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오피니언
한 해의 끝자락에서[이준식의 한시 한 수]〈193〉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입력 2022-12-30 03:00 업데이트 2022-12-30 03:23
하늘 끝에 머무는 나그네들이여, 가벼운 추위인데 뭘 그리 걱정하시오.
봄바람은 머잖아 찾아오리니, 바야흐로 집 동쪽까지 불어왔다오.
(寄語天涯客, 輕寒底用愁. 春風來不遠, 只在屋東頭.)
―‘제야, 태원 땅의 극심한 추위(제야태원한심·除夜太原寒甚)’ 우겸(于謙·1398∼1457)
한 해의 끝자락에서 돌아보는 삶의 모습. 허공에 뜬 풍선처럼 아슬아슬 한 해를 건너온 이들, 거침없이 앞으로만 내달려온 이들, 지루하고 맨숭맨숭한 나날에 지친 이들. 세밑이 되도록 객지를 떠돌아야만 하는 시인의 노스탤지어도 그중의 하나이겠다. 발상이 좀 유별나긴 하지만 씁쓸한 타향살이에도 아랑곳없이 시인은 따스한 봄바람을 예감하며 희망과 위로를 얻으려 한다. 그 마음을 또 타향을 떠도는 세상 모든 나그네들과 함께하려 한다. 시제에는 ‘극심한 추위’라 써놓고 정작 시에서는 ‘가벼운 추위’이니 걱정 말라고 한다. 꽁꽁 언 겨울을 녹이는 봄바람이 이제 우리 가까이 다가와 푸근한 새해를 선사하리라 낙관한다. 섣달그믐에 봄바람을 끌어들인 게 좀 억지스럽긴 해도 음력 날짜로 따져서 그렇지, 봄이 들어서는 2월의 입춘(立春)과는 그리 먼 거리도 아니다.
남녘 고향 항저우(杭州)를 떠나 산시(山西)성 등 북방 지역을 떠돌았던 시인. 매서운 한파에 더하여 객지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심사가 오죽 스산했으랴. 그래도 세밑이 되면 너나없이 소심해지고 너그러워지는 게 우리네 마음. 출발선에서 다짐했던 무수한 결심과 언약을 되짚어 보면서 괜히 날 세우며 지나온 자신을 부끄러워하기 마련이다. ‘송년에 즈음하면/갑자기 철이 들어 버립니다/일년 치의 나이를 한꺼번에 다 먹어져/말소리는 나직나직 발걸음은 조심조심/저절로 철이 들어 늙을 수밖에 없습니다.’(유안진, ‘송년에 즈음하면’) ‘갑자기 철이 드는’ 세밑의 경험이 있다는 것,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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