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아지로소이다] 아무리 오두방정 떨어도 백세 철학자는 꼿꼿하네
입력 2021.09.18 03:00
산책을 하다 보면 나처럼 한 살도 안 된 강아지부터 열 살 넘은 노견까지 두루 만난다. 어떤 개들은 나를 보자마자 짖기 시작해 아주 멀리 떨어질 때까지 계속 짖는다. 그건 열등감과 질투심의 표현이다. 자기 주인이 자기만 예뻐해줘야 하는데, 나한테도 다정하게 대해줄까 봐 조바심이 나는 것이다. 어떤 개는 나와 잠깐 코를 부비는가 싶더니 갑자기 신경질을 내며 오줌을 싸고 뒷발로 땅을 마구 파헤친다. 오줌 냄새를 멀리 퍼뜨리려고 그러는 건데, “여긴 내 구역이야! 얼씬도 하지 마!” 같은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이렇게 오두방정을 떠는 개들은 대개 몇 살 되지 않은 어린 개다. 이런 개를 만났을 때 나는 깊게 복식호흡을 한 뒤 두성(頭聲)으로 컹, 하고 짧게 짖는데 꽤 어른스럽고 중후한 소리가 난다. 이런 소리로 짖어서 “너 같은 좁쌀개한테는 관심 없어” 하고 말하는 것이다. 좁쌀견들은 대개 약 오르고 분해서 더 발광하다가 결국 주인에게 끌려가다시피 하며 멀어진다.
노견들은 대체로 품위가 있다. 내가 궁금해서 다가가도 곁눈질로 한번 볼 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여기저기 냄새를 맡아도 그들은 최소한의 경계만 하며 나를 받아준다. 어떤 개는 아예 내가 없는 것처럼 한번 쳐다보지도 않고 저벅저벅 제 갈 길을 간다. 기력이 쇠해진 탓도 있겠지만, 하찮은 세상사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럴 때면 나는 꼬리를 내리고 눈을 깔아 존경을 표한다.
인간 사회에도 그런 어른이 있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100세 넘은 철학자가 자기 나이 절반밖에 안 되는 사람에게 막말 공격을 당한 뒤 “그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새끼 강아지가 갓 난 송곳니 드러내며 깽깽 짖고 오줌 싸며 땅 파헤치는데, 곁눈질 한번 없이 늠름하게 걸어가는 노견을 본 느낌이었다.
101세 어른에게 대든 인간은 자기보다 어린 인간을 어떻게 대할까. 몇 년 전 그는 지하철 임산부석에 앉아있던 젊은 남자 흉보는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쓰며 ‘새파란 녀석’ ‘싹수 노란 자식’이라고 했다. 누군가 댓글로 “배려와 에티켓을 타인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고 빈정대자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 싸가지 없는 자식이 어디서 함부로… 내가 네 친구냐? 이 핏덩이 같은 녀석이” “생각 없고 버르장머리 없는 애들” “바퀴벌레도 아니고 어디서 이렇게 기어 나와서….” 어쩜 이토록 절묘하게 미리 말해뒀을까. 참 하나같이 주옥같은 말이다. <다음 주에 계속>
토동이 말하고 한현우 기자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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