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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미국에 동맹의 의무 다하고 있나 [이정은 기자의 우아한]

鶴山 徐 仁 2020. 10. 18. 12:14

한국은 미국에 동맹의 의무 다하고 있나 [이정은 기자의 우아한]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북한학 석사) 입력 2020-10-17 11:41 수정 2020-10-17 11:42


지난주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 참석한 서욱 국방장관(왼쪽)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

 



‘피아스코(fiasco)’

오랜만에 듣는 단어라 영한사전을 다시 찾아봐야 했습니다. 한미 관계에 매우 정통한 한 외교 전문가가 지난 주 한미안보협의회의(SCM) 결과를 지켜보면서 대뜸 내뱉은 한마디였습니다. 외교적으로 대실패, 혹은 참사라는 뜻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가 한미 양국 간의 가장 중요한 동맹 협의체를 평가하는 데 쓰이다니요.

 

코로나19 위험과 2주간의 자가 격리 부담을 무릅쓰고 워싱턴을 찾았던 한국 측 군 고위인사들은 당혹감을 넘어 배신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SCM 공동성명 곳곳에서 드러난 한미 양 측의 견해차도 문제지만, 핵심이었던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전시작전권 전환 논의는 되레 후퇴했습니다. 미국 측은 “특정 시한을 정한 전작권 전환은 군 병력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완고한 반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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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인가요.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모두발언에서 의제에도 없었다는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꺼내들며 한국의 증액을 다시 압박했습니다. 미국이 요구하는 금액을 내지 않으면 주한미군의 안정적인 주둔을 보장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뉘앙스까지 흘렸습니다. 거기다 예정된 일정을 불과 3시간 반 앞두고 한미 국방장관의 공동기자회견을 돌연 취소하는 무례함까지. 서욱 국방장관 취임 직후 이뤄진 한미 국방장관의 첫 상견례이자 SCM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참사 수준입니다.

SCM 준비 과정을 지켜봐온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회담 실패가 예정돼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공동성명 조율 과정에서 양 측 의견 차가 너무 컸다는 것입니다. SCM 회담 전날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과 서욱 국방장관이 만찬을 나눌 때까지도 이런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펜타곤 안팎에서는 “서 장관이 한국 측 요구들을 밀어붙이자 에스퍼 장관이 짜증을 냈고, 이 때문에 공동기자회견을 전격 취소했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이런 결과를 놓고도 왜 우리 군 당국이 미국 정부에 쓴소리를 한 정황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비판도 항의도 나오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공동기자회견은 미국 내부사정 때문”이라고 사실상 대신 해명해 주거나 “서로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며 날 선 견해차를 애써 무마하려는 시도가 전부였습니다. 군 현안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이번 SCM 결과는 한국에 대해 쌓여온 미국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라며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한국이 미국에 큰소리칠 입장이 못 된다”고 혀를 찼습니다. 아무리 피로 맺어진 70년의 동맹이라도 주고받는 게 있어야 하는 것인데, 한국이 이번에 해준 게 너무 없다는 지적입니다.

경북 성주의 사드(THAAD) 미사일 기지 상황이 대표적입니다. 기지 설립에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의 도로 봉쇄와 시위로 정상적인 기지 운영은 3년이 넘도록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차량 진입이 불가능해 헬기로 생필품을 실어 나르는 것은 둘째 치고 오폐수 차량조차 제대로 들어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주한미군 측이 여러 차례 항의했지만 실제 개선된 것은 거의 없다는 군요. 주한미군 측에서는 한국 정부가 주민들의 반대를 앞세워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합니다. 한 관계자는 “오수도 치우지 못하게 하는 나라에 자기 군대를 주둔시키고 싶겠느냐”며 “성주기지 상황만 놓고 보면 동맹이라고 하기도 민망하다”고 말했습니다.



 

사격 훈련장 폐쇄와 주민들의 소음 민원 때문에 주한미군이 제대로 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도 최근 높아지고 있습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은 7월 공개행사에서 주한미군이 한반도 밖으로 원정훈련을 나가야 상황을 거론하며 이 문제에 대해 작심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이 동맹으로서 당당하게 뭔가를 요구하려면 그에 맞게 우리가 해줄 것은 확실히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 그래도 미중 갈등 속에 놓인 한국의 미묘한 지정학적 입지 때문에 외교, 경제, 기술 분야에서 한미 관계가 계속 삐걱대고 있는 게 아닐지요. 단단히 버텨줘야 할 동맹의 최후 보루, 군사 분야에서까지 양국 관계가 흔들린다면 지금 같은 동맹관계가 앞으로 70년 유지된다고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정부는 국내 정치나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대외적으로 더 큰 그림을 그려가며 외교안보 전략을 추진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국익과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진정한 리더십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요.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북한학 석사) lightee@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