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 중에 중용(中庸)이란 말이 있습니다. 왜 옛날 어르신들이 늘상 하시는 말씀 중에 ‘중용을 지켜라!’는 이야기 여러분들도 많이 들어 보셨을 겁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자기자리와 분수를 지키며 살라는 연륜 있는 어른들의 무게 있는 충고 말입니다. 사실 우리가 늘 중용을 강조하지만 ‘그 중용적 삶이란 정확한 무엇이냐?’를 묻는다면 그 대답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공급(孔汲), 일명 자사자(子思子)가 쓴 책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중용적 삶이란 동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생 방식이란 의미로도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습니다. 12세기에 성리학의 완성자인 주자는 중용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중(中)은 치우치지도 않고(不偏), 어디에 의지하지도 않고(不倚)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상태다(無過不及)! 용(庸)은 언제나라는 평상(平常)이다.’(中者는 不偏不倚無過不及之名이오 庸은 平常也라) 어느 체조 선수가 평균대 위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모습을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한쪽으로 기울지도 않고 평형을 이루고 있는 그 모습 속에는 정지된 평형이 아니라 역동적 평형이 느껴지며, 일시적 균형이 아니라 지속적인 균형이 떠올려 집니다. 중용은 간단히 말하면 역동적이며 지속적인 평형입니다. 중용의 삶으로 말하면 하루 정도 중용의 삶을 살았다고 해서 그 삶을 중용의 인생이라 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늘 평생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아야 비로소 중용의 인생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중용의 인생을 산다는 것은 예로부터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