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골리앗의 목을 베다 (삼상 17:50-58)

鶴山 徐 仁 2020. 10. 14. 12:16

골리앗의 목을 베다 (삼상 17:50-58)

 

10월 14일 (수)

   

골리앗의 목을 베다 (삼상 17:50-58)

50.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51.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칼 집에서 빼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52.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소리 지르며 블레셋 사람들을 쫓아 가이와 에그론 성문까지 이르렀고 블레셋 사람들의 부상자들은 사아라임 가는 길에서부터 가드와 에그론까지 엎드러졌더라

53. 이스라엘 자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쫓다가 돌아와서 그들의 진영을 노략하였고

54. 다윗은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에 두니라

55. 사울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나아감을 보고 군사령관 아브넬에게 묻되 아브넬아 이 소년이 누구의 아들이냐 아브넬이 이르되 왕이여 왕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하매

56. 왕이 이르되 너는 이 청년이 누구의 아들인가 물어보라 하였더니

57.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가 그의 손에 있는 채 아브넬이 그를 사울 앞으로 인도하니

58. 사울이 그에게 묻되 소년이여 누구의 아들이냐 하니 다윗이 대답하되 나는 주의 종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니이다 하니라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칼집에서 빼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어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51절).

자신의 칼과 창만을 믿고 큰소리 치고(43, 44절), 이스라엘 군대를 갖은 말로 위협하던 골리앗이 군인도 아닌 어린 목자의 물맷돌에 쓰러지고, 자신의 칼에 목 베임을 당한 아이러니컬한 사건은 악인은 결국 자신이 파놓은 무덤에 자신이 빠진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시 7:15, 9:15). 블레셋 군대는 골리앗의 승리를 확신하며 이스라엘 진영을 향한 총공격 태세를 갖추었다가 골리앗 대장의 어이없는 패배 앞에서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치기에 급급했습니다.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가 손에 있는 채 아브넬이 그를 사울 앞으로 인도하니>(57절).

사울 시대만 해도 전투에서 패배한 적장의 머리는 승리의 기념물이었고, 전사의 가장 확실한 업적이어서 흔히 충성 표시로 왕에게 바쳐졌습니다.

 

실은 이때부터 사울과 다윗 사이에는 묘한 긴장이 흐릅니다.

<사울이 묻되 소년이여 누구의 아들이냐>(58절).

물론 사울은 다윗을 이미 알고 있었고 벌써 여러 번 그를 대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골리앗과의 결투를 통해 새삼 그의 가문이며 혈통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그의 목을 벤 사건을 통해 다윗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골리앗도 제압하여 밟고, 그의 칼로 목을 벨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언제나 생명을 단지 한 개인에게만 속한 것으로 보지 않고 그가 속한 공동체의 운명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위기의 이스라엘을 구한 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사 곧 이스라엘 공동체를 구하신 것입니다. 자기보다 더 위대한 존재의 관심 속으로 자신을 힘 있게 끌어들인 다윗은 이렇게 함으로써 이제 새로운 삶을 출발합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에 대한 당신의 소감을 간략히 적어 보십시오.

-다윗이 왜 골리앗의 <갑주>(갑옷과 무기>를 자신의 장막(54절)에 두었을까요?

-군사령관인 <아브넬>(55절)은 사울 왕과 어떤 관계였습니까(14:50-51)?

 

주님, 창과 칼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의 이름 하나만으로 골리앗 앞에 나섰던 다윗이 결국 그를 물맷돌 하나로 처단하고 달려가 목을 벴다고 했습니다.

다윗의 믿음이 이루어낸 빛나는 승리였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이 싸움을 통해 오늘 저희도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닫고 배우게 해주시옵소서.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날린 물맷돌이 실은 돌이 아니라 다윗의 믿음이었음을 의심치 않게 해주시옵소서.

 
   

바니타스

 

“17세기에 가장 유행했던 회화 중 하나는 ‘바니타스Vankas화’이다.

바니타스는 공허,허무함을 의미하며, 바니타스화의 단골 소재들은 해

골, 꽃, 먹다 남은 생선, 빵,유리잔 등을 들 수 있다. 해골의 경우 너

무나도 의심의 여지 없이 바니타스라는 주제를 표현하고 있음은 누구

나 알 수 있다(중략). 우리가 거의 잊고 살지만 사실 우리는 죽을 존재

라는 것을 환기시킨다.”

 

강대석 저(著) 《철학으로 예술 읽기》 (시대의 창, 252-253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바니타스(vanitas)’ 알레고리는 17세기 이후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전

유럽에서 전개된 예술적 방법론입니다. 유럽의 예술 문화 전반에 영향을

주었던 바니타스 알레고리는 시각예술 전반, 문학 등에도 영향을 주었

습니다. ‘바니타스화(畵)’는 짧은 생의 덧없음을 주제로 하는 그림

입니다. 바니타스는 구약 성경 전도서에 쓰인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 “바니타스 바니타툼 옴니아 바니타스”

(Vanitas vaniratum omnia vanitas) 의 첫 단어를 따온 것입니다.

바니티스 화의 중요 소재는 다가오는 죽음을 상징하는 모래시계와 해

골, 젊음이 유한함을 상징하는 꽃병 속의 시든 꽃 잎, 연기처럼 사라

지는 영광의 무상함을 뜻하는 담뱃대 등입니다. 옛 지식인들의 서가

에도 해골이 있었습니다. 삶과 동시에 메멘토 모리, 즉 죽음을 기억하

자는 것입니다. 모든 영화는 연기처럼 다 사라집니다. 이것이 늘 겸

손해야 할 이유이고 영원을 바라보아야 할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

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전3:11)

   

베드로전서 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Humble yourselves, therefore, under God's mighty hand,

that he may lift you up in due time.(NIV)

   

환대

격려를 위한 다른 예술적인 매체는 환대이다.

나는 사람들이 손님 접대와 환대를 구분하는 소리를 많이 들어 왔다.

손 접대가 그리스도인의 겸손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라면

환대는 세속적이고 세련된 손님 접대라는 것이다.

아마 그 구분이 옳을 것이다.

사람들이 깨끗하든, 지저분하든,

대접할 수 있는 음식이 쇠기 스테이크이든, 남은 음식이든,

장난감이 여기 저기 흩어져서 어질러 있든지 잘 정리되어 있든지

우리는 필요한 사람에게 집을 개방해야 한다.

손님 접대는 꾸미지 않고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가정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고 누구나 쉽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생동감 있는 장소가 될 수 있다.

-제럴드 L. 싯처의 [차이를 넘어선 사랑] 중에서-

 

누군가를 격려하는 삶은 무조건적인 환대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환대는 누군가에게 장소를 내어주는 것입니다.

물론 물질과 시간을 나누는 것도 중요합니다.

누군가에게 베풀기만 하는 삶이 아니라 한 사람의 호의를

받아 주는 것도 환대입니다.

우리의 관계가 주님의 마음으로

서로 환대하는 것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