표현하려는 의도이다.
5. 그들의 저항은 티베트족의 민족적 정체성과 단결을 강화하려는 의도다.
6. 티베트 독립이 핵심적 주제다.
7. 분신은 단지 절망의 표현이 아니다.
8. 사라지는 티베트어의 보존이 주요한 주제 중 하나다.
9. 티베트의 티베트족은 단지 국제적 지원과 관심을 끌기 위해 투쟁하지 않는다. (같은 책, chapter 2).
티베트의 슬픈 역사...19세기 후반 실질적 독립 상태서 1951년 점령돼
평균 해발고도 4380미터로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티베트고원은 서쪽으론 히말라야산맥을 끼고 동쪽으로 중국 서남부 내륙까지 펼쳐진 광활한 고산 지대이다. 총면적이 2백 50만 제곱킬로미터로 한반도의 11배에 달하는 큰 영토이다. 본래 티베트족은 현재 중국의 티베트 자치구뿐만 아니라 칭하이(靑海) 간쑤(甘肅), 쓰촨(四川), 윈난(雲南) 지역에 널리 흩어져 살았다. 이 두 지역을 합쳐서 “다짱취(大藏區),” 곧 “거대한 티베트족 지구”라 부른다.
<전통적으로 티베트족이 거주하던 ‘역사적 티베트(Historical Tibet)’는 현재의 티베트 자치구뿐만 아니라 칭하이(Qinghai), 간쑤(Gansu), 쓰촨(Sichuan), 운남(Yunnan)의 일부 지역을 포함하는 광활한 영토였다. 1950년 중국공산당이 이 지역을 점령한 후 티베트를 동서로 나누어 서쪽 절반만 티베트 자치구로 정했다. http://www.skillsphere.org/global-jigyasas/chinas-atrocities-in-tibet/>
티베트는 1720년 청(淸) 제국에 복속되었으나 19세기 후반 무렵엔 이미 실질적인 독립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1911년 민국(民國)혁명으로 청 제국이 붕괴하자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의 독립을 선언했다. 1951년 중국공산당에 점령되기까지 거의 40년간 티베트(1912-1951)는 독립적인 불교국으로 남아 있었다. 1950년대 초반 중국공산당이 그 지역을 점령한 후, 서쪽 절반만 잘라서 “티베트 자치구”로 삼고, 동쪽 절반은 칭하이, 간쑤, 쓰촨, 윈난성에 떼어주었다.
현재 전 세계에는 670여만 명의 티베트인들이 살고 있다. 그중 630만 명이 중국에 살고 있고, 나머지 40만 명은 인도(18만 2천여 명), 네팔(2~4만여 명), 미국(1만여 명), 캐나다(9천3백여 명), 스위스(8천여 명)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티베트 자치구에 270여만 명, 쓰촨성에 약 150만 명이, 칭하이성에 137만 5천여 명, 간쑤성에 약 49만 명, 윈난성에 14만 2천여 명이 거주한다.
670만 티베트인들은 중국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오늘의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2011년 11월 3일 키르티 사원의 주지승 키르티 린포체(Kirti Rinpoche)는 미국 하원의 탐 랜토스(Tom Lantos) 인권위원회에서 계속 티베트인들이 분신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2011년 미국 백악관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강연하는 키르티 린포체(Kirti Rinpoche). 사진/zh.wikipedia.org>
“중국공산당이 강점하기까지 티베트는 독립국이었습니다. 강점 이후 이미 반세기가 지났지만,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습니다. 초기 중국이 티베트인들에게 약속했던 소위 민주적 개혁은 무지개처럼 사라지고, 대신 티베트인들을 억압하는 정책만을 시행해 왔습니다. 중국 당국은 초창기 약속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음을 모르는 척하며 어떤 긍정적 정책도 시행하지 않습니다. 지방의 공산당 간부들은 종교적 자유를 침해하고, 농장과 목축 생산물을 강탈하는 억압적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그들은 갖은 악법을 쓰고 있습니다. 법적 처벌은 이제 돈벌이 수단이 되었습니다. 정의에 대한 희망은 사라졌고, 티베트의 젊은이들은 절망에 빠져 있습니다.”
“티베트는 소위 자치구와 자치성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일면 좋게 들리고, 마치 자유로운 정치 체제 같기도 하죠. 그러나 실상 티베트인들은 보통 중국인이 누리는 권리도 갖지 못합니다. 맹목적 한족-애국주의자 혹은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은 티베트인들을 궁지로 몰고 갔습니다. 한족은 교육받지 못해도 간부가 될 수 있습니다. 중국 정부 내에서 일하는 극소수의 티베트인들은 최소한의 신뢰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인종 차별을 증명합니다. 만약 중국의 영수들이 달라이 라마가 제시했던 중도 정책을 수용했더라면, 티베트인과 중국인은 지금쯤 과거 티베트의 위대한 법왕(法王)들이 지배하던 시대처럼 상호 동등한 관계를 유지했을 것입니다.”
이어서 그는 1935년대 중국공산당이 아바 지역을 처음 점령한 이후 200년대까지 3세대에 걸쳐 자행해온 폭력과 만행의 역사를 고발했다. <계속>
[키르티 린포체의 진술]
#송재윤의 슬픈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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