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왕들 왕하 24:1-20
07월 20일 (수)
마지막 왕들 왕하 24:1-20
1.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 년간 섬기다가 돌아서 그를 배반하였더니
2.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 3.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들을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 때문이며 4. 또 그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그의 피가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 5. 여호야김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6. 여호야김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7. 애굽 왕이 다시는 그 나라에서 나오지 못하였으니 이는 바벨론 왕이 애굽 강에서부터 유브라데 강까지 애굽 왕에게 속한 땅을 다 점령하였음이더라 8. 여호야긴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석 달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느후스다요 예루살렘 엘라단의 딸이더라 9. 여호야긴이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10. 그 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신복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그 성을 에워싸니라 11. 그의 신복들이 에워쌀 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도 그 성에 이르니 12.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그의 어머니와 신복과 지도자들과 내시들과 함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왕이 잡으니 때는 바벨론의 왕 여덟째 해이라 13. 그가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또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여호와의 성전의 금 그릇을 다 파괴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14. 그가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지도자와 모든 용사 만 명과 모든 장인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비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 15. 그가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왕의 어머니와 왕의 아내들과 내시들과 나라에 권세 있는 자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16. 또 용사 칠천 명과 장인과 대장장이 천 명 곧 용감하여 싸움을 할 만한 모든 자들을 바벨론 왕이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17. 바벨론 왕이 또 여호야긴의 숙부 맛다니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 시드기야라 하였더라 18. 시드기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일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요 립나인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19. 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20.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심이 그들을 그 앞에서 쫓아내실 때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들을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 때문이며>(3절).
이 24장의 특징은 B.C. 605년경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팔레스틴에 진출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여 느부갓네살이 죽던 해까지의 유다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 장의 주인공은 하나님이 유다 심판의 막대기로 사용하신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라 볼 수 있습니다. 실제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을 통해 남왕국 유다를 철저하게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또한 예언의 성취를 암시하는 구절들이 많습니다. 그런가 하면 처음과 끝이 모두 <배반>으로 일관되는데 이러한 유다의 배반은 곧 하나님의 섭리에 기인한 것으로 이를테면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을 심판의 막대기로 사용하기 위해 배반을 허용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본문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바는 ① 성도들은 징계를 당하는 때일수록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야긴은 자기 부친 여호야김의 종말을 다 목격했음에도 그와 똑같은 전철을 밟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그래서 그 자신도 그의 부친과 동일하게 포로생활을 해야 했을 뿐 아니라 무려 37년 동안 온갖 수모 속에서 지내야만 했던 것입니다. ②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서는 끝까지 인내해야 하며 그것을 인위적으로 거부할 때에는 보다 더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나 어리석게도 하나님이 회개를 촉구하시기 위해 주시는 징계를 거부할 때에는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③ 환난 시에는 하나님을 바라봐야지 인간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시드기야는 바벨론의 속국이 되는 것을 애써 거부하려 했을 뿐 아니라 이방 나라의 충고를 듣고 바벨론을 배반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애굽의 지원에 더 의지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결국은 회개의 마음을 얻지 못한 채 멸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의 매로 채찍질하실수록 마음을 더욱 하나님께로 향해 회개함과 더불어 모든 잘못을 고백해 구원을 얻어야 복되다는 것입니다. - 남왕국 유다의 마지막 네 왕을 적어보십시오.
- 남왕국 유다의 제17대, 18대, 19대, 20대 왕들의 공통된 특징을 적어 보십시오. -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대해 아는 대로 적어 보십시오. 주님, 남왕국 유다의 멸망은 백성들이 당시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은 결과였습니다. 그것은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하므로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아무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과도 같습니다.
유다의 멸망도 결국은 불순종의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부디 저희로 하여금 자신의 이성이나 아집을 내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태도를 버리고 항상 겸손하게 말씀을 묵상하며 또 말씀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 하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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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멋져
“처음 말하는 것인데,손자가 아주 어렸을 때 하와이에 와서 베이비
골프를 치는데,져주니까 재미있어서 계속하자는 거예요. 시간이 없어 죽겠는데...‘얘를 그만두게 하려면 내가 계속 이기면 포기하겠지.’ 그러고서 그걸 끊으려고 계속 이긴 거예요. 손자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듣는 순간 생각했습니다. ‘그때 내가 져줄걸. 그때 다른 일이 뭐 대단한 거라고. 이제 죽어도 아이에게 못 해주는구나.’ 할아버지가 계속 이기니까 아이가 얼마나 분했겠어요. 인간이 이런 거예요. 자기와 아주 가까운 손자,딸,아내,남편에게조차 그런 짓을 한다고요.” 이어령 이재철 공저(共著) 《지성과 영성의 만남》 (홍성사, 315-31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지는 것과 져주는 것은 다릅니다. 지는 것은 힘이 없어서 지는 것이 기에 분한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져주는 것은 이길 능력과 힘이 충분 하지만 스스로 양보하는 것이기에 마음에 상처도 분함도 없습니다. 오 히려 그를 일어나게 해 주었다는 자부심이 넘치게 됩니다. 야곱은 얍복 나루터에서 하나님의 사람과 씨름해서 이겼습니다. 이게 무슨 일일까요?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져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져주시는 것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자 격이 없는데 받게 하시고, 누릴 수 없는데 누리게 하시는 것이 은혜입니 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멸망하지 않았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당신멋져’란 유머가 있습니다. “당당하고 / 신나고 / 멋지게 살되 가끔은 / 져주자” 라는 뜻입니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 니라.” (창3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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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1장 3절
그 뒤에 또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나일 강 가에 서 있더니
After them, seven other cows, ugly and gaunt, came up out of the Nile and stood beside those on the riverbank. Genesis 41:3 [N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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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설교와 설교자를 분리할 수 없으며, 설교가 설교자를 통해 전달되는 진리라는 말은 설교의 첫 번째 청중은 청중이 아니라 바로 설교자 자신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설교자는 항상 하나님 말씀 앞에 자신을 세우고, 말씀에 의해 새로워지고, 말씀에 이끌리는 삶을 살아가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지혁철의 [설교자는 누구인가] 중에서- 한편의 설교가 되기까지는 설교자의 삶이 녹아 들어갑니다. 외치는 자는 많지만은 생명수가 말랐다는 찬송가가 있습니다. 설교는 많은데, 생명을 살리는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설교는 설교자 자신에게 먼저 하는 것이며, 설교자의 한주 삶은 강단에서 내려가 한주 살아내는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성도들의 마음을 듣는 데부터 시작됩니다. |
므깃도에서 왕하 23:26-37
07월 19일 (화)
므깃도에서 왕하 23:26-37
26.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
2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택한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한 이 성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 28. 요시야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9. 요시야 당시에 애굽의 왕 바로 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 유브라데 강으로 올라가므로 요시야 왕이 맞서 나갔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났을 때에 죽인지라 30. 신복들이 그의 시체를 병거에 싣고 므깃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그의 무덤에 장사하니 백성들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데려다가 그에게 기름을 붓고 그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았더라 31. 여호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삼 세라 예루살렘에서 석 달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32. 여호아하스가 그의 조상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니 33. 바로 느고가 그를 하맛 땅 립나에 가두어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하고 또 그 나라로 은 백 달란트와 금 한 달란트를 벌금으로 내게 하고 34. 바로 느고가 요시야의 아들 엘리아김을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 여호야김이라 하고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잡아갔더니 그가 거기서 죽으니라 35. 여호야김이 은과 금을 바로에게 주니라 그가 바로 느고의 명령대로 그에게 그 돈을 주기 위하여 나라에 부과하되 백성들 각 사람의 힘대로 액수를 정하고 은금을 징수하였더라 36. 여호야김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스비다라 루마 브다야의 딸이더라 37. 여호야김이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을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요시야 당시에 애굽의 왕 바로 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 유브라데 강으로 올라가므로 요시야 왕이 맞서 나갔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났을 때에 죽인지라>(29절).
<애굽 왕 바로 느고>는 니느웨가 멸망한 후 3년째 되던 해인 B.C. 609년에 애굽의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된 그는 당시 앗수르를 장악하고 있던 바벨론 왕과 치열한 격전을 벌였으나 승부를 내지 못하자 다시 유다 땅을 침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B.C. 605년경에 다시 바벨론 왕 나보폴라살을 공격했는데 이때에 나보폴라살의 아들 느부갓네살이 갈그미스 전쟁에서 애굽을 격파했는데, 그것으로 애굽의 세력 확장은 중단되었습니다. 느고는 므깃도 전투에서 요시야를 이긴 후 직접 유다의 내정을 간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유다 백성들에 의해 세워진 여호아하스를 폐위시키고 그의 형인 엘리아김을 왕위에 세움으로써 유다를 애굽의 속국으로 만들려 한 것입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입하여 그 곳을 점령하면 보통은 조공을 바치게 하는데, 바로 느고는 특이하게도 유다에 대해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아마도 요시야가 애굽과의 전투에서 죽은 후 유다 백성들이 애굽 동의 없이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세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로 느고가 여호아하스를 애굽에 포로로 잡아간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 왕은 요시야의 바른 개혁에도 불구하고 유다가 구원을 얻지 못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두 왕은 거의 20여 년 동안 선한 왕이었던 요시야 밑에서 유다가 그동안 어떻게 개혁되어 왔는지를 잘 지켜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조금도 부친의 그 선행을 좇아 행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당시 유다에 전혀 회개함이 없었다는 사실을 입증해 줍니다. 우리 모두에게 진정으로 요구되는 것은 외적인 개혁과 함께 가야하는 내적 변화입니다. 또한 유다에 대한 멸망의 예언은 이미 히스기야 시대에 주어졌는데 여호아하스가 당한 포로 생활이 그 전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유다 백성들 가운데서는 그 어떤 회개운동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들이 멸망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게 합니다. - <엘리아김과 여호야김>(34절)이란 이름의 뜻은 같습니다. 무엇일까요?
- 요시야 왕의 순종과는 달리 유다 백성들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기에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했다는 사실을 예레미야 2-13, 16-19장, 스바냐 1장 등에서 확인해봅시다. - 요시야의 죽음에 관해 본문 30절과 역대하 35:20-24 말씀을 서로 비교해보십시오. 주님, 요시야 왕이 애굽과 전쟁을 벌이다 죽음을 맞이합니다. 온 유다 사람들이 슬퍼했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애가를 지었습니다.
요시야가 왜 굳이 전쟁을 했고, 하나님은 왜 그처럼 선한 왕을 지켜주시지 않았는지 저희로서는 다 답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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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독서법
“인풋 식 공부는 벼락치기처럼 그냥 정보를 머릿속에 넣는 것이다.
읽기와 듣기가 여기에 속한다. 아웃풋 식 공부는 의도적으로 머릿속에 있는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이다. 말하기와 쓰기가 아웃풋 식 공부이다.” 고영성 저(著) 《어떻게 읽을 것인가》 (스마트북스, 268쪽) 중에 나 오는 구절입니다. 독서 시에 눈으로 읽기 소리내어 읽기와 듣기같은 인풋(input) 독서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친다면 독서한 내용의 90% 이상을 잊어버 립니다. 독서한 중요한 문장을 기록하고, 내용을 분류 요약하고, 그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글쓰기를 하는 등의 아웃풋(output)이 병행 되 어야 합니다. 저와 같은 경우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해 독서의 주요 내용 및 문장을 세 번 이상 설교와 대화 중에 말을 하고, ‘경건 이메 일’에 사용합니다. 그러면 그 내용이 내 것이 되어갑니다. 이것이 쌓 이고 쌓일 때 책은 체화(體化)되어 갑니다. 성경 읽기는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성경을 깊이 읽는 것(close reading)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여기서 그치면 안 됩니다. 은혜 받은 구절을 암송하거나 기록을 합니다. 또한 그 구절을 몇 번이나 되새김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천’해야 합니다. 성경을 인풋만하고 아웃풋을 하지 않으면 머리에 담는 지식만 쌓이게 됩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약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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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1장 2절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 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when out of the river there came up seven cows, sleek and fat, and they grazed among the reeds. Genesis 41:2 [N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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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교리는 좋은 것이고 꼭 필요하다. 하지만 교리가 어떤 식으로 자주 오용되는지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우리 믿음을 위협할 수도 있는 절벽에 관해 알려 주려고 교리를 활용하는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강요하기 위해 교리를 동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경우에 어떤 일이 생기냐면, 절벽 가장자리가 아니라 고원 내부 쪽으로 불필요한 울타리가 자꾸 세워지고, 그래서 고원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탐구할 자유가 점점 줄어든다.
-후스토 곤잘레스의 [교회 공동체의 믿음] 중에서- 교리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교리가 우리를 지배하여 자유를 빼앗고, 정죄의 도구가 된다면 우리는 사랑을 잃은 것입니다. 그래서 기초와 뿌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어야 합니다. 이것을 놓치면 사람을 살리는 교리가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성경말씀에 의해 교리가 세워지듯, 성경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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