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의 등장 왕상 17:1-7
12월 22일 (수)
엘리야의 등장 왕상 17:1-7
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2.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4.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5.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6.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7.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1절).
엘리야는 B.C. 9세기의 선지자로 아합 왕 때부터 아하시야 왕 때까지 북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예언 활동을 한 사람입니다. 그의 존재감은 흔히 모세에 버금갈 정도로 대단했는데, 주님 당시에는 유대인들이 세례 요한의 정체를 확인하면서 그가 엘리야인지를 물어볼 정도였습니다(요 1:21). <엘리야>란 이름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는 뜻으로 실제 그는 평생을 그 이름의 의미를 확인시키는데 바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수년간 비가 없으리라>는 본문의 가뭄 예언은 아합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예언입니다. 성경에는 종종 때를 따라 적절히 내리는 단비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언급되는 반면 백성이 우상 숭배에 빠지면 하나님이 더 이상 비를 내리시지 않아 모든 생물을 마르게 하시며 땅을 황폐하게 하리라는 경고도 없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경우는 더욱이 바알 숭배에 대한 엘리야의 정면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바알은 땅에 비를 내리는 생산의 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당시의 엘리야의 예언 행위는 실로 담대한 모험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왕국 최고의 권력자인 아합을 위시하여 온 백성이 우상 숭배에 열을 올리던 시기에 이 같은 말씀이 선포됐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당대의 최고 권력자 앞에서 그것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재앙을 선포한 엘리야의 용기야말로 당돌하다 못해 무모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결과적으로 엘리야의 그 고독하고도 담대한 예언 투쟁은 이스라엘 역사에 위대한 신앙의 정기를 공급하는 큰 맥이 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런 사역을 이루게 했을까요?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엘리야의 철저한 순종에 있었습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엘리야가 아합의 위협을 피해 그릿 시냇가로 피신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런데 이 대목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이 그의 피신 시기, 장소, 기간 및 생활 방식까지도 시시콜콜 다 지시하시고 인도하고 계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즉 작은 부분까지도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했던 엘리야의 그 신실한 복종이 결국 그로 하여금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한 분명한 원동력이었다는 것입니다. -엘리야에 관해 언급한 다음의 신약성서의 요절들을 찾아 읽어보십시오(마 16:14, 17:3, 11-12, 눅 1:17, 약 5:17).
-엘리야와 세례 요한의 공통점이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엘리야가 피신했던 <그릿 시내>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은 때로 힘든 광야의 시간을 통과해야 합니다.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도 그릿 시냇가에 숨어 지내며 까마귀가 가져다주는 떡과 고기를 먹으면서 연명했습니다. 신앙생활에는 이렇게 하나님과 독대하는 고독한 시간이 꼭 필요함을 깨닫고 저희도 이 힘든 시기를 끝까지 기도하고 견디며 잘 이기게 해주시옵소서. 엘리야처럼 하나님이 그 무엇을 명하시든 무조건 말씀에 순종하며 또 시대를 향해 담대하게 예언하며 살게 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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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할 수 있어” 보다 필요한 말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은 넌 할 수 있어, 하며
주먹 불끈 쥔 격려보다는 힘들지, 하고 토닥이는 따뜻한 품.” 전승환 저(著) 《100 나에게 건네는 말》 (허밍버드, 190쪽) 중에 나 오는 구절입니다. 격려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고, 돼지도 나무에 기어오르게 합니다. 구름은 바람이 불어 움직이지만, 사람은 칭찬과 격려로 동력(動力)을 얻습니다. 그런데‘더 잘 해야 하는데!’하는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힘들지!” 하는 공감의 말은 아무 부담도 없고 그리도 따스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시대의 영성 작가인 헨리 나우웬은 예수님을 가리켜 “상처 입은 치유자”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에게도 배신을 당하시고, 동족들에게 버림을 당하시고 로마의 병정들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실제로 창으로 찔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높고 높은 보좌에 앉아서 땅의 사정도 모르고 그저 냉혹한 판결을 내리는 판관(判官)이 아니십니다. 그는 이 땅에 직접 내려와 땅의 백성들과 울고 웃으시면서 우리들의 모든 것을 함께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우리를 잘 이해하시고 공감하 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 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
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4:1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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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5장 1절
너는 부르짖어 보라
네게 응답할 자가 있겠느냐 거룩한 자 중에 네가 누구에게로 향하겠느냐 "Call if you will, but who will answer you? To which of the holy ones will you turn? job 5:1 [N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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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궤도수정을 바르게 하려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가 따르기를 원하는 길을 이탈했기 때문에 생겨난 산물이다. 그러나 좋은 소식이 있다. 의의 길은 또한 회복의 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와서 “하나님, 저는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에서 벗어난 삶을 살았습니다 인생 초기부터 저는 잘못된 삶을 살았습니다. 바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라고 회개하는 자세로 진실된 기도를 드린다면 사랑의 하나님이 이탈된 궤도를 수정하여 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회복시켜 줄 것이다. -.릭 워렌의 ‘결정하지 못함으로 받게 되는 압력’에서- 하나님과의 사귐에서 이탈은 너무나 쉽습니다. 우리가 하루나, 이틀, 또는 사흘간 하나님과 접촉이 끊어지게 되는 등, 오래 사귐을 중단할수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분야에서 멀리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채널을 맞추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바른 길을 갈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소견대로 삶을 살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사는 것은 결국 깨어진 꿈과 상처받은 마음 , 그리고 파괴된 삶과 가정을 초래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계속 사귐을 가질 때에 만이 삶의 중간 궤도수정을 바르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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