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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선진국의 대통령이고 싶다면

鶴山 徐 仁 2022. 2. 5. 06:56

[선데이 칼럼] 선진국의 대통령이고 싶다면

 

중앙선데이 입력 2022.02.05 00:30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영국에서 눈병에 걸린 적이 있다. 영국의 의료시스템은 한국과는 좀 달라서 바로 안과병원으로 갈 수 없고 우선 가정의학과(GP)를 거쳐야 한다. GP에서 진료 의뢰서를 발급해 줘야만 안과 전문의를 만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절차에 소요되는 시간이 매우 길다는 것이다. 길게는 몇 달까지 걸리는 전원 기간 대개의 질환은 저절로 낫거나 아니면 악화되기 십상이다. 한국식 의료시스템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해하기도 참기도 어려울 정도로 느리지만,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것은 장점이다. 대부분의 의사는 영국 국가의료보험(NHS)에 소속되어 있어 진료비는 거의 무료다. 세금을 자원으로 하여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굳이 GP에 가야 하나부터 고민이 되었다. 저러는 사이에 그냥 가라앉을 것 같았다. 그런데 며칠간 한쪽 눈꺼풀이 벌겋게 부은 상태로 있자니 주변에서 불안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꽤 가깝게 지내던 영국인으로부터 혹시 전염성은 아니냐는 말을 들었는데, 아픈 사람에게 직접 그런 질문을 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만일 단지 내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묻느냐고 했다면 아니라고 극구 부인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불안감을 전하면서 그런 질문까지 하는 데는 내가 외국인, 더구나 비유럽인이라는 점이 일조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잘 모르는 것은 미덥지 않기 마련이다. 친밀한 것에는 신뢰를 주듯이. 코로나19가 시작되던 초기 상황에도 그랬다. 많은 유럽 사람이 당시 그런 감염병은 유럽이 아닌 지역, 즉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지에서나 퍼져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스나 조류인플루엔자나 메르스나 심지어 에볼라처럼.

 

“건강보험에 외국인들 숟가락 얹어”
야당 대선 후보 발언은 사실과 달라
문제적 발언도 전 세계에 잘 알려져
차별·혐오를 선거전략 삼지 말아야

 

결국 GP에 갔더니 눈꺼풀 속에 다래끼가 생겼을 뿐이라고 했다. 전염성인가 하고 걱정하던 영국인에게 “병원에 다녀왔고, 전염성이 아니라고 하더라”고 이야기해 줬다. 걱정할 것 없다는 취지였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자기들이 낸 세금으로 네가 왜 혜택을 받느냐는 농담 비슷한 힐난을 들었다. 이건 뭐 영국인들의 숨은 민낯을 보는 기분이었달까. 물론 모든 영국인이 다 이런 식으로 자기들의 안위나 자기들의 손해 여부를 노골적으로 따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저 아프기만 해도 서러운 법이다. 거기에 대놓고 이런 소리를 들으니 좀 욱하는 기분이 들었다.

선데이 칼럼 2/5

 

 

게다가 누구는 세금을 안 낸다는 말인가. 외국인이어도 주민세, 소득세 등을 다 내고, 상품을 살 때 부가가치세도 낸다. 심지어 세금을 더 많이 내는 건 내 쪽이지 싶었다. 해서 되물었다. 영국 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따로 내는 세금이 있느냐고. 그랬더니 그런 세금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따지고 보면 성실하게 내야 할 세금을 내는 사람이라면 국적 불문하고 누구라도 NHS로부터 의료 지원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의 의료보험제도란 오로지 영국 국적을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영국에 거주하고 정당하게 세금을 내는 사람들의 의료비를 지원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공적 보험은 사보험과 달리 ‘낸 만큼’의 대가를 돌려주겠다는 의도로 도입되거나 설계된 것도 아니다. 따라서 세금을 더 많이 냈다고 하여 더 많은 혜택을 받는 것이 마땅한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저 대화는 비록 서로 웃으면서 오고 갔지만 차별적인 것이고, 유쾌하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한 유력한 야당 대통령 후보는 “외국인들이 한국 국민이 피땀 흘려 만들어 놓은 국민 건강보험 제도에 숟가락만 얹고 있다”며 “국민이 느끼는 불공정과 허탈함을 해결하겠다”고 발언했다. 이를 들은 한국의 외국인들은 기분 참 나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발언은 성실히 세금 및 건강보험료를 납부하는 외국인들까지 싸잡아 비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해 본다면, 그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무임승차자 취급을 받는다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더구나 사실을 따져 보면, 외국인 건강보험 재정수지는 2017년부터 4년간 무려 1조가 넘는 흑자를 내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외국인에게 부과되는 보험료는 일반적으로 내국인에 비해서 높은 수준이고, 보험료 미납에 대한 제재도 더 강력하다고 한다. 즉, 외국인 때문에 한국의 건강보험 수지가 적자를 보는 것도 아니고, 한국인들이 외국인을 상대로 불공정과 허탈함을 느껴야 할 이유 역시 크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와 같은 ‘팩트’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이 보인다. ‘한국인’과 구별되는 집단, 즉 ‘외국인’을 건강보험과 관련한 불만을 쏟을 쉬운 타깃으로 제시할 뿐이다.

이제 한국의 위상이 예전과 다르다는 점은 피부로들 느끼지 않나. 한국산 드라마만 전 세계에 절찬리 상영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 발생하는 문제적 발언이나 사건 역시 전 세계에 알려진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발언을 하는 사람이 일반인이 아니라 유력 대통령 후보라는 점이다.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그래서 한국을 지금보다 더 ‘잘나가는’ 사회로 만들겠다고 주장한다면, 보다 넓게 보고, 차별적이지 않은, 주의 깊고 정제된 발언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더구나 차별과 혐오를 손쉬운 선거 전략으로 삼는 것은 매우 옳지 않다.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