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건희 낙수효과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 교수
입력 2020.10.28 03:00
어렸을 때 읽은 위인전의 주인공 중에 기업가들이 있었는데 모두 카네기, 포드 같은 미국의 기업가들이었다. 미국이 기업가를 위인의 반열에 올리는 유일한 나라일 것이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미국을 세계 최강의 경제 대국으로 만든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2004년 삼성 반도체 생산 라인을 둘러보는 고 이건희 회장/삼성
미국 히스토리 채널에서 방영한 ‘미국을 건설한 사람들(The Men Who Built America)’이라는 다큐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제목만 보면 워싱턴, 링컨 같은 위대한 대통령에 대한 드라마일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 산업혁명기에 거대 기업을 일군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존 록펠러, 앤드루 카네기, 헨리 포드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이 미국을 최강의 경제 대국으로 만들고 국민들을 풍요롭게 살 수 있게 만든 주역이었기 때문에 그런 제목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드라마를 제작한다면 엊그제 별세한 이건희 회장은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카네기나 포드처럼 위인의 반열에 올릴 수 있을까?이건희 회장은 낮은 품질의 저가 제품을 만들던 삼성전자를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선진국 거대 기업들이 각축을 벌이는 최첨단 산업에서 중진국 기업이 1등을 한 세계 최초의 사례를 만들어 낸 것이다. 삼성전자는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국내에서 엄청난 부가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하고, 거액의 법인세를 납부함으로써 국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 소재, 부품, 장비업체들이 동반 성장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봤다.
그리고 우리나라 기업들이 최첨단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이미지를 외국인들에게 심어줌으로써 국내 업체들의 성장을 도와주기도 했다. 국내 타이어 업체 해외 영업 담당 임원이 말해 준 내용이다. 선진국 업체가 생산한 타이어보다 싸게 사려는 바이어에게 어떤 회사가 만든 핸드폰과 가전제품을 쓰는지를 물어보면 삼성전자가 만든 제품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 고가의 최첨단 제품을 만드는 삼성전자가 우리나라 기업이라고 강조하면 가격 협상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위상을 높여줌으로써 그런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살림에도 도움을 주었다.
이건희 회장이 우리나라에 가장 크게 기여한 바는 우리도 열심히 하면 세계 1등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준 것이다. 첨단 산업에 속해 국내 다른 기업들도 도전하고 혁신하면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우리 근로자들의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연봉이 올라갔고, 공무원, 기자, 교수 등 기업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의 연봉도 올라갔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교수들이 하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연봉이 많이 올라간 이유가 이런 낙수효과 때문이다. 1인당 국민소득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다.
필자가 이건희 회장을 직접 만난 것은 2013년에 개최된 신경영 20주년 기념 행사에서였다. 동료인 송재용 교수와 10여 년간 연구한 결과를 모아 출간한 책 ‘삼성웨이’를 이건희 회장에게 헌정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 책은 이건희 회장이 어떻게 삼성을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에 진짜 저자는 이건희 회장이라는 생각이 들어 회장께 친필 서명을 요청했다. 그런데 유전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인지 손이 흔들려 제대로 글씨를 쓰지 못하셨다. 자신의 건강만 돌보며 살아도 되는 분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큰일을 해내고 우리 국민들의 살림살이에 큰 기여를 했다는 생각을 하니 더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의 마음속에 위인으로 자리 잡은 이건희 회장의 명복을 빌며, 우리나라에서 더 많은 위인이 나오고, 우리나라가 뛰어난 기업가를 위인으로 인정해주는 나라가 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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