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여호와의 영광 왕상 8:1-11

鶴山 徐 仁 2021. 9. 29. 11:07

여호와의 영광 왕상 8:1-11

 

 

09월 29일 (수)

   
여호와의 영광 왕상 8:1-11


1. 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이스라엘 장로와 모든 지파의 우두머리 곧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에게로 소집하니
2.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다 에다님월 곧 일곱째 달 절기에 솔로몬 왕에게 모이고
3.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이르매 제사장들이 궤를 메니라
4. 여호와의 궤와 회막과 성막 안의 모든 거룩한 기구들을 메고 올라가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그것들을 메고 올라가매
5. 솔로몬 왕과 그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이 그와 함께 그 궤 앞에 있어 양과 소로 제사를 지냈으니 그 수가 많아 기록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었더라
6.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자기의 처소로 메어 들였으니 곧 성전의 내소인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7. 그룹들이 그 궤 처소 위에서 날개를 펴서 궤와 그 채를 덮었는데
8. 채가 길므로 채 끝이 내소 앞 성소에서 보이나 밖에서는 보이지 아니하며 그 채는 오늘까지 그 곳에 있으며
9. 그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맺으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10.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11.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에스겔서에도 <영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더라>(43:5)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11절입니다.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솔로몬의 성전 봉헌식은 참으로 성대했습니다. 위로는 왕으로부터 아래로는 저 시골 마을의 이름 없는 백성에 이르기까지 다 참여한 가운데 실로 아름답게 거행됐습니다. 이는 곧 성전을 중심으로 온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진정 하나가 되었음을 뜻합니다. 오늘날 모든 성도들이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몸이 되듯 과거 선민 이스라엘도 그렇게 성전을 구심점으로 연합되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런 성전 봉헌식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역시 성전의 지성소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안치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궤를 안치하자 과연 성전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사 그들과 함께 하심을 나타내신 증거요 백성들과의 참된 연합을 보여주신 사실의 증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전 모세의 성막 때처럼 솔로몬의 성전 역시 자신의 영광의 거처로 인정하셨음을 공인하신 사건이었다는 겁니다.


사실 언약궤는 이스라엘이 광야를 유랑하던 어려운 시절 백성들이 겪는 고통과 기쁨 등의 모든 경험을 같이 나누신 하나님의 생생한 임재를 의미하는 상징물이었습니다. 그 자체가 하나님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계시하신 거룩한 은총의 수단이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당시 언약궤의 새 성전 안치는 이스라엘의 새로운 시대를 위한 계약의 갱신을 의미했습니다. 즉 성막과는 달리 고정된 장소에 언약궤를 안치한 사건이야말로 이스라엘 민족이 완전히 달라진 새로운 환경에서도 여전히 하나님과의 그 언약을 좇아 살겠다는 결단의 의미를 담아 실행한 역사적 의식에 다름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부디 이 시대 교회에도 늘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솔로몬 성전에 안치한 <에다님>월(2절)이란 오늘날의 태양력으로는 몇 월에 해당됩니까?
-여호와의 언야궤 안에는 원래 어떤 것이 들어 있었습니까(9절,삼상 4:3-11,출 25:16, 40:20, 신 10:5,히 9:4)?
-본문 9절에 나오는 <호렙>산에 대해 아는 대로 적어보십시오.


주님, 솔로몬의 성전을 완공하여 여호와의 언약궤를 새 성전 지성소에 안치하며 봉헌식을 거행하던 날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솔로몬의 성전을 기쁘게 받으신 것이고, 앞으로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겠다는 의미의 거룩한 표증을 보이신 것으로 믿습니다. 
이 시대의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도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사 늘 주님이 저희와 함께 하심을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나의 작은 이야기




“아주 단순화해서 표현하면,나는 ‘포스트모던 (post-moderne)’을
거대 서사에 대한 회의(懷疑)라고 정의한다.”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저(著) 유정완 역(譯) 《포스트모던의 조건》
(민음사, 21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들뢰즈, 데리다와 함께 포스트모던을 대표하는 현대 철학자 중 하나인
리오타르(Jean-Francois Lyotard)는, 포스트모던의 중요한 특성이 현대
사회를 이끌어가던 ‘거대 담론(meta-discourse, 큰 이야기)’에 대한
회의적인 경향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포스트모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거대 담론이 더 이상 삶의
방향을 제시하거나 가치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
입니다.  ‘큰 이야기’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가고, 대신에 그 자
리를 ‘작은 이야기들(small stories)’이 대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작은 이야기들의 주인공들, 그들이 담고 있는 스토리와 다양
하고 상이한 가치들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의미입니다. 그간 거대
담론이 사회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면서, 다양한 하위의 집단들과 가치
들이 무시되거나 흡수되어 왔습니다. 이런 패러다임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에서는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큰 이야기’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삶
속에서 일어난 수많은 ‘작은 이야기들’ 또한 큰 가치가 있습니다.  
영웅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의 큰 업적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름 없는 들꽃같은, 그러나 신실하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는 작은 자가
충분히 아름다운 자이고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25:21)
   
사도행전 2장 21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everyone who calls on the name of the Lord will be saved. Acts 2:21 [NIV]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다시 오실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까?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우리가 그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게 하시려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 믿는 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예수 믿으니까 괜찮지.'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한 가지 더 할 일이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 1:27)
-고신일 목사의 ‘기억되는 사람’에서-


    예수 믿는 사람인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우리를 보고 말할 때
 '저 사람, 참 좋은 사람이지. 저 사람은 참으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한 사람이다.'라는 평을 들어야 합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가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받는 자리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