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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社會 關係

[동서남북] 다시 쓰레기통에서 장미를 피워 낼 시간

鶴山 徐 仁 2020. 3. 24. 13:07

[동서남북] 다시 쓰레기통에서 장미를 피워 낼 시간

조선일보

입력 2020.03.24 03:16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 협잡·꼼수 오물로 위기에
70년 전 폐허에서 일어섰듯 다시 한번 희망의 싹 틔워야

최승현 정치부 차장
최승현 정치부 차장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6·25전쟁의 폐허와 정치적 혼돈을 지켜보던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 기자가 1951년 썼다는 이 비관적 문장이 69년이 지난 지금 다시 대한민국을 배회하고 있다. 불법적 국회 범여(汎與) 협의체가 제1 야당을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선거법 개정안으로 '민주주의의 꽃' 선거가 협잡과 꼼수라는 오물(汚物)을 뒤집어쓴 채 위기에 직면했다. 철저히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설계된 줄 알았던 선거법 틈새를 제1 야당이 파고들자 여당이 스스로 입법 취지를 부정하는 기만적 편법을 자행하면서 선거의 가치와 존엄성은 수직(垂直) 낙하 중이다.

개정한 선거법은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등 거대 여야가 과거에 비해 비례대표 의석을 덜 얻게 되는 구조였다. 민주당은 대신 정의당 등 자기들과 가까운 범여 군소 정당 비례대표 의석이 늘어나 국회 과반(過半) 연합을 형성할 수 있다는 판단 속에 국회의장까지 동원해 법 개정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미래통합당의 비례대표 전문 위성 정당 미래한국당의 위력이 총선에서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자 태도를 180도 바꿨다. 미래한국당을 맹비난하던 입의 침도 마르기 전에 외곽 세력을 이용해 사실상 똑같은 방식의 비례 위성 정당을 만들었다. 한때 진보 진영 원로들이 주도하는 정치개혁연합을 이른바 '플랫폼 정당'으로 삼겠다더니 며칠 만에 등을 돌리고는 골수 친문·친조국 인사들이 이끄는 가설 정당 '시민을 위하여'를 파트너로 택했다. 한쪽에서는 정봉주, 손혜원, 김의겸, 최강욱 등 또 다른 친문 인사들이 뭉쳐 비례 정당을 따로 만들었다. '군소 정당의 사표(死票) 방지와 다당제 확립'이라는 선거법 개정 명분이 '완벽한 사기'였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광분(狂奔) 아닌가.

사실, 문재인 정권 들어서 선거의 위기는 일찌감치 시작됐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30년 친구인 송철호 현 울산시장을 2018년 지방선거에서 당선시키기 위해 경찰에 상대 후보였던 자유한국당 김기현 전 울산시장을 수사하게 하고 당내 경쟁자에게는 공직을 제안해 경선 포기를 유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 수사를 통해 선거 개입 혐의로 기소까지 된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 황운하 전 대전지방경찰청장은 총선 공천장을 거머쥐었다. 국가 존립의 근거인 민주주의를 무너뜨렸을지 모르는 중대 범죄 혐의자들에게 오히려 국민의 대표가 될 기회를 주는 파렴치한 도착(倒錯) 행위다.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 저서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민주주의의 근간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라고 했다. 이명박 정권의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을 언급하며 "국가기관이 개입해 선거의 자유와 공정성을 훼손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국기(國基) 문란"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권을 잡은 뒤에는 당정청(黨政靑)이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해 선거 제도 자체를 유린하고 결과를 사유화하려는 만행(蠻行)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이런 의혹과 논란에 침묵하면서 야당만을 겨냥해 "20대 국회는 마지막까지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 사상가 몽테스키외는 저서 '법의 정신'에서 "민중은 자기의 권위 일부를 위탁할 사람을 선택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영국의 한 언론인이 절망적으로 지켜봤던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어날 수 있었던 건, 집권 세력의 끊임없는 훼방과 압력 속에서도 이렇듯 현명한 집단 지성을 구현한 대한민국 유권자들 덕분이었다. 다시 민주주의를 지켜낼 선택의 시간이 22일 앞으로 다가왔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23/202003230508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