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벌벌 떠는 하이마스, 문제는 포탄 물량…한국에 던져진 고민 [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입력 2022.10.07 05:00 업데이트 2022.10.07 13:36 업데이트 정보 더보기
현 시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양상을 하나의 단어로 정의하면 ‘장기 소모전’이다. 3월 25일(이하 현지시간), 러시아가 전쟁의 목표를 우크라이나 전체에서 동·남부로 조정함으로써 전투의 양상은 ‘기동전’에서 ‘소모전’으로 변했다. 9월 21일 러시아의 부분 동원령 선포를 계기로 전쟁이 ‘단기전’의 희망은 사라지고 ‘장기전’이 기정사실화했다.
우크리아니군이 2S7 피온 203㎜ 자주포를 쏘고 있다. 이 자주포는 냉전 시대 옛 소련이 생산했고, 러시아군의 주력이기도 하다. 아날로그 사격통제체계가 장착도 효율성이 낮다 .로이터=연합뉴스
장기 소모전에서는 ‘포병 화력’이 핵심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선, 현대 전장에서 전·사상자의 대부분은 포병 화력에 의한 것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군 사상자의 58%,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 사상자의 70%, 6.25 전쟁에서 미군 전사자의 66%가 포병에 의한 피해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특성이 이런 추세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쌍방이 모두 확실하게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고밀도 방공무기가 공군력 운용을 제한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첨단 항공기와 정밀탄약, 미사일 등이 이미 상당 부분 소진됐다. 결국 전쟁이 장기화하고, 지상전투 중심으로 전개될수록 포병 화력의 중요성은 더욱 증대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공세에 기반을 제공하다
7월, 영국 합동군사연구소(RUSI)는 러시아군의 일일 포병 사격발수를 2만발로 분석했다. 8월, 우크라이나 총사령관 발레리 잘루즈니는 “러시아 포병이 하루 4만~6만발을 사격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반면, 이 기간 동안 우크라이나의 일일 포병 사격발수는 약 6000발에 불과했다. 쌍방의 포병사격 발수를 비교해보면 최소 3배에서 최대 10배까지 격차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 수 있다.
러시아군이 그라드 다연장 로켓을 사격하고 있다. 사진 러시아 국방부
결국, 우크라이나군의 전·사상자가 급증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됐다. 6월 9일,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 올렉시 레즈니코프는 "최전선의 상황이 어렵다. 하루 전사자 100명, 부상자가 500명까지 증가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기존에는 일일 사상자가 약 100명 미만이었음을 고려하면, 6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위기는 서방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포병무기를 지원하면서 반전됐다. 155㎜ 자주포 및 견인포 4종
(Krab·CEASER·M777·FH70) 약 150문, 대구경 다연장로켓 2종(HIMARS·M270A1) 약 50문이 지원되었다. 서방국가의 포병무기는 양적으로는 적었으나, 질적으로 러시아군을 능가했다. 다량의무유도 탄약 및 소량의 유도탄약(GPS+INS 항법장치 장착) 병행 운용, 실시간 표적획득 능력, 디지털화한 사격통제장치, 첨단 네트워크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격차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분야가 ‘대(對) 화력전’이었다. 포병으로 포병을 파괴하는 방식이다. 이는 실시간 표적획득, 신속하고 정확한 사격, 즉각적인 진지변환 능력이 핵심이다. 6월 말부터, 우크라이나군은 하이마스 다연장로켓 등을 활용하여 러시아 포병 및 탄약 저장시설 200여 개소를 파괴함으로 대 화력전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7월 말, 우크라이나 제93기계화보병여단 지휘관은 하르키우 지역의 러시아군 포병 사격을 10분의 1로 감소시킬 수 있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상대의 포병을 파괴하는 것은 적의 지상군에게 보다 큰 피해를 강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투의지까지 약화하는 이중효과가 있다. 9월 초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군의 공세는 이러한 포병화력의 운용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우크라이나 공세의 범위·강도·기간을 좌우
7월, 러시아 의회는 군수업체 노동자에게 초과 근무와 야근, 휴일 근무를 강제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또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측근인 데니스 만투로프 산업부 장관이 부총리 직책을 겸하도록 했다. 전쟁이 장기화함에 따라 군수장비 및 물자 생산을 독려하기 위한 조치로 판단된다.
9월 6일, 미국 정부는 “러시아가 포병 탄약 수백만발을 북한으로부터 구매하려 한다”는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약 2주 후, 북한은 러시아에 무기와 탄약을 수출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 없음을 강조했다. 일부 언론은 러시아가 벨라루스와 시리아로부터 포병 탄약을 회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폴란드의 AHS Krap 155㎜ 자주포는 한국의 K-9 차체에 영국제 포탑 , 프랑스제 주포 등을 통합해 만들었다. 일부 수량이 우크라이나에 제공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를 종합하면, 러시아가 군수 장비 및 물자의 증산에 돌입한 것은 분명하다. 포병 탄약이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제재로 취약해진 생산설비, 부품 부족 등을 고려하면 최소 1년 이상이 지나야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러시아군이 포병 탄약의 보급에 어려움을 절감하는 시기는 올겨울부터 내년 봄이 될 가능성이 높다. 10월 초, 러시아군이 동부 도네츠크주의 리만과 남부 헤르손주의 두차니를 순식간에 피탈당한 것은 이러한 시기가 더욱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음을 의미한다. 러시아 군사지도자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한편, 미국이 8월 24일까지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155㎜ 포병 탄약은 80만 6000발에 달한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1조원(1발당 120만원)이다. 더욱이, 하이마스 다연장로켓(1발 당 무유도 약 5000만원, 유도 약 2억원)을 포함하면 약 2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이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군사 장비 및 물자의 총액 14조원에서 15%를 차지할 정도로 대규모다.
6월 9일,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 올렉시 레즈니코프는 “(서방국가 화포) 155㎜ 탄약의 확보 물량이 구(舊)소련 화포(152㎜ 이상)의 전쟁 이전 비축량보다 10% 이상 많다”고 설명했다. 당시, 그가 밝힌 155㎜ 화포 보유량은 150문이었다. 우크라이나가 보유한 구소련 152㎜ 이상 화포가 740문(『2022년 밀리터리 밸런스』)이었음을 고려하면, 화포 1문당 포탄의 비축량은 5배 이상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2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우크라이나군이 운용하던 구소련 포병 무기의 탄약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2014년 시작한 돈바스 분쟁에 오랫동안 사용해 왔고, 친 러시아 반군에 의해 파괴된 물량, 그리고 러시아 침공 초기에 집중적인 사용으로 결과이다. 화포는 있으나 탄약 공급이 어려워 운용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둘째, 155㎜ 포병 탄약의 가용 정도에 따라 우크라이나군의 작전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통상, 전투 강도에 따라 화포 1문이 일일 발사하는 탄약의 양은 80~100발(고), 40~60발(중), 10~20발(저)로 가정할 수 있다. 155㎜ 화포 약 150문과 포병 탄약 약 80만 6000발을 고려하면, 격렬한 전투에서는 60일(2개월) 동안 사용할 수 있고, 중간 강도의 전투에서는 약 108일(3.5개월)이 가능하다. 향후, 우크라이나군의 공세도 포병 탄약의 가용 수준에 따라 범위·강도·기간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의 포탄 재고 및 생산능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8월 2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55㎜ 포탄 재고량이 불안할 정도로 낮은 상태이고, 증산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도 “하이마스 다연장로켓이 매우 효과적이지만, 탄약 소모율이 문제가 될 것이다.”라고 우려를 드러낸 바 있다.
미래 전쟁에 대한 성급한 일반화는 위험하다.
미래 전쟁에 대한 일반적 이미지는 ‘신속하고 결정적인 전투, 소규모의 사상자, 단기간에 전쟁 종결’이다. 1991년의 걸프 전쟁과 2003년의 이라크 전쟁 등이 영향력을 발휘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군사력의 질적·양적 측면에서 현격한 세대 차이가 존재할 때만이 가능한 전쟁방식일 수도 있다.
미국의 국방예산은 부동의 세계 1위이다. 2~10위까지 9개 국가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정밀타격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과 충분한 수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전쟁의 향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많은 수량의 정밀타격 무기 및 탄약을 보유할 수 있는 나라가 미국 외에 누가 있을까. 미래 전쟁에 대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크라이나군이 미국이 지원한 M777 155㎜ 견인포를 쏘고 있다. AP=연합뉴스
반면, 우크라이나·러시아처럼 현대화 정도가 비슷한 국가 사이의 대규모 전쟁은 ‘장기 소모전’에 빠져들기에 십상이다. 개전 초기, 러시아의 양적 우위는 서방국가의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상쇄됐다. 문제는 6개월 혹은 1년 이상 장기간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탄약을 평시부터 보유할 수 있는 나라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영국 합동군사연구소(RUSI)는 미국조차도 ‘연간’ 포병 탄약 생산량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10~14일’간 사용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에게 현실적인 교훈을 제공하고 있다. 고가의 정밀탄약과 재래식 비(非) 정밀탄약을 어느 정도 비율과 수준으로 확보하는 것이 적절한지, 산업동원시스템은 잘 준비되어 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 우방국과 군수지원협정을 통해 전쟁지속 능력을 향상하는 방안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방종관 한국국방연구원 객원연구원ㆍ예비역 육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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