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떨림 (삼상 14:8-15)
09월 26일 (토)
큰 떨림 (삼상 14:8-15) 8. 요나단이 이르되 보라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로 건너가서 그들에게 보이리니
<그들이 만일 우리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너희에게로 가기를 기다리라 하면 ... 올라가지 말 것이요 ...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하면 우리가 올라갈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넘기셨음이니 이것이 우리에게 표징이 되리라>(9-10절). 이것은 요나단이 하나님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블레셋과의 전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묻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즉 요나단은 두 가지 경우 가운데서 둘째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징조로 삼으려했습니다. 이유는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에게 올라오라고 한다는 것은 곧 그들의 전투 의지가 약한 것으로 판단해도 틀림이 없다고 본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나단은 블레셋이 둘째 경우와 같은 반응을 보일 때 공격한다면 큰 전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나를 따라 올라오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셨느니라>(12절).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시는 <성전>의 특색을 표현하는 전형적인 술어입니다(수 6:2, 8:1, 7, 10:8, 12, 19, 삿 11:30, 32, 12:3).
물론 그 날 요나단과 그 무기를 든 자도 <반나절 같이 땅 안에서 쳐 죽인 자가 이십 명 가량>(14절) 됐다고 합니다만 정작 블레셋 군대를 큰 공포 속에 몰아넣은 것은 하늘도 땅도 진동한 <큰 떨림>(15절)때문이었습니다. 원문은 <하나님의 큰 떨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천지가 뒤흔들리는 듯한 공포와 지진 재앙이 임해 블레셋 사람들에게 멘붕이 오고 군대는 곧 패닉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블레셋에 내리신 재앙이었습니다. <떨림>이라는 히브리어 <하드라>는 극도의 공포심을 뜻하는 심리적 현상을 가리킵니다. 특히 여기서 그런 큰 떨림에 빠진 부대는 당시 믹마스에 주둔하고 있던 블레셋 본대(13:16)와 <세 대로 편성해> 먼저 침투시킨 <노략꾼>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로서는 다시 한 번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블레셋 군대에 대한 요나단의 모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본문의 요나단의 <표징>(10절)과 사사기 7장의 기드온의 표징(9-15절)을 비교해 보십시오. -이 시대의 전쟁도 하나님의 손에 달렸을까요?
주님, 저희는 하나님이 진정한 역사의 주인이심을 확신합니다. 그 어떤 권력이나 영웅도 역사를 자기 뜻대로 이끌어 가지는 못했습니다. 전쟁도 예나 지금이나 다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고백합니다. 따라서 전쟁의 승패 역시 군비나 전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달린 것임을 진심으로 믿사오니 인류로 하여금 더욱 겸허하고 겸손하게 하시옵소서. 오늘 이 요나단의 얘기가 저희에게 큰 깨달음과 깊은 은혜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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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 절제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삶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느냐의 여부다. 다윗은 이렇게 썼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편 23:2) 절제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구세주의 부드러운 음성으로 인도함을 받고, 무슨 일을 당하든지 하나님이 안위하신다는 약속 가운데 거한다. 하나님이 그들의 영혼을 평온케 하시고 갈등과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감을 주신다. -카터 콜론의 [두려움 없이 살아가기] 중에서-
절제하는 힘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절제하게 하셔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아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늘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약속하신 말씀으로 살아갈 때 절제할 수 있습니다. 시간과 물질과 은사와 모든 부분에서 가하지 않는 것은 절제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최고의 영성 훈련은 절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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