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만의 최후 에 7:8-10
10월 30일 (토)
하만의 최후 에 7:8-10 8. 왕이 후원으로부터 잔치 자리에 돌아오니 하만이 에스더가 앉은 걸상 위에 엎드렸거늘 왕이 이르되 저가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 하니 이 말이 왕의 입에서 나오매 무리가 하만의 얼굴을 싸더라 9. 왕을 모신 내시 중에 하르보나가 왕에게 아뢰되 왕을 위하여 충성된 말로 고발한 모르드개를 달고자 하여 하만이 높이가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준비하였는데 이제 그 나무가 하만의 집에 섰나이다 왕이 이르되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 하매 10.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한 나무에 하만을 다니 왕의 노가 그치니라 약자라고 슬퍼하지 마십시오. 강자라고 자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극적인 반전 드라마는 언제 어디서나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원하시면 어떤 상황에서도 대역전을 이끌어 내시는 분이십니다. 사실 성경은 모든 사건이 다 반전 스토리입니다. 성경은 그야말로 반전의 집대성입니다. 가령 로마제국을 죽음의 공포로 유지하게 한 십자가 형틀이 오히려 구원의 영원한 상징이 되지 않았습니까? 이것이야말로 반전 중의 대반전 아닙니까? 역설 중의 대역설 아닙니까? <왕이 이르되 저가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8절). <... 모르드개를 달고자 하여 하만이 높이가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준비하였는데 이제 그 나무가 하만의 집에 섰나이다 왕이 이르되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9절).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씀이 가장 정확하게 성취되는 순간입니다. 악을 심었던 하만은 이제 스스로 최악의 열매를 거두게 됐습니다.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한 나무에 하만을 다니 왕의 노가 그치니라>(10절). 악인은 결국 자기가 판 구덩이에 스스로 빠집니다. 남을 잡으려고 팠으나 결국은 자신이 빠져 파멸하고 맙니다. 문제는 기도하며 하나님이 손을 쓰시는 그 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반전 드라마 작가이심을 믿고 끝까지 인내해야 한다는 겁니다. 바사 왕국의 제2인자였지만 누구도 위기에 처한 하만을 변호해 주지 않았습니다. 두둔이나 옹호는 커녕 내시들마저도 그를 고소할 뿐이었습니다(8절).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면 그는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누구도 그를 동정하지 않습니다. 하만의 최후가 바로 그랬습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달아 죽이기 위해 자기 집 뜰에 세운 오십 규빗의 높은 장대에 대신 달려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랬으니 에스더와 유다인들이 어찌 그 날을 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은 오래오래 그 날을 기리며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모르드개 대신 높이 달린 하만을 보며 유다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자기 대신 달린 하만의 최후를 보며 모르드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당신이 기억하는 성경의 또 다른 반전 스토리는 어떤 것입니까? 주님, 모르드개를 달아 죽이려 한 높은 장대에 드디어 하만이 달렸습니다. 완벽한 역전입니다.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한 나무에 하만을 다니 왕의 노가 그쳤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아하수에로 왕의 마음을 주관하사 그렇게 하만을 응징하게 하시고 에스더와 모르드개와 유다 백성들을 보호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뜻하시고 역사하시면 어떤 상황도 능히 움직이사 대반전을 도모하실 수 있음을 믿게 하사 저희로 하여금 결코 포기하거나 체념하지 않도록 성령으로 단속해 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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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잔잔케 하는 사람 “사람이 아무리 느리게 걸으면서 본다고 해도, 세상에는 늘 사람이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빨리 간다고 해서 더 잘 보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귀중한 것은 생각하고 보는 것이지 속도가 아니다.” 기차가 좋은 것은, ‘앞’을 보여주지 않고 ‘옆’ 풍경을 보여주며 생 각에 잠기게 한다는데 있습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자주 그림에서 떨어져 그 대상을 본다고 합니다. 그래야 사물의 형상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풍경을 본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묵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히브리어 ‘하가’에서 나온 말인데, 하나님의 진리를 깊이 생각하며 우리 자신에게 적용시키는 마 음의 거룩한 행동을 의미합니다. 욕망에 쫓기는 자신에게서 벗어나 하 나님을 깊이 생각하는 것이 묵상입니다. ‘묵상’은 우리가 바쁨과 속 도전 속에서 잃어 버리고 있는 세계입니다. 깊은 묵상은 하나님과 나와 이웃과 자연에 대한 풍경을 보게 합니다. 가슴을 뛰게도 하고 잔잔하 게도 합니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시19:14) “예전에는 심장 박동수를 빠르게 하는 사람이 좋았다. 요즘에는 심장 박동수를 느리게 하는 사람이 좋아졌다.” 노수봉 저(著) 「뜨끈뜨끈 광고 회사인의 메모장(북클라우드, 9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가슴을 뛰게 하는 사람이 있고, 가슴을 잔잔하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둘 다 좋고 필요하지만, 후자에 대한 평가절하가 많았습니다. 가슴을 뛰게 하는 사람은 깃발을 꽂게끔 돕지만, 가슴을 잔잔하게 하는 사람은 ‘풍경’을 보게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청미래, 280쪽)」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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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은혜가 무엇인가? 내게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마음, 그것이 제일 큰 은혜입니다. 그것을 모르는 마음이 화인 맞은 마음이고,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다는 마음이 가장 큰 은혜를 받은 마음입니다. 노아에게는 하나님과 동행해야만 살 수 있다는 마음 하나뿐이었는데, 하늘에서 별처럼 은혜가 쏟아졌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늘 필요하다는 마음이 쏟아지시길 축원합니다. -최병락의 [다시 시작하는 힘, 은혜] 중에서- 은혜는 하나님과의 동행을 변함없게 만듭니다. 은혜는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늘 나와 함께 있습니다. 내가 발견하거나 깨닫고 살아가면 하나님의 은혜는 셀수 없습니다. 은혜없는 삶은 피페합니다.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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