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국민은 칠면조가 아니다
사면권 제대로 사용 안 하면
추수감사절 칠면조 사면 같은
행사용 촌극과 다를 바 없어
사면을 대선에 이용하려 하고
정략적 도구로 쓰는 행태
국민으로서 모욕감 느낀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입력 2021.12.27 03:20
매년 11월 추수감사절을 앞둔 백악관에서는 작은 소동이 벌어진다. 미국 대통령과 칠면조가 주인공이다. 추수감사절 만찬에 쓸 칠면조 중 한두 마리를 골라 대통령이 몸소 ‘사면’하는 행사가 열리는 것이다. 사면받은 칠면조는 그해에 잡아먹히지 않고, 운이 좋으면 동물원이나 어린이 농장 같은 곳에서 편하게 여생을 보내기도 한다.
이런 외국 행사를 언급하는 이유가 있다. 사면권의 속성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면이란 왕의 말이 곧 법이던 전제군주정 시절의 산물이다. 이는 서양에만 국한되는 일도 아니다. 조선이나 그 이전 시대를 떠올려보자. 임금은 자신이 내린 사형선고를 말 한마디로 거두어들일 수 있었다. 처벌권, 생살여탈권을 왕이 독점하는 것. 그러므로 누군가를 살려줄 권리 또한 왕이 일신전속권으로 제약 없이 행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면의 본질이다.
사면권은 근대 국가의 기본적 작동 원리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입법부가 만든 법에 따라 사법부가 내린 재판 결과를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뒤집어버리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대통령제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미국, ‘왕의 목을 자른 나라’ 프랑스 등 선진국 대부분은 논란을 감수하면서 사면제를 존속시키고 있다.
어째서 그럴까? 때로는 법을 뛰어넘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잠시 시계를 되돌려보자. 칠면조 사면이라는 희한한 전통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폴리티코에 따르면 “링컨이 처음 칠면조를 사면했다는 주장이 있다”고 한다. 그럴 법도 하다. 링컨은 미국 역사상 가장 적극적으로 사면권을 행사한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남쪽의 11주가 미 연방에서 탈퇴하자 링컨은 전쟁을 선포했다. 혈투를 치르기 위해 미국은 사상 최초로 징집을 했다. 잘못 끌려간 사람이 많았고 탈영도 부지기수로 벌어졌다. 법적 절차를 원칙적으로 따르면 모두 처벌받아 마땅했겠으나, 따지고 보면 국가의 실수로 저질러진 과오였다. 링컨은 그런 경우를 접할 때마다 대통령의 권한으로 사면했다.
의회는 끝없이 평화 협상론을 제기하며 링컨의 발목을 잡았다. 링컨은 전쟁광이라는 오명을 무릅쓰고 뚝심 있게 싸웠고, 결국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항복한 남부를 대상으로 대대적 사면을 선포했다. 전쟁이 끝났으니 최대한 빨리 상처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뜻이었다. 막상 전쟁이 한창일 때는 평화를 외치던 정치인들이 전쟁이 끝나자 사면을 반대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북부의 여론도 찬반 양론이 대립했다. 그 와중에 링컨은 종전 후 5일 만에 암살당했고, 그의 뒤를 이어받은 앤드루 존슨이 1868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포괄적이고 전면적인 사면령을 내렸다. 그 사면 대상자 중에는 남부연합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이렇게 쓰라고 있는 것이다. 형식적 법 논리를 따르는 것만으로는 정의롭지 않을 때, 죽 끓듯 변덕을 부리는 여론이 보지 못하는 역사의 흐름이 있을 때, 온 나라를 올바른 방향으로 한발 내딛게 해주는 결단의 힘이 바로 사면권이다. 오직 그럴 때에만 사면권은 현대 민주국가 시스템에 어긋나지 않는다. 반면 대통령이 마치 전제군주라도 되는 양 사면권을 엉터리로 휘둘러댄다면, 그것은 미국 대통령의 칠면조 사면 행사와 다를 바 없는 촌극이 되고 마는 것이다.
지난 12월 24일,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했다. 그 의도야 누가 봐도 뻔하다. 야당 대선 후보의 발목을 잡는 데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사면권이라는 봉건 왕조 시대의 유산을 정략적으로 악용하는 행태다. 폭우 쏟아지는 날 폐수 방류하듯 한명숙 전 총리를 복권시키고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을 가석방한 것도 그렇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을 이번 사면에서 제외한 것 역시 정략적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를 사면할 때 여론 무마용으로 쓰기 위해 남겨두었다는 해석을 제기한다. 정상적 민주주의 국가라면 떠올리기 힘든 발상이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박 전 대통령은 고령의 몸으로 수술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여권 강성 지지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사면한 것은 평가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사면권을 정략적 농간의 도구로 삼는 행태를 보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낀다. 우리는 대통령 마음대로 죽이고 살리는 칠면조가 아니다. 정권의 오만과 독선은 반드시 심판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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